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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질투

신도 질투를 한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가 있다. 그동안 난 질투심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렇게 자부한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 외에 수차례의 연애를 하면서도 질투심을 느끼거나 그런 비슷한 질투 표현도 해본 적이 없다. 내 기억으론 그렇다. 기억의 상자를 깊숙이 뒤져봐도 찾을 수 없다면 진짜 없는 걸 거다. 아니면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보자. 질투는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어 질투심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고, 정말 기억이 없다.


'연애를 안 해본 것 아니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니 정말 그랬던 것은 아닌가 잠깐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지금은 듣지 못할 그때 그 사람이더라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것은 내 연애경험의 진정성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이자 상처다. 그러니 질투가 없었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하는 것이다.


  "결혼은 나에게 행운이며 행복이며 내 인생의 찬란한 광명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한다. 어떻게 이런 복덩이가 나에게 왔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되는 여인이다. 아내와 결혼한 것을 내가 평생에 받을 수 있는 복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아내는 나에게 그야말로 '이상형'이다. 물론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나에 대해 평생의 복의 총량 중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 추측이지만 말이다. 아내도 가끔씩 사랑을 고백하여 나를 감동케 한다.


   하지만 이런 아내에게 서운한 것이 한 가지가 생겼다. 이 말을 하면 누군가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가족에 대한 질투심이다. 어떻게 배우자의 가족을 질투할 수 있을까라고 분명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면 이것은 나쁜 생각이야 얼른 떨쳐내야 해.라고 머리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이상하게도 숨길수가 없다.


  이것이 질투라고 말하게 된 것은 아내에게 내 마음을 얘기하고 나서부터이다. 이 감정이 그저 나쁜 감정, 해서는 안될 망상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에 자극이 될 때마다 분명 느껴지는 '불'같은 것이 있어서 곧바로 '서운함'으로 얼굴에 드러나곤 한다. 숨길 수 없는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 '서운함'이 싹트면 벌써 입을 굳게 닫아버리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돼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소심하게 그럴 수 있나' 생각해보지만 무표정한 인상은 풀어지지 않는다.


  인상을 굳게 만든 아내의 행동을 말해보면 이렇다. 부모님, 아내의 남동생, 그리고 귀여운 조카가 내 질투의 대상이 된다. 가족끼리의 단톡 방, 그 안에서 공유되는 조카들의 예쁜 사진과 재롱 동영상, 가족 모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을 통한 위치확인. 이게 전부다.


  나도 아내와 비슷한 조건의 가족들이 존재한다. 부모님, 형제들, 조카 하지만 똑같으면서도 가족에게 대하는 친밀함의 정도는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남자들의 무뚝뚝하고 무심함이 그 차이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 온당하기나 하냐는 말이다.


  분명 어패가 있음을 알면서도 내 감정에서 말하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이번 달 말에 남동생이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데 가서 도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어떠한 악센트도 들어있지도 않다. 그냥 흘려보내는 말처럼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스멀스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난 그것을 '질투'라 규정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하도록 말하려면 그 단어 외에는 다른 걸로 표현하기 어렵다.


  세상의 질투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진짜 '질투'가 맞느냐고 말이다. 질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질투'에 대해 '혼자 소유하고 싶은 감정에서 비롯된 이기적 행동'이라 정의했다. 이 정의가 맞다면 내가 아내를 홀로 독차지하고 싶어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도 소원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감정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내 말에 대해 납득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물론이요. 개선될 수 없음도 명확한 사실이다. 아내에게 차분이 내 감정을 설명하고 나 스스로도 성찰을 통해 도대체 왜 그런지와 해결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도 자신이 나에게 질투했던 경험을 말한다. 아내는 나의 과거에 대해 질투한다고 했다. 듣고 보면 그것은 내가 아내의 가족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과 견줄만할 정도로 이상한 질투심이다. 왜 지나간 과거에 질투를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아내와의 연애시절 과거의 연애경험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한 적이 있었고, 최근 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아내가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아놨던 인터넷 클라우드에 자동 업로드된 사진 중 몇 장의 과거사진(?)을 찾아내 두고두고 혼났던 적이 있다. 지금 아내의 얘기는 그 과거의 사진들을 보며 질투심을 느꼈다는 말이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지만 지나간 그 옛날 사진 몇 장에 '질투심'을 느꼈다는 게 더욱 이해하지 못할 말로 들렸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표면적으로는 같은 '질투'처럼 보여도 사람마다 질투하는 그 포인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긍정의 매듭을 지었다. 


  아내와의 얘기가 끝난 후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봤다. 심각한 얘기로 상기된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어 누워있는 아내 위로 몸을 겹쳐 안았다. 우리는 다시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난 세상에서 OOO(내 이름)이 제일 좋아."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갈 거야"



  아내의 생각지 못한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아내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어린아이와 같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내가 우는 모습을 앞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지만 아내의 우는 모습은 귀여움의 끝판왕이다. 정말 어린아이가 훌쩍대는 모습을 재연한다. 마치 무서운 어른이 와서 '뚝'하고 소리치면 훌쩍거리던 입은 굳게 다물고 못내 멈추지 못한 어깨를 들썩일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아내의 눈물은 내 뺨을 타고 내려와 이불 깔개에 큰 점을 만들었다. 회색 누빔 깔개여서 그런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아내는 나에게 울었냐고 물어봤지만 안 울었다고 했다. 난 아내 모르게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내 뺨의 눈물이 아내의 눈물 인양 우겨서 못난 자존심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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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출애굽기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 임이니라.


(신명기  6: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난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여호수아 24: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스가랴 8: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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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되었다고 배웠다. 신께서 질투의 성품을 같고 계시니 신의 성품을 닮은 인간이 질투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에서 말한 신의 질투는 어떤 것일까? 사랑으로 점철되는 순수함일까? 아니면 인간사 '치정'과 같은 복잡다단함일까? 알면서도 묻는다.


  그리고 약삭빠르게 내가 행했던 이기적인 질투심에 신을 끌어 들어 정당성 확보를 시도한다.


  지금까지의 얘기했던 '질투 스토리'에 빠진 대목이 있다. 아내의 가족을 질투했지만 매일 밤낮없이 카톡 하는 친구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나(남편)와 대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존재에 대해서만 질투심을 느낀다? 다시 말해 아내의 모든 진심을 줄 수 있는 대상에게만 질투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어설프게나마 결론지어보자면 '만만한 상대에게는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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