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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인생사 새옹지마

나를 위로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한다. 변방 노인의 말처럼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되기도 한다. 어제 본 면접에 대한 회신은 결국 오지 않았다. "느낌상 안될 줄 알았어."라며 쿨하게 신경 안 쓰는 척하느라 꽤나 힘들었다. 차라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한 후 '떨어졌구나'하고 빨리 인정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쿨한 척으로 자존심은 세웠는지 몰라도 내면은 불편하다.


  인생사 새옹지마로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작년 이맘때쯤의 취업이 '반전', '역전'된 상황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정확하게는 작년 11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알렸고, 그 기쁜 소식은 오랜 기간 지방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상경하여 눈뜨고 코베인다는 서울(엄밀히 말하면 경기도권)에 일자리를 잡아 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일순간에 잠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열심히 일하는 일만 남았더랬다. 역시 사람에게 '죽으라는 법은 없어'


  하지만 그 기쁘고도 황홀한 취업소식으로부터 지금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는 건 어찌 보면 믿기지가 않는 사실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때 최종 합격의 환희는 전혀 생각나질 않고, 그때의 합격이 결국 내 커리어에 흠집을 냈구나라는 생각만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일을 겪어보니 '사람 인생 진짜 모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신의 뜻 가운데 있다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건 모든 것이 신의 개입이라 믿는 것이다. 따라서 신을 믿는 나와 아내는 실직을 한 이후 '대체 왜?'라며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9개월이라는 짧은 취업기간 동안 아내와 결혼했고, 내가 일했던 직장 근처 걸어서 10분 거리에 신혼집을 꾸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만 보였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실직의 사유는 앞서 수차례 말했고 앞으로도 말할 것이기에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결국 난 백수가 되어 4개월째를 지나 5개월째를 맞이했다. 여태 4개월로 얘기했었는데 손을 꼽아 세어보니 5개월째다. 세월 흘러가는 것이 정말 유수와 같고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 같으며 자동차 시속 140킬로로 달려간다.(40대는 40킬로로 달린다는 얘기가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앞자리를 넣어 단위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난 이번 달까지는 30대)


  신혼부부 대출을 받아 이름만 들어도 럭셔리 해 보이는 '오. 피. 스. 텔'(처음엔 잘 몰라서 이런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실상은 열두 평짜리 방 하나 거실 하나, 이게 끝)에 살게 된 것, 그리고 이 오피스텔이 있는 곳도 서울과 근접하여 어마 무시한 집값을 자랑하고 있어 걷기도 조심스러운 동네에 살게 된 것이 그때 그 취업 때문이다. 그놈의 취업만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이라고 몇 번을 외쳐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란 걸 잘 안다. 그러면 대체 신은 왜 이런 곳에 취업하게 한 걸까? 주셨으면 10년은 일하게 하셔야지 말이다.(다시 말하지만 신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신의 계획 속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결론 내린 것은 바로! 우리가 결혼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난 이 직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은 '아내'밖에 없다. 내가 직장이 있었기에 결혼이 가능한 거였고, 만약 직장 없이 부모님 집에 빌붙어 먹는 백수였다면 난 아내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식 신부 입장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오시는 장인어른의 얼굴 표정을 봤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난 내가 취업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결혼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좋은 날, 장인어른의 웃음기 없는 얼굴은 시종일관 계속됐다.(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사의 재촉 때문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여기에 더해 지금도 아내와 에피소드처럼 얘기하지만 결혼식 광고시간, 장인어른이 축하해주시기 위해 오신 하객들에게 양가를 대표해 인사를 하고 피로연장 위치 안내를 하는 짧은 시간이 있었다. 그 자리는 정성 들여 준비해온 편지를 읽는 자리도 아니며 와주신 하객들에게 그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식사를 맛있게 하시라는 멘트만 읽어 내려가시면 되는 그런 시간이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광고 첫마디를 내뱉으시시다가 울음을 터트리셨다. 그리고 눈물기 쏙 빼놓은 담담한 맨트로 '피로연장은 바로 아래층에 준비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셔서 하객들은 울다 웃다 엉덩이에 털날 지경이 됐다. 아내의 친구들은 이런 장인어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결혼식 얘기까지 끄집어낸 것은 바로 '취업'은 신의 뜻이었고, 그것이 나와 아내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함이다.


  이런 복된 시간이 지나가고 5개월째 백수생활 중인 나는 아내의 벌이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일해서 먹고살면 어떻겠냐마는 우리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분명하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함께 일하며 대출을 갚고 작은 집 하나를 얻어 여유 있게 좋은 일도 하면서 살자는 우리의 계획. 결혼하자마자 무산됐다. 작년 그때 그 시절의 취업으로 인해 지금껏 정착하고 있는 이 신도시에서 또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의 '화'가 '복'으로 바뀔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결혼 스토리를 들어보면 복으로의 반전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내가 겪는 지금의 백수의 시간, 좋게 말해서 취업준비생의 시간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며, 아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복된'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이것도 고통을 잊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방어기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산사람은 좀 살아야지.


  "진짜 인생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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