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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부재중 전화 2통'

나보다 더 긴장하는 그 사람

  서류 하나가 통과됐다. 보통 서류면접이 통과되면 2차 면접을 알리는 전화벨이 하루 이틀새 울리기 마련이다. 여태껏 2차 면접에서 수차례 떨어졌다. 이번에는 기회를 잡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면접 일시를 알리는 전화가 언제 울릴지 모르지만 나의 생활은 전화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통 새벽 네다섯 시에 잠자리에 들지만 요즘은 좀 더 밀렸다. 4개월간 새벽에 생활하는 것이 편해진 탓에 한두 시간쯤 늘리는 것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대여섯시에 잠자리에 든다. 아내가 출근을 위해  6시에 일어나는 시간에 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뒤바뀐 밤낮으로 인해 나의 기상시간이 11,12시에서 오후 1,2시가 됐다. 오늘은 오후 2시가 넘어 일어났다. 아내는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직장에서 가서 열심히 일하고 난 그 시간 꿈나라에 가있다. 물론 좋은 꿈은 아니지만 말이다. 악몽을 자주 꾸는 것도 맘이 편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스스로 위안하는 한 가지. 정규 잠시간은 지킨다는 것이다. 잠의 총량은 밤에 잠들 때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다. 이것으로 아내에게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피력한다. 내가 아침 6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난다고 해보자. 총 자는 시간은 8시간이다. 오늘처럼 오후 2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드믈다.  기상시간을 평균 내자면 11시일 것이다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들어 11시에 일어난다면 6시간 자는 것이다. 사람의 평균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한다. 이로서 아내에게 잠만 자며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물론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 자신의 기상시간에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남편을 바라보고 '우리 남편 지금부터 6시간 자겠구나. 그래도 게을러지지 않으려 시간을 아껴 쓰는구나'할리 만무하다. 어쩌면 아침에 깨있는 나와 마주치는 순간 한숨부터 나올 수도 있다.


  오늘은 조금 더 나에게 투자했다. 평균치보다 2시간을 더 잤다. 아침  6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침대 옆 비슷한 높이의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켜보는 순간 두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백수생활 4개월 차 누군지 모를 전화통화도 반갑다. 아니 벨소리가 반갑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벨소리를 듣지 못한 채 곤히 잤으니 벨소리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부재중 전화 2통"의 액정 표시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을 준다. 누구일지 부재중 전화 목록을 살펴본다. 02로 시작되는 번호다. 그렇다면 보통은 스팸전화겠지만 이 전화번호는 면접 안내를 위한 전화라고 확신했다. 이전에 1차 서류면접에 통과했을 때 합격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그 문자의 번호가 '부재중 전화 2통'의 번호 비슷한 것으로 생각됐다.


  부재중의 설렘은 잠시뿐. 이제 어떡해야 하지. 부재중 전화가 10분 간격으로 두 번 왔던 시간은 11:50, 12:00. 지금은 오후 2시, 그러니깐 14:00가 넘은 시간. 벌써 2시간이나 흘렀다. 12시 이후로 전화가 없다. 더 이상 왜 전화가 없을까? 면접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또 아니면 전화를 두 번 남기고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오후 늦게나 전화하리라고 마음먹은 걸까? 이유는 어떻든 나는 그 면접에 꼭 가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면접의 기회는 더디게 오니 말이다.


  대전, 서천을 전전하며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한 내가 결혼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도권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취업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가? 여긴 수도권이다. 서울과 경기도 인구 천만이 넘고 모든 인프라가 집약, 집결된 곳이다. 또한 수도권이라 함은 내 전공인 '사회복지'의 수요가 가장 많은 동네다. 거기에 더해 나의 능력과 인품은 어떠한가? 정의가 불타오르고 어떤 일은 하든 자신감이 넘치고 누구든지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사회복지사 아닌가? 하지만 지금 말한 자화자찬에 대한 맹점은 나 스스로의 정의감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 반드시 무찔러야 성이 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에 높으신 양반들과의 불화로 이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정의감에 불타는 나는 이력서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면접관들은 내가 상급자와 싸우고 퇴직했다는 내용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 어디에도 적지 않았는데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 자신의 직장에 들어올까 봐 경계태새를 높인다. 내 경력은 5년, 5년 9개월이다. 지금껏 3번의 이직을 했다. 한 직장에 5년을 일했다는 생각보다 나쁜 기간은 아니다. 물론 공무원 같은 평생직장도 있고 고용안정과 보수가 적당하면 한 곳에서도 평생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분야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난 보수의 문제로 불만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불만은 오롯이 상급자의 독단과 인격모독이다. 직장마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사회복지를 한다는 인간이 직장 안에서 지원들을 종으로 부리며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거기에 인격 무시하며 직원들의 마음을 피폐해지게 한다. 그런 것을 못 참고 총대를 어깨에 맨다. 다들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지만 난 그게 안된다.


  앞으로 또 어떤 신선한 인간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나 그건 랜덤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직장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아까 부재중 전화는 꼭 받아야 하는 것이었고, 받지 못했다면 어떤 조치를 빠르게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를 세지는 않았지만 대략 열 번이 넘는 이력서를 작성하여 제출했고, 그중 일곱 번 정도 1차 서류면접에 합격하여 2차 면접을 위해 회사들을 찾았다. 물론 결과는 불합격. 처음에는 지방에서 서울(경기도까지 포함하여 서울로 통칭하겠다.)로 올라오며 이 광활한 곳에 내 일터가 없겠냐고 큰소리쳤지만 지금은 마음이 쫄아있다. 연달하 면접에서 낙방하고 '나를 알아보고 필요로 하는 곳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면접을 봤던 회사들은 하나하나 사선을 그어 제하기 시작한다. 사회복지기관이 수백 곳이 있을 터인데 심리적으로는 몇 개 안 남은 거라 생각이 든다. 2차 면접 후에는 또다시 회사명에 사선을 긋는다.


  '부재중 전화 2통' 오후 2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이미 많이 늦었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사정이 있었음을 얘기해야 한다. 채용공고에는 '연락불능으로 인한 불이익은 응시자의 책임으로 함'이라는 항목을 명시해 놓았으니 면접 의사가 있음을 빨리 알려야 한다. 금방 자고 일어나 목소리가 굻고 허스키해지기는 했지만 목소리를 몇 차례 시원하게 풀고, '부재중 전화 2통' 그 전화번호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역시 그곳은 이력서를 넣은 회사가 맞았다. 하지만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름을 남겼다. 연락처는 알 거라고 전화받은 직원에게 말했다.


  1분이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 같은 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고 면접 안내를 받으려 준비했다. 역시 목을 한두 번 푼 뒤였다. 역시 면접 안내를 위한 채용담당자의 전화였다. 하지만 뭔가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2018년.. 아니, 2018년 12월.. (침묵) 화요일.. 아니, 다음 주 화요일에.. 오후 두시반까지 여길로 오시면 됩니다." 긴장을 한 건지 연도부터 말하려다 연도는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 꼬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 역시 긴장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전화를 받는 나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채용담당자가 긴장을 한 채로 안내를 하니 내 마음이 내심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고 일어나 목이 풀리지 않은 상태의 내 목소리가 생가지 못하게 뜬금없는 목소리였거나 너무 무겁고 어둡게 들려서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듬거리며 날짜와 시간 장소만을 전한채 전화를 끊으려 하여 다시 일정을 재확인하고 인사로 마무리했다.


  1차 합격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며 조마조마하는 내 신세와 채용을 위해 누군가에게 긴장하며 면접 일정을 알리는 그 사람의 신세가 비슷하게 느껴진다. 물론 따지고 보면 내쪽이 훨씬 더 절박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와 같이 주어진 일들을 긴장 속에서 하게 될 날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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