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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알고보니 약해빠진 나

과대망상증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번 사는 인생 자신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과대평가하는 대부분의 사람 중에 '나'를 끼워 넣은 걸 보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게 분명하다. 자신감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며 중론일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 키우는 방법, 자신감 스피치 등등의  자신감을 '업'시키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니 말이다.


  사회복지를 업으로 삼은 지 10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회복지 현장이 그렇다. 지역마다 하나씩 눈에 띄는 '종합사회복지관'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한다.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 빈곤층, 장애인, 다문화 가족, 새터민 등등 나열하지 못한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머지 열거 못한 대상도 당연지사 포함될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종합사회복지관'이 모든 이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파악해서 필요를 채우려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려 대상에게 분산시켜 에너지를 쏟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종합사회복지관'에 이어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여기도 종합사회복지관이기는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장애인을 위해 특화된 복지관'이라는 것이다. 여러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이다. 복지관의 이름만 보아도 무슨 얘긴지 이해가 될 것이다. '노인종합복지관'도 마찬가지인 샘이다. 이렇게 한 대상에 특화되어 있는 복지관을 '단종 복지관'이라고도 한다. '한 가지 종' 즉 '하나의 대상'이란 말이다.


 복지관에 대해 설명할 것은 아니었는데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 중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만났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앞선 얘기를 꺼냈다. 사회복지사가 좋은 일 한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분명 약자들을 돕는다는 것에 기인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약자'란 누구인가? 현장에서 만난 약자들 중 한 케이스를 말하자면 어떤 충격을 통해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결국 장애판정까지 받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얘기다. 장애 정도가 중한가 경한가를 떠나 정신질환이 발병된 이유를 물어보면 어떤 충격에 의한 발병이라고들 말한다. 충격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으나 '심각한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이 폭발하거나 침체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흔들리는 정도, 더 나아가서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며, 더 심각해지는 경우 평생 약과 심리치료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정신장애'라는 표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일생생활이 무너졌다는 말은 아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충격에 다시 노출되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충격이었길래 정신질환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동안 보아온 바에 따르면 한마디로 표현해서 '심각한 스트레스'이다. 많이들 얘기하는 출산 후나 육아 중 우울증도 있으며 청소년들은 친구들의 '따돌림', '괴롭힘'도 있었다. 이런 사례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며 꽤나 많이 접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주 무대인 학교에서의 친구들과의 문제는 극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이혼에 따른 발병도 목격한 적이 있다. 특히 이혼과 동시에 자녀들을 혼자 떠안아야 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 발병 인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정신과 전문가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듣고 보고 했던 상황들로만 얘기하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일 처음에 말했던 것과 같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허울뿐이든 아니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반대의 사람도 있다는데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것을 보면 정확한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살면서 내가 감당하지 못할 충격이 없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은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어떤 것도 뚫지 못할 강인함을 갖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상처 받지 않는 강인함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검증되지는 않았으나 최소한 그렇게 믿고 살았다. 사진이 없는 일에도 스스로에게 불을 지피며 자신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수생활 4개월 차가 된 지금 스스로 강하다는 생각을 버렸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처참해지는 것을 느낀다. 백수 4개월이 뭐가 대단하다고, 몇 년 동안 공무원, 대기업 등의 번듯한 회사 입성을 위해 삶을 올인하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간비용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쌔고 쌨는데 말이다.


 하지만 난 단 4개월 만으로 무너져 갔다. 강인하다고 생각했던 내 모든 것이 이토록 취약했던 것이었다. 나 스스로를 외면한 채 살았던 것이다. 스스로가 강인하고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기 주입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애초에 나 자신을 높게 설정하지만 않았어도.


  청소년기에는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발기술이 뛰어나서 동네 친구, 동생, 형 할 것 없이 다 채치고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축구를 어느 정도 하는 애들이 오면 내 실력은 어디에 있나 망원경을 들이대고 찾아야 할 판이된다. 노래도 잘하는 줄 알았다. 높게만 지르면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피를 토하는 연습 속에 노래방에서 친구들의 탄성을 자아낸 어깨 힘들어가는 경험도 갖고 있다. 대학시절 동아리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면 거의 끝판왕 격으로 마이크를 잡고 앞선 친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양 기를 눌러버릴 심산으로 기교를 넣어가며 열창을 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이기라도 하면 목소리는 갈라지고 음은 떨어지면 바이브레이션(비브라토)인지 단순 떨림음인지 모를 정도로 자신감이  추락한다. 비단 축구와 노래 이 두 가지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었다.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경우가 하도 많아서 그냥 몇 개만 더 나열하겠다. 스타크래프트(PC게임), 위닝일레븐(축구게임), 어쿠스틱 기타, 스피치(발표) 등등 스스로는 자신 있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지극히 평범한 강자들 한두 명을 마주치는 순간 흥미를 잃고 하던 것을 손쉽게 접고 만다.


  스스로 취했던 '과대평가'라는 스탠스가 이리도 손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데 너무도 많은 힘이 든다. 


  4개월 동안의 취업준비가 그러하다. 나정도 되는 사람 어디든 뽑아 줄 거야라며 사표를 던지다시피 하고 나온 이후 수차례의 이력서 등 서류면접 탈락, 2차 면접 탈락의 쓴 고배를 연이어 마시니 너무 알딸딸하고 정신을 못 차려 휘청거리고 있는 게 지금의 실정이다.


  정신적 약함은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소화기관이 일직선으로 되지 않을 것을 원망하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강제적인 소식을 하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지금은 일본에서 온 좋다는 약을 복용하며 '식후 땡'을 외칠 정도로 약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체중은 줄어만 가고 1년 전 80킬로에서 현제 65킬로로 수직 강하 중이다. 뱃살과 허벅지살이 빠지는 것으로 아내에게 날씬함을 자랑해보지만 살도 건강하게 빼야 한다며 괜한 핀잔만 얻어먹는다.  앞으로 누적된 충격이 또 어떤 부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심히 기대? 가 되는 바이다.


  나는 약하다. 약한 사람이다. 강해지고 싶지만 강해질 수 없음을 안다.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라. 그래서 강해지라고 선각자들이 말하지만 그저 그들의 얘기로 들릴 뿐이다.


  이런 식으로 선각자들의 말을 쿨내 내뿜으며 거부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몸은 그 말들을 완전 삭제하지 못하고, 언젠가 복원할 수 있는 휴지통에 집어놓고 여차하면 휴지통을 뒤적거려 밖으로 꺼낸다. 그래서 하고 있는 짓거리가 지금의 글을 쓰는 것이다. 약한 내 모습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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