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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실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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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Apr 06. 2019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

동생의 진심 어린 조언

여기에 자그마한 희열이 있다. 헛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하나의 계기다. 지방 일터를 떠나온 지 2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출장 오는 동료들이 곧잘 연락을 해온다.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난다. 아내의 허락만 받으면 말이다. 마침 아내도 직장동료들과의 저녁 약속이 잡힌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출장 온 동료들을 만났다.


놀고 있으며 옛 동료들을 만난다는 게 조금 꺼려지기는 하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 터라 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출장지와 우리 집과 중간 위치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 맞춰 중간 역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잘 못 내려 제시간보다 조금 늦었지만 그쪽은 10분 정도 더 늦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충남 바닷가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서울로 올라와 얼굴을 마주 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일을 그만두고 상경한 지 2년 넘은 동료  보고 싶다며 찾아와 준 게 고맙기도 했다.   . 변함없는 그들을 보니 내 얼굴도 환해지,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도 함께 출장을 온 것 같 모든 게 예전과 그대로였다.


나에게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그들은 분명 그대로인데 내 모습에 확연한 변화가 느껴졌나 보다. 그 얘기를 들으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노는 사람에게 살이 더 빠졌다고 하니 말이다. 신혼생활이 어떠냐고 묻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살이 빠진 내 모습이 신혼생활을 잘못 전달할 것 같아 먼저 말을 꺼냈다.


 "술을 안 먹으니 살이 이렇게나 빠지네"


이런저런 말을 하며 동생이 차 타고 오며 검색한 '하남돼지 집'을 찾아 들어갔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와 함께 술잔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소주와 섞어먹는 맥주의 맛은 그야말로 천국의 음료였다. 내일의 면접이 걱정됐지만 조금씩 끊어마시면 된다는 생각으로 잔 부딪힘을 망설이지 않았다.


두 명의 직장인과 한 명의 백수가 만나니 내가 들어주는 쪽이 됐다. 둘이 하는 직장 얘기를 모르는 바가 아니니 내용상의 의문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2년 전의 고민들과 거의 똑같았다. 시시콜콜한 동료들에 대한 험담이 주를 이뤘다. 내가 전할 곳 없을 거라 생각됐던지 두 직원은 가감 없이 말을 했다. 술로 인해 다소 거친 표현도 섞어가며 동료들과 기관장에 대한 불만들을 토로했다.


 '예전엔 나도 저랬었지'


진급심사 당락으로 인해 직원들 간의 불만과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일장 토로가 끝날 때쯤, 술은 거하게 올랐다. 둘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변한 게 하나 없는 그 직장에 여전히 몸담고 있다 한들 여전히 퇴직을 꿈꾸고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우습기도 했다.


계속해서 잔을 부딪히다 술이 한껏 오른 동생이 말했다. "첫째가 발달이 늦어" 치료사로 일하는 그의 말에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병원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어" 높은 점수라고 에둘러 표현하며 장애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동생은 전문가로서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도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두 전문가 부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병원의 판정이 있기 전에 이미 섬찟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뽀로로를 보고 있던 큰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내뱉은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얘 음소거해도 똑같이 좋아해" 


뽀로로에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아무런 반응 없이 멀뚱이 보며 좋아하고 있더란 말이다. 그리고 결국 병원 진단을 선택했다.


이 술자리에서도 진행형이었다. 시끌벅적한 고깃집을 수차례 들락날락하며 아내와 통화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말한다. 아내가 병원 의사와 한판 붙고, 환불받았다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장애 진단을 한 의사에게 항의하고 이후 다른 진단을 받지 않겠다고 하여 환불한 것으로 생각됐다.


억장이 무너져 말하는 동생의 얘기를 들으니 현실로 다가온 문제란 걸 알 수 있었다. 일하는 중에도, 해외연수 중에도, 금일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치료사로서 수많은 장애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아이에게 같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했다. 이제 치료에도 자신이 없고, 그동안 자신이 봐온 바에 따르면 아이의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형 나 이런 생각까지 했어. 아이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고"


그런 말까지 하는 동생을 보며 나도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동생은 이어서 말했다.


"아이가 가는 길이 뻔히 보여."


"지적장애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 말이야."



"아이가 조금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 또래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할 것도 상상이 돼."


"난 아이를 놀리고 괴롭히는 놈들이 있다면 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이미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듯,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듯 아버지의 분도는 극도로 치닫는다. 그리고 또다시 말한다.


"아이를 하나 더 낳을까 생각 중이야."


"둘째 딸아이 혼자 오빠를 감당해야 해야 하는 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한 명 더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제 내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거야."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 애가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거야."


동생은 그동안 생각했던 오만가지들을 내게 쏟아냈다. 그리고 이 얘기를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자신의 팀장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형이 떠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라도 하소연할 수라도 있었는데 왜 떠났냐며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맞은편 팀장도 자신의 첫째 아이가 발달이 느려 비슷한 맘고생을 했다며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지만 둘의 상황은 참 달라 보였다. 나 또한 취업이 안돼서 힘들다는 얘기는 개미 똥꾸멍만큼도 꺼낼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술이 취한 듯 아닌 듯 앞자리의 팀장은 잠자리를 제공해준 친구가 기다린다며 자리를 계산하고 먼저 일어났다. 우리도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근처 꼬치집으로 들어가 매운 어묵탕과 소주, 맥주를 시켰다.


동생의 얘기로 인해 마음이 답답해졌다. 과거 함께 일하며 와이프와도 친분이 있고, 집에 놀러 가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빌이 부모들을 위한 기적과 같은 작품이라며, 눈길 닿는 모빌 아래 아기를 뉘어놓은 채 부모와 술 한잔 기울이며 웃음꽃 피웠던 때를 기억했다. 그때의 그들은 지금 부모로서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자신의 얘기를 한참 동안 쏟아내던 동생이 이제야 내 근황을 물었다. 동생에 비하면 고민거리 조차 안 되는 것을 말해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술이 올라온 내게도 별것 아닌 것을 별것처럼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9개월째 놀고 있으며 그동안 면접은 스무 번 가까이 본 듯하다고 말했다. 동생은 왜 떨어지는 것 같은지를 물었고, 면접관들의 마지막의 9개월의 짧은 경력에 대한  질문이 가장 민된다고 말했다.


동생은 눈 딱 감고 거짓말하라고 했다. 솔직한 게 좋은 거지만 세상 누구도 면접 때 진실만을 얘기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고, 거짓말하는 게 속이 편치 않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직원들을 떠나가게 했던 기관장의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동생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전에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동생이 아니었다. 이전 직장상사의 부당함을 알리고 제대로 복수하고 싶으면 먼저 취업을 하라는 것이다. 면접 때마다 몇 마디로 자신을 까먹으면서 전 직장상사 욕하며 형의 정당성을 찾는 게 다가 아니라, 온갖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해가며 일단 취업하고, 취업한 뒤에 후일을 도모하라고 말했다.


형수님과 가족들이 대체 무슨 죄냐고 말했다. 형이 자존심 부리며 취업에 대한 간절함보다 부당함에 대한 고발이 앞선다면 결국 피해 입는 건 형수고 가족들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맞았다. 그 말이 맞았다. 내 자존심이 뭐라고 가족들을 고생시키나 하는 생각에 나 또한 울컥해버렸다.


동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존심 따위에 뭉그적거리는 답답한 형을 보며 복에 겨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한마디가 귀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형. 난 면접관들이 기라고 하면 길 수도 있어."


"형. 난 내 자식을 위한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어.. 내 자존심 따위가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동생의 말이 꽤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귓전을 때리며 날 부끄럽게 한다.



그리고 오늘 면접이었다. 숙취가 되지 않아 머리가 아팠고, 속이 매스꺼웠다. 면접관들은 여전히 전 직장에서 일찍 나오게 된 이유를 물었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안 하겠다고 했다. 우회적으로 연관된 질문이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잘 피해나가며 무사히 면접을 마쳤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탈락. 술냄새가 났나? 그럴 리 없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면접을 거칠 것이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산다. 자신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이제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임해보려 한다.


동생과의 대화는 나를 우울하게 했고, 눈물 나게 했다. 동생의 힘든 상황에 함께 신을 원망했다. 동생은 개신교 신자이지만 지금 개종을 고려한다고 했다. 응답하는 신을 찾겠다는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으리라.


요즘 신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내가 결국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는 극단적인 결심을 한 것에 대해 뭔가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아 살짝 웃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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