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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일곱 번째 면접

9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경력이 너무 궁금해.

  오늘까지 몇 번째 면접이었을까? 대략 일곱여덟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몇 번인지가 궁금해져서 지금 바로 노트북 안에 폴더를 열어보고 확실하게 세어 일곱 번째 면접임을 알았다. 지원한 회사 이름으로 폴더를 생성하고 준비한 입사지원서를 각각의 회사 폴더에 넣어둔 덕에 '입사지원 폴더'만 확인하면 여태껏 어떤 회사에 지원하여 몇 번의 서류를 넣었고, 몇 회 면접에 응시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이제 폴더 창의 크기에 따라 스크롤 압박이 오기도 하며, 그동안 지원했던 회사 폴더를 쳐다보는 것으로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입사지원 자료이자 낙방의 자료이기도 한 폴더 속 데이터는 다음 타자(회사)가 결정되는 즉시 업데이트되는 따끈따끈한 자료가 된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경력은 11년 하고 몇 달이 더 있으며, 과장이 최종 직급이다. 따라서 앞으로 가고 싶은 직장은 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장 정도는 되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모든 경력을 무시하고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채용하는 쪽에서도 나이가 많고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왜 직책이 없는 일반직으로 입사지원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으며, 또한 그동안 받아왔던 직급과 호봉의 대가는 버릴 수 없다. 내 시간과 노력의 산물인 내 경력을 왜 버리겠는가? 이것을 욕심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취업이 안된다고 이순신 장군님의 '백의종군'을 여기에 갔다 붙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신입의 자리에 들어가 일해야 하는 상황은 따로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오늘 일곱 번째 면접은 이러했다.


  마지막 직장에서 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만 일했던 이유와 상황설명을 하는데만 무려 30분이라는 시간이 들어갔다. 면접시간 30분. 이 정도는 시간을 투자해야 괜찮은 사람을 알아보고 채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을 제외한 그동안 여섯 번의 면접시간을 대략 평균 내보면 10~15분인 것을 감안할 때 30분 면접이라는 꽤나 긴 편에 속했다. 무려 두배나 되니 말이다. 30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투자하여 관심 갖아주는 시간이 즐겁기도 하다. 애정의 표현이나 관심은 아니지만 나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니 말이다. 자신 있게 그 시간을 활용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면접관들이 나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들은 이력서를 통해 이미 주지한 상태였고, 이곳에서 함께 일하기 위한 한 가지 질문만이 중요하다며 일을 열었다.


 "마지막 직장에서의 경력이 짧은데(9개월) 이유가 있나요?"


  지금껏 일곱 번의 면접을 봤지만 이 질문을 하지 않은 회사는 없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할 길은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얼굴은 이미 궁금해 미치겠다는 걸 억누르며 살짝 미소 지은 채로 눈으로 최면을 걸고 있었다. 난 막대사탕의 홀 속으로 빠져든다. 아무리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려해도 안 걸리려고 발악하면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난 최면에 빠졌다. 하니 다르게 말하자면 최면을 건 것은 그네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3명의 면접관들이 내 밑밥을 물었다. 누구랄 것 없이 질문에 혈을 올린다. 질문은 이미 수십 가지 만들어져 있지만 이 질문을 모두 하기에는 내 답변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다.


  왜 면접관들이 내 마지막 짧은 경력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는지 난 이미 알고 있다. 이제껏 면접을 보는 모든 곳에서 같은 질문을 받으며 면접관들이 관심 있는 것은 이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나 업무능력보다도 우리 회사에서 나(보스)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부분의 보스들이(보스를 리더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추구하는 인재상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불만을 표출하지 않으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회사 내 문제나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회사에서 '인재'라 한다. 난 이것을 인간이 화를 부른다는 '인재'라고 생각한다.(한자로 쓰면 좀 더 멋있었을 텐데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9개월의 짧은 이력의 변은 이렇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보스의 행동이 이상하다. 직원들이 결재서류만 가지고 들어가면 인상이 일그러져 나오고, 말단 사원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팀장, 과장들은 불려 들어가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한 팀장, 과장이 해야 할 일을 보스 자신이 나서서 하며 솔선수범이라 말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회의라는 명목 하에 회의실 칠판에 빽빽이 적어놓은 당일, 주간, 월간에 할 일 십 수 가지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빙고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지우지 못한 항목은 점검일을 정해놓고 진행과정을 수시로 보고 받는다.(이렇게 말하니 유능한 보스 같다.) 하지만 직원들의 헐떡이며 하고 있는 업무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스 자신이 남들에게 보이는, 특히 보스 자신의 상사에게 잘 보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직원들을 옥죈다. 


  그래도 직원들은 열심히 일해 성과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생계형 직장인들이 그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는가? 하지만 이 보스는 맘에 들지 않는다. 열심히 만들어 가지고 들어간 성과물은 곧 쓰레기가 되어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쓰레기가 조금도 손볼 수 없는 재활용 불가의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다시 야근 모드 돌입이다.


  이 보스는 직원들의 회의가 '작당모의'로 생각한다.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 회의를 부정한다. 보스를 포함하여 모두 함께 회의를 한다 치면 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할 터인데 갑자기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시간이 되고 일장 연설을 마치고 회의는 끝난다. 의견을 나누는 시간은 없다. 이런 이유로 건의했다. 보스에게는 모든 논의된 사항을 보고드릴 터이니 자유로운 회의를 보장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없는 회의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회의를 1부, 2부로 나누어 1부 회의는 보스와 함께. 2부 회의는 직원들 간의 자유 회의가 되도록 건의했다. 이 대안은 납득이 됐는지 그러자고 하고 한 달간 운영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직원들 간의 따로 회의를 없애고 자신과 처음과 끝을 같이하는 회의로 돌아가버렸다. 또 보스를 욕하는 작당 회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것 말고 신기한 경험들이 있다. 이 회사는 오픈한 지 2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과장으로 올 때 원년멤버인 먼저 과장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보스를 욕하며 떠났다. 인수인계랄 것도 없는 미미한 자료를 남긴 걸 보아 정상적인 퇴직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후 대리 한 명이 그만두었다. 이 역시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표방하지만 속내를 얘기했을 때는 보스에 대한 불만이었다. 진급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으로 기대감을 한껏 주고 이를 번복하여 상처를 준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의 보스는 기준 없는 진급에 대한 약속을 남발했다.


  회계는 가관이다. 지금껏 6명의 회계가 채용됐다가 그만뒀다.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3개월이었다. 거쳐간 회계 중 이런 얘기를 한 사람도 있다. "보스가 들어오는 구두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사직한 이들에 대한 보스의 평은 '일을 못해서'였다. 6명 모두 말이다. 이곳의 보스는 사람을 '일하는 기계'로만 생각하고 자신을 말에 복종해야 하는 종으로만 보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회사를 나가는 날. 어떠한 사유를 만들어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직원이 떠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와 그 직원이 나간 이유를 직원들에게 예쁘고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취업자리를 알아봐 주고 있다는 거지 같은 말도 덧붙인다.


  2년 된 회사에서 많은 이들이 떨어져 나가니 법인에서 방법을 강구한 것이 '부장'의 채용이다. 사실상 과장 체제였던 소규모 회사에서 '부장'의 직급을 통해 안정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첫 번째 면접을 통해 오랜 경력의 부장님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직원들 간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포부를 밝히며 따뜻하고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며 새로운 곳에서의 의지와 다짐을 보였다. 이 첫 출근일에는 이전 직장의 동료들로부터 부장으로 채용된 건을 축하하기 위해 먹음직스럽게 포장된 떡이 배달 왔다. 부장님의 건승을 빈다는 예쁜 스티커를 붙여 '직원 일동'으로 배달된 것만 보더라도 이전 직장에서의 직원들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우리에게도 기대감을 주는 사건이었고 실제로 여기 직원들도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말을 덕담처럼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하루 만에 사라졌다. 첫 출근일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관장님의 사업방향 브리핑에 이은 인수인계를 열심히 받았고 다음날 죄송하다는 문자를 남긴 채 출근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관장님과 면담하고 인수인계를 받으며 하루 만에 이곳을 파악했을 거야. 그럼 답이 나오지 않겠어?"


  다음으로 채용된 부장은 무척 강인할 것으로 보이는 인사이었고 직원들에게도 조금은 아재스럽지만 유머러스한 면모로 다가왔다. 이 부장이 견딘 기간은 3개월이다. 법인에서 엄선하여 공개채용을 빙자한 낙하산 인사를 자행했고, 법인에서 내리꽂은 이 사람은 관장이 함부로 할 수 없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관장은 법인에서 자신의 입지를 떨어뜨리는 이 부장을 못마땅해했다. 결국 일을 처리하기 곤란한 난해한 시간을 주고 책임을 전가하여 질책하며 사기를 떨어뜨렸다. 간부회의를 통한 업무 제하기 빙고게임이 거의 부장 단독으로 이루어졌다. 초기 보스와 직원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잘하겠다는 다짐은 없어지고 자신이 살기 위해 보스에게 백 프로 맞춘다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 결과 직원들의 원망을 사지만 자신의 숨구멍을 트인다. 하지만 법인 낙하산이라는 것이 백 프로 맞추기로 했던 전략이 통하지 않는 사실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뼈저리게 느낀다. 부장이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미운 것이다. 결국 보스가 없는 동안 짐을 싸서 직원들을 등지고 쓸쓸히 문을 나선다.


  낙하산 부장이 나간 후 법인도 소용없다는 자신감이 붙은 보스는 자신을 위치를 공고히 하는 전략을 세운다. '실적'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 잘하고 있는 것들을 이곳에서도 시작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또 많은 직원들이 왜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지시에 복종하며 나름의 일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비난과 모욕감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퇴사를 결심하게 했던 훨씬 많은 일들도 모두 생각해서 기록해 놓을 것이다. 이런 보스 밑에서 일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하여 내 기억 속에서라도 나쁜 보스의 표본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이런 보스가 외부적으로는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이런 보스가 지역사회의 명망 있는 사람들, 자생단체, 유관단체의 장들 그리고 동장을 비롯한 시의원 구의원들과 교류하며 그럴듯한 리더의 탈을 쓰고 있는 것에 더욱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타인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일이 자신을 위해서인 경우가 더러 있다. 사회복지사들을 폄훼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일의 특성상 그런 일이 가능하며 이를 악용하는 보스들이 분명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난 9개월 간의 이곳 경력을 버릴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게 득이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력서에 빼놓지 않고 써넣은 것은 그간의 면접에서처럼 나에게 왜 이렇게 빨리 그만두었는지 이유를 묻는 물음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답은 나 마저도 편견의 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대답을 듣고 나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면접관들은 많지 않다. 단지 자신에게도 말과 행동을 문제 삼으며 따지고 들 것 같은 불안감에 면접을 통해 자신과 내가 맞춰갈 수 있을지를 재보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걸러내기이다. 이게 속단이고 피해망상이라 한다면 첫 질문에 대한 비중에 왜 이리 높은 것인가?


  오늘 30분간 면접에 앞서 3명의 면접관은 다른 업무적인 것보다 이것이 채용에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전 직장의 9월간의 짧은 이력' 이를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전 직장을 들먹였다. 이 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마치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보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대한 답을 준비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제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해야지라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생업이기에 나처럼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없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이 질문의 대답을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두 마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매스꺼웠다. 식도로 역류하는 가슴의 뜨거움도 동반했다.


  오늘 받은 질문을 정리해보면.(생각나는 것만)


  "그곳에서 왜 그렇게 짧게 일하셨어요?"

  "보스와의 문제가 있었다면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을 하셨어요?"

  "중간관리자로서 보스와 직원들 간에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어요?"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했다면 어떤 부분인지 상세하게 말해주세요."

  "당신의 비판에 대해 대부분의 보스들이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격적인 대우와 민주적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회사에서 즐겁게 일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회사라는 곳이 즐겁기만 할 수 없는 곳인데 즐겁게 일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여자 상사와 일해보셨나요?"

  "일해보셨다면 어땠나요?"

  "그들은(여자 상사) 당신을 어떻게 생각했나요?"

  "당신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주세요."

  "당신은 성격은 어떤가요?"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듣고 두 명의 면접관이 소회를 가졌다. 한 명은 "당신의 얘기를 들으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요."('이전 보스'에 대해 열을 내뿜은 내 대답을 들은 후였다.) 또 한 명의 면접관은 "당신의 얘기를 들으니 이전 직장에서 보스의 타깃이 되어 퇴사한 직원이 떠오르네요."라고 했다.(내 상황이 그려졌을까?)


  일곱 번째 면접 결과는 아직 나지 않았지만 마음은 내려놓았다. 내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9개월간의 경력 첨삭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전 직장의 짧은 경력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나의 전체를 바라봐주고 알아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세상에 존재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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