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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불면증

불면증의 괴변

  살면서 불면증에 시달려보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불면증으로 힘들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어떻게 피곤한데도 잠이 안 올 수가 있냐고 신기해하기도 했고, 그런 타인들의 어려움을 듣고서도 잠을 잘 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상대방의 심정이 돼보지 않았으니 그 마음을 알 턱이 없고, 나에게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감사할 일도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할 일은 아니다. 불면증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대략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잠이 들려 노력해도 잠을 이룰 수 없으며, 1~2주, 그 이상 지속되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 찾아보진 않았지만 대략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답을 확신하며 채점하는 수험자의 심정으로 지식백과에 쓰여있는 내용과 대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해보는 것은 전혀 유익하지 않다. 사실 이전에도 잠을 설친 적은 있다. 누군가 코를 심하게 골거나 추위로 인해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경우 쉽게 잠들지 못함을 경험한다. 하지만 불면증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평상시 상황을 얘기해야 한다.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 말고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코를 고는 소리가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 같다. 그 소리는 나이가 지긋이 드신 지금도 만만치 않은 괴음을 자랑한다. 아버지가 주무실 때는 '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나야 안심이 된다. 언젠가 자리에 누우셨는데 소리가 나지 않으면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호흡을 지켜보곤 했다. 이불이 볼록 올라왔다 내려가는 상태를 지켜보고 나서야 방문을 나선다.


  아버지의 활발한 수면상태와는 별개로 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해본다. 결혼하신 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 방한 번 안 써보시고(내 추측이지만) 언제나 오붓이 누워 주무신다. 항상 아버지는 항상 코를 고시며 수면태를 알리 지시만 어머니는 그 옆에서 별다른 뒤척거림 없이 주무신다. 이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걸까? 아니면 초창기에는 그로 인한 불면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극복하신 걸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지만 알고자 하면 모를 내용도 아니니 언제 어머니께 여쭤봐야겠다.


  내 경험은 이와 견줄 수 없는 가벼운 경험이다. 친구들끼리 놀러 가서, 혹은 직장연수의 잠자리에서의 낯설고 코 고는 몇몇 사람들로 인한 '잠 설침'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런 경험이 연속해서 이어지지 않으니 불면증 일리 없는 것이다.


  이제 내가 3일 정도 고통받았던 상황을 얘기해보겠다. 3일 가지고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 수 없음을 알지만 워낙 엄살이 심한 터라 내가 받은 고통을 배가시켜 얘기해보고 싶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내 일기장이지만 언젠간 브런치 작가 신청이 승낙되어 누군가 이 글을 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컴퓨터를 뒤적거리던 와이프라도 이 글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의 글이라 생각지 않고 글을 쓰겠다.(이 말을 하면서 웃음)


  어떤 요인이 있었는지부터 얘기하자면 4개월째 백수 상태로 있으며, 여러 곳에 이력서를 집어넣고 겨우 서류를 통과한 몇 개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소식에 들뜬 몸과 마음으로 갔다가 너덜너덜해지는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했다. 이런 불안한 심리요인과 또 하나는 차와 초콜릿을 많이 먹는 식습관의 요인이 있다. 최근 그러저러한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력이 부쩍 약해졌다. 때문에 따뜻한 차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차가 소화에 좋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검색해보지도 않았다. 단지 소화불량인 상태에서 차를 한번 마셔봤던 경험이 '위'의 안정을 가져와 계속해서 차를 마시게 된 것이다. 아내가 사놓은 개당 이천 원 정도 하는 고급 차(나에게는 고급차다. 왜냐면 처음 접해보기도 했지만 향과 맛에서 탁월하며, 카페에서도 이 정도 차라면 5천 원 정도 주고 마실 의향이 있기 때문이다.)를 비롯하여 고급차를 매일 마시는 건 백수로서 부담도 되고 아내의 '최애 차'를 거덜 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에 대충 시중에 널려 있는 차 중 '둥굴레 차(100개입)'로 택해서 꾸준히 마시고 있다. 하루에 2개의 티백을 사용하며, 커다란 보온병과 큰 도자기 물컵으로 2개를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 이것이 불면을 가져올 수 있겠다는 게 나의 추측이다.


  또 하나는 초콜릿이다. 이전에 일을 그만두고 모든 직장인이 그런 생각을 하듯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던 적이 있다. 모든 상념을 없애려 외국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퇴직금을 모두 털어 유럽으로 향했다. 2달이 조금 못되게 말이다. 그때 아무런 정보도 없이 구글에 의지하여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던 나에게 습관이 하나 생겼다. 외국의 마트에 들어가 처음 보는 새로운 입맛에 도전해볼 법도 한데, 난 그러지 않았다. 눈에 띄는 대로 대용량 M&M(초콜릿)을 1개를 사들고 누가 훔쳐갈까 봐 앞으로 동여맨 힙백 안에 자크를 연후 초콜릿을 한 개 한 개 빼먹으면서 유럽의 거리거리를 방황했다. 그때 방문했던 나라마다 마트에 들어가면 같은 초콜릿을 구입하여 집 떠나 고생한 나에게 조금이라도 단맛을 선사해주었던 고마운 초콜릿.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초콜릿이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켜 여기서도 같은 초콜릿을 사 먹게 된다. 치아가 변색되리라는 걱정도 뛰어넘은 의지의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것도 불면을 가져왔던 하나의 요인으로 추측된다.


  어떤 게 범인인지를 모르겠지만 잠을 도통 잘 수가 없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이 말을 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지?) 어디선가 들어본 잠이 오는 방법을 사용해 본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하다 보면 자신이 한심해지면서 스무 마리를 넘기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본다. 정자세, 엎드리는 자세, 옆으로 비스듬한 자세로도 안되니 자고 있는 아내를 껴안아보기도 하고, 자고 있는 아내의 다리에 내 다리를 걸쳐보기도 한다. 역시나 효과가 없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평소 생각이 없는 나에게 생각을 주입한 것은 '책'이다. 하릴없는 내가 이럴 때 교양이나 쌓으려는 심산으로 하루에 1시간 이상 책을 읽는 것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 같아 약간의 후회가 밀려든다. 생각이 많아지니 취업이 안 되는 이유, 전 직장에서 내가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상사 등이 생각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니 몸을 꼼지락 거리게 된다. 잠이 올 것 같은 느낌이 살짝 와서 '지금이야. 이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언제 다시 올지 몰라'라고 생각하며 부동자세로 멍하니 있는다. 하지만 때마침 아내가 이불을 걷어차며 뒤척인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다시 찾아온 적막 속에 내 모든 것을 맡긴다. 그러다 생각한다. 왠지 잠이 오는 방법을 알 것 같다. '이걸 발견한 나는 인류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 속의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잠이 올 때의 느낌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를 생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반복해서 생각했을 때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도해본다.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떠올려본다. 얼굴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눈을 뜨면 안 되니까.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으니 진짜로 잠이 오는 듯하다. '이건 대단한 발견이야'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아내를 쳐다보지 않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얼굴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니 현실도 아니고 꿈도 아닌 중간 정도의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가위에 눌린 느낌은 아니다. 그냥 몽롱한 상태라고나 할까?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잠이 코앞에 와있다. 하지만 눈꺼풀이 무겁고 눈이 튀어나 올 거 같은 느낌에 신경이 쏠리기 시작한다. 여러 생가을 하면 안 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생각을 옮겨간다. 아니 눈꺼풀이 나 좀 봐달라고 손짓했다. 결국 반수면 상태의 문을 걷어차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화가 난다.


  시간이 아깝다. 누워서 잠과 실랑이를 한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다. 내일 일어나면 몸을 혹사시키리라 생각한다. 하릴없는 백수가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어 내일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소화가 될 무렵인 오후 2시가 되면  1시간가량 러닝머신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빚내어 들어온 오피스텔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헬스장이 있다. 거기서 내 모든 에너지를 근육으로 치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최근 헬스장이 회원제로 돌렸던 것이 생각났다. 매월 5,000원의 회비를 받는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신경 쓰지 않자 헬스장을 꾸려갈 임원을 투표에 붙이고 당선된 운영자가 헬스장을 끼고 회원제로 돌린 것이다. 첫 달 야심 차게 입금해놓고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헬스장 벌써 2달이 지났는데 내일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입주민인데 돈 안 냈다고 쫓아내겠어? 그리고 다들 일 나가는 시간에 가서 잠깐 뛰고 오는 건데 말이야.' 이 생각을 하고 나니 그냥 집에서 팔 굽혀 펴기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좁은 어깨가 콤플렉스인 내가 간이 철봉을 구입하여 방문에다 걸어놨다. 한 개도 못하던 내가 지금은 최대 5개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팔을 쫙 폈다가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 팔을 반쯤 구부려 내려왔다가 다시 끙끙대며 올라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어깨가 실제로 넓어졌다. 그렇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또 하나 생겼다. 내일 헬스장을 갈지 말지는 내일의 기분에 달렸다. 안 갈 확률 90%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5시 조금만 더 있으면 아내가 깬다, 아내가 일어날 때 난 잠을 자고 있어야 한다. 그게 옳다. 새벽 내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줄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긴 하지만 정말 1시간 미만이다. 시간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아 게임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유튜브로 일본어나 역사공부를 하거나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수가 백수일뿐이지 집구석에서 그 어떤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 한들 누가 알아줄 것이며, 철학이 밥 먹여 줄 것인가? 하지만 갑자기 나를 점검하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이렇게 비하해도 되나 싶어 씁쓸해진다.


  잠 못 자게 하는 이유는 역시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인 것 같다.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오지 않아 더 이상의 사투는 피해만 남길뿐이라고 결론지으며 방문을 나선다. 소파에 누워 책 한 권을 펼친다. 눈알은 빠질 것 같지만 누워서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저렇게 만능형 인간이 있나 싶어 닮고 싶은 점들을 눈여겨본다. 조금 있으면 아내와 마주칠 것이다. 


  '노트북 앞보다는 소파에 누워 책을 펼친 모습이 그나마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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