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광기의 왕국
사람을 알고 나서 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그의 유명세로 몇몇 작품을 보긴 했지만 감독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 <<꿈과 광기의 왕국>>을 보게 됐다('꿈'이란 말은 이해가 가지만 '광기'란 말은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주연인 그는 지금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현역으로 돌아와 차기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스크린에서 '인간적인 사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스튜지오 지브리>의 직원들과 그 안에서 감독의 소탈한 모습,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 중 "무한한 가능성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나이 들어가며 그 무한했던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간다는 말, 삶은 바로 그런 거다"라는 인식이 가슴이 와 닿았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는 "포기와 절망"에서 절대 끝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한겨울에도 염소 인형을 집 밖에 꺼내놓는 사람이니 말이다.
아베 신조가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려는 개헌 시도에 대한 그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가능케 하여 인류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난처해질 회사 입장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나 신문 기고를 불사한다. 나는 내 행복만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사는데, 자신의 행복이 아닌 개개인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인류애적 모습을 말하는 그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그래도 개인의 행복추구가 잘못된 것은 아니니 앞으로 품을 넓혀가리라)
감명 깊던 그의 말을 기록해본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것들도 전부 내가 생각하는 건 불타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애들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건 중요한 거예요"
"날 이 세상에 묶어 놓은 건 어린애들이에요"
"아이 하나가 아니라 어린애들 일반을 말하는 거예요"
"12월이 되면 염소(실물 크기의 염소 인형)를 창밖에 놔두는데요"
"그 염소를 애들이 기억하고 있어요"
"메에메에(음메음메) 없네? 라면서 지나간다던지"
"작은 애들은 정말 그런 걸 잘 기억하고 있어요"
"인간이란 건 태어난 직후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무한의 가능성을 품고 어린애들은 태어나는데"
"그 가능성을 계속해서 포기해나가는 거예요"
"무엇을 택한다는 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과 연결되니까"
"결국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의 존재 자체가 그런 거니까"
(아베 정권의 전쟁 가능 개헌에 대해 "개헌 당치도 않다"는 개정관을 말하며)
"아니, 인간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것이 목표인 거죠"
"자기 혼자 행복해지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게.."
"전 정말 납득을 못하겠어요"
"왜 납득을 못하겠냐면"
"그거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사는 목적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행복이라는 건.."
"아니.. 전 정말 몇 명이 같은 반응을 보여서.."
"전후(전쟁 후)의 인식이란 건 그런 거였나..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는데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스즈키 씨(옆에 있던 사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스즈키 씨는 자기 행복 때문에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안 드는데"
"왜 무엇을 위해서 하는 걸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
"난(미야자키 하야오) 평소에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니 보통 그렇지 않나?"
"그런 걸(자신의 행복만을) 목적으로 산다는 게 도저히 생각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