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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력서 또 떨어졌다. 대체 몇 번 째란 말인가?

  오늘은 글을 쓸 기분은 아니지만,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자 그리고, 매일 단 세줄이라도 글을 쓰라고 했던 '북촌방향'의 유준상이 했던 말이니 그냥 쓰는 거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별로 볼품없는 삶을 사는 그가 스쳐 지나가는 한 여자에게 했던 3가지 조언이 인상 깊게 남았다. 하지만 이렇게 3가지 명언을 품고 사는 사람이 그리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영화 속 대사가 생각나서 마지못해 글을 쓰는 것이니 여기서 무슨 글이 써질까?


  '할 말 없으면 하루를 복기해보고 사건과 그 감정을 기록하자.'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서류면접에 불합 격 통보를 받은 것 빼고는. 아니 통보가 아니었다. 불합격 통보도 해주지 않았다. 내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서 알았을 뿐. '이런 예의 없는 회사 같은'이라고 욕하고 싶어도 사실 뭐가 괜찮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문자로 '불합격되었습니다.'로 알려주면 좀 더 기분이 좋으려나? 거기에 덧붙여 '다음 기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희망합니다.'라고 해주면 좀 더 감지덕지, 감개무량하려나? 그럴 리 없을 테니  더 이상 말을 않겠다.


  나도 출퇴근 시간 오가는 차량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는 소원이, 바쁘게 오가는 지하철역에 나도 그중에 하나였으면 하는 바람이 이토록 힘든 일인가?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누가 내 길을 알면 대답 좀 해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못나게 살아왔나? 하는 자괴감을 자꾸 심어주는 이유가 뭔지 하늘에 대고 묻고 싶다. 아니 하늘을 향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묻고 있다. 나름 일적으로도 인정받았고 살았고 좋은 사람이란 평도 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나를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사회복지사다. 사회복지사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뛰었다. 특히 신경 썼던 것은 관계다. 특히 삶이 힘든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주려 노력했고, 공사가 구분되어 일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있겠으나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상대방은 물론이고 나 또한 참 많은 위로와 위안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4개월간 10번 가까운 채용공고에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오답노트가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면접 때마다 생각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것을 하나씩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이걸 하면 내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취업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면접에서의 질문을 수기로 정리한 문제풀이집이 있으니 이걸 토대로 공부하면 될 거야.' '아니면 이력서에 이것저것 없는 거 있는 거 다 끼워 넣어서 풍성하게 보이면 더 눈애 들어올 거야.' 란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나를 믿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아내가 있어 미안하기는 하지만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걸 거다. 오늘은 채용공고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내 업종의 공무원 채용계획을 봤다. 내년 2월 시험이란다. 2달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해서 시험을 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돼서 아내에게 지금처럼 불안정한 상황을 또다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세줄이 이렇게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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