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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인생 누구도 모른다.

정환이 형, 정남이 형을 바라보며.

  최근 TV 속에서 소싯적 어려움을 딛고 성공하여 과거 도움을 주었던 인연을 찾아 감사를 표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TV를 많이 보지 않지만 하루 간격으로 비슷한 포맷을 두 번이나 접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TV에 목격했던 당사자는 축구선수 안정환과 모델 겸 배우 배정남이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나 생각한다. 안정환은(호칭은 생략하겠다.) 아주대 시절부터 좋아했다. 난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지만 직접 운동장에 가서 뛰는 것만큼 직관하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씩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 큰 맘먹고 예배하여 직관하기도 하지만 평소 대학축구나 프로리그를 찾아가 보지는 않았다. 입장료가 부담되서기도 하지만 가서 보는 것보다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게 더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직관을 정말 좋아했다면 돈을 차곡차곡 모아 시즌권이라도 끊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신문배달로 나름의 용돈 벌이는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직접 경기장에 가서 축구경기를 보는 일은 거의 없고, 집에서 TV를 통해 시청했다. 집에서 보는 축구도 나름 축구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니 뚫어지게 볼 때가 많았다.


  안정환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먹고 재워주는 축구부에 들어간 것을 축구를 시작한 이유로 들 정도니 말이다. 또한 축구부 회비를 내지 못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후원으로 축구부 생활을 유지했다고 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암울했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그 장소는 '신림동'이다. 어린 시절 신림동 순대골목의 자신을 회상한다. 운동복을 입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순대골목을 지나가면 장사하는 할머니들이 순대를 썰 고난 끄트머리인 꽁지를 주곤 했다고 했다. 운동장에서 전력을 다해 뛰고 나면 얼마나 배가 고플지 짐작이 된다. 제대로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안정환은 시장 골목의 인심으로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래 본다. 또 하나의 기억은 수중에 3만 원이 있던 대학시절 축구부 동료들을 데리고 순대골목을 찾았다. 그런데 식욕 왕성한 그들이 먹은 양은 4만 원어치 인 것이다. 순대집주인에게 사정하여 만원 외상을 달고 나와 지금껏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시절 빚진 만원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는지 가게를 찾아 주인의 딸로 보이는 2대 주인과 마주한 안정환의 얼굴은 그때 그 주인 할아버지가 나온다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때를 감정을 토로하지 못하는 딸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다음은 배정남이다. 싸이월드가 유행했던 대학시절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나는 학우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당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쇼핑몰들 중 인기 있는 쇼핑몰을 전전하며 내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 당시에는 쇼핑몰뿐 아니라 싸이월드, 네이트온을 통한 쇼핑몰 홍보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항상 들어가면 배정남 스타일, 배정남 추천, 배정남 착용 등 배정남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 것에 궁금증이 생겨 배정남이라는 인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신에는 배정남을 동경하는 패션 얼리어덥터들이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지금처럼 예능의 모습이 아닌 진지한 모델로서의 모습만이 존재했다. 배정남의 패션을 온전히 따라 할 수는 없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키가 작은 남자들이 그리 크지 않았던 배정남을 따라 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외모면 외모, 핏이면 핏, 스타일이면 스타일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델이었고 이상형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싸이월드에 그를 퍼 날랐던 기억이 있다.


  이런 그에게 애달픈 과거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억양 센 경상도 사나이지만 말끔하고 매사에 자신감 있는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는 것이 점이 더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본방을 사수하여 본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핵심 포인트 영상만을 통해서도 강인해 보이는 그의 눈물이 나를 울렸다. 어린 시절 키워주던 할머니를 수소문하여 찾아 상봉하는 장면은 가히 이산가족상봉처럼 감격적이었다. 긴 시간이 흘러 휠체어에 앉아 보호자를 대동하고 나타난 할머니를 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며 과거의 부르던 애칭으로 목놓아 우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같이 앉아주고 싶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배정남의 소식을 조금이나마 기억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더욱더 슬픔을 자아냈다.


  누구도 모른다. 지금 내가 주위에 있는 누군가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성공한 모습이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어온 시절을 온전히 이해할 때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안정환, 배정남의 어린 시절이 그토록 힘들었던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않았았던들 어느 누가 가늠이나 했겠는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현재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모습에 다시금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것은 월드컵의 결승골이라던지 모델로서의 성취에 대한 격려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존경이다.


  4개월째 백수생활은 나중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 그동안 묵묵히 지원하고 지켜봐 준 아내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선 두 명의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 희망이 나에게도 온전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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