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고 기다려줘!
인생에서 제일 잘 선택해야 하는 사람을 꼽자면 분명 아내일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기에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친구 또한 잘 선택해야 하지만 평생에 걸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배우자'일 것이다. 주위에 종교가 있는 사람 중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위해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그 기도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원하는 이상형의 많은 조건들을 나열할 수도 있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상형의 평균치나 최소치를 구할 수도 있겠다. 혹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신의 선택으로 돌리고, 알아서 간택해 달라고 청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바로 후자였다.
그렇다고 이상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외적인 기준이 있으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가족과 형제들은 어떤 분들이며, 이 여인은 어떻게 갈등을 풀어나가는지, 책과 음악은 좋아하는지, 친구들은 많고 적은 지, 친구를 사귀면 가볍게 여럿을 사귀는지 소수정예로 사귀는지 등등의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져다 줄 거라는 확신은 없었기에 그리 매달리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적정선에서 묻는 사람들에게만 살짝살짝 비췄을 뿐이다.
뚜렷한 기준이 없으니 소개를 받게 되면 이상형의 기준점을 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를 만나듯이 특별한 목표 없이 아무 생각나는 이야기로 어색한 첫 만남을 풀어나간다. 이건 탐색하는 과정이 아니며 그저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예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마주 앉아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 자체가 필요치 않치 않은가? 물론 주제가 끊겨 정적이 흐를 때도 있지만 머리를 쥐어짜 내 새로운 주제 거리를 던지곤 한다. 사실 서로 마주 앉기 전에 몇 가지 주제를 선택하지만 이를 받아주는 상대방에 따라 소재가 빨리 끊어지기도 한다.
아내는 소재를 빨리 끊어지게 하는 마성의 소유자였다. 새침하고 시크한 표정은 전매특허이며, 지금은 아내의 얼굴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아내의 얘기로는 친구들로부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상을 가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여하튼 대화는 이어져야 어떤 결정이라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식사에 이어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역시 카페의 불빛이란 사람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이도록 하는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내가 입고 온 원색 계열의 강열함이 조명 색과 믹스되어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주었고, 그녀는 내 미간 앞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자신에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최면에 걸린 나는 결국 취한 사람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만다. 지금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전 여자 친구 얘기다.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귀었고, 어떻게 해어졌는지를 거의 프레젠테이션 하듯 했다. 지금도 고통받는 이유이다.
결국 그렇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은 내가 어쨌든 안심이 됐는지 그 뒤로는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급진전되어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기까지의 과정만으로 아내를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이 시작이라고 말하듯 아내의 모든 걸 알고 결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 후의 과정이 더욱 중요했다. 물론 결혼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삶에서 보여지는 아내의 모습은 다를 거라 생각했고 과연 이 사람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의 모난 삐딱이 성격을 받아줄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역시 결혼하고 몇 달 되지 않아 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에서 이미 마음이 떠난 나는 한두 달 전부터 고지를 시작했지만 아내의 첫 반응은 눈물이었다. 두 번째 고지 또한 눈물과 한숨이었다. 세 번째 최종 고지는 담담함과 '어떻게 되겠지'하는 초연함이었다. 세 번째 고지에 대한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우리의 인생계획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신의 도움으로 잘 될 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내보였다. 난 이런 아내의 고마운 마음에 다시 재취업하는 기간을 한 달로 잡았다. 하지만 지금 벌써 5개월 차. 아내는 말한다. 애초에 그렇게 빨리 취업하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고 말이다. 요즘 힘든 취업난에 경력직 자리가 그리 쉽게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내는 내 생각보다 긴 '취업과의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다. 얼른 취업해서 가장 노릇 하겠다고 설레발쳤던 내 모습과는 다르게 부단히 현실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자신의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목 하며 취준생인 내 기가 꺾이지 않도록 열심히 지원 사격한다.
아내의 대표적인 지원사격은 바로 요리다. 아내는 정말 요리 못하게 생겼다. 요리 못하게 생긴 얼굴이 따로 있겠냐마는 결혼하면 밥만 해놓고 반찬은 요즘 늘어나고 있는 반찬가게 중 잘하는 곳을 한 곳 뚫어 단골을 삼고 매번 그곳에서 사다 먹을 줄 알았다. 결혼 전에 아내의 요리를 솜씨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희망도 거의 없었다. 기대를 걸만한 곳은 내 자취 15년 차의 위엄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말한다. 내가 만든 떡볶이는 잡탕이고 쓰레기라고. 하지만 라면 물 맞추는 것 하나는 일품이다.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결혼 전 지인들의 '아내의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고 하고 먹으라'는 조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감동의 표현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외고 있는 레시피는 없지만 (요리 백 선생님)의 레시피를 얼핏 보고 따라 하면 생각했던 그 맛이 나온다. 아니 그 맛 이상이라 해야 맞겠다. 아내는 백 선생님의 정석 레시피에 다른 어울릴 만한 재료들을 첨가하여 새롭게 재창조한다. 어쩔 때는 아내의 손맛에 나만 감동하기에 아쉬울 때가 있다.
아내의 요리 센스에는 정갈함이 더해진다. 아내는 반찬을 통째로 꺼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예쁜 찬 그릇에 먹을 만치 담아 우리 둘만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조화롭게 배치한다. 설거지 담당인 나는 아내가 각각의 찬그릇에 담아내는 것을 보고 그냥 반찬 통째로 먹자고 했다. 설거지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말한다. "어머니도 그렇게 하셨어. 아버지에 대한 존중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 알게 될 거야." 그 대답 이후 난 묵묵히 설거지에 전념한다.
아내의 별명은 '땡글이'다. 별명 붙이는데 소질이 없는 나는 내 눈에 꽂인 사랑스러운 모습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었다. 아내는 눈이 크고 동그란 데다 얼굴도 동그랗다. 눈도 길쭉하고 얼굴도 길쭉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내가 갖고 있어서이지는 몰라도 나와 다르게 생긴 아내의 동글동글한 모습이 너무도 귀여고 사랑스럽다. 지금 생각해보니 성격도 동글동글한 것 같아 내가 지은 '땡그리'란 별명이 더 괜찮아 보인다. 아내는 내가 '땡글리'라고 하면 날 보며 넌 '네모나미', '길쭉이'라고 하며 응수한다.(우리는 나이가 같아서인지 아직은 '너'라고 부르는 게 편하다. 특별히 예의 없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는 예전에는 잘 꾸미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내의 중고등학교 시절과 20대의 사진을 보고 알았다. 분명 꾸미는 것을 즐겨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확실하다. 하지만 나를 만나기 몇 해 전부터 치마와 블라우스, 원피스에 매력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의 옷장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종류의 옷들이 넘쳐난다. 특히 치마의 개수가 입을 쫙 벌어지게 했다. 그렇게 아내가 가져온 자신의 옷들을 함께 정리하며 아내의 스타일을 간파했다. 물론 외출 시가 아니면 일체 꾸미지 않는 자연인의 상태로 있는다. 아내는 결혼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남편에게 화장을 지운 민낯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보니 그런 고민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내는 흐트러진 모습도 자주 보인다. 밤낮이 바뀐 탓에 아내의 출근 이후 일어나게 되는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면 한결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입고 있던 잠옷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졌고, 이를 치우려고 보면 윗도리의 팔이 항상 뒤집혀 있다. 마치 엄마가 아들방에 들어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뒤집힌 빨래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어젯밤에 입었던 바지며 티셔츠도 한결같이 뒤집어 아무 곳에 올려져 있다. 이런 아내의 흔적을 보고 있자니 내가 엄마가 된 듯한 느낌도 들어 뿌듯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아내 얘기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잠잘 때 모습이다. 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나는 아내가 한참 꿈속에 있을 새벽 4,5시에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간다. 이때 아내의 모습 또한 한결같다. 이불은 걷어차서 한쪽으로 뭉개져 있고, 팔은 위로 뒤집어 깐 채 발 사이에는 두꺼운 쿠션 배게를 끼고 침대를 사선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이제는 전형적인 모습이 됐다. 너무 웃기고 귀엽다. 아내가 깨어나면 보여줄 생각으로 핸드폰 카메라로 몇 장 담은 것이 이제는 작품전시회를 해도 될 정도가 됐다. 매일 볼 수 있는 그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찍지 않는다.
아내의 단어 선택도 화재 꺼리다. 나에게 걸린 것이 수차례. 직장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아내는 말을 하다가 문맥에 맞지 않는 단어를 선택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리고 마치 맞는 말인양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듣고도 찝찝한 이 단어를 교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 아내의 말실수에 빵 터지며 바른 교정을 해준다. 초등학생 영어를 가르치는 아내는 주위 동료 교사로부터 '교포 코스프레'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치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잘 모르는 사람인 양 말이다. 더욱이 아내는 입을 오만가지 방향으로 움직이며 말을 하기 때문에 더욱 교포로 의심받는다. 얘기할 때 입만 보일 정도로 입 주변을 크게 씰룩씰룩하며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가 주인공이 홀든이 친구 '제인'에 대해 표사한 것이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아내는 입을 실룩거리며 단어 실수를 자아내 아내의 동료 중 아내 말실수 어록을 적어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서 본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과거 '최불암 시리즈'급에 준할 정도가 아닌지 생각한다. 아내의 어록 공개는 직장 동료에게 기증받고 내가 들은 것들을 총정리하여 아내의 인가를 받아 다시 한번 편찬하도록 하겠다.
다음 아내와의 맞춤 포인트는 갈등 해결 방법이다. 아내와는 도무지 싸움이 되질 않는다. 싸움이 될만한 상화에 먼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내게는 아내의 눈물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 우선되기 마련이다.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하기도 했지만 아내는 애들이 우는 것처럼 참 서럽게 운다. 입은 삐축나오고 큰 눈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들. 울 때는 호흡도 불규칙해져 숨을 헐떡대며 눈물 콧물과 함께 침을 꼴까닥 삼키기도 한다. 이렇게 온몸으로 울고 있는 아내를 보자면 다시는 울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아내의 울 일은 또다시 생기고 만다. 하지만 아내도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한번 울었던 사안을 가지고 두 번 울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내와의 갈등이 해소되고 나면 아내의 고백이 이어진다. '사랑해' 대담하게 나의 목을 끌어안고 귀에 속삭인다. 그리고 더 감동적인 맨트도 덧붙이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 이 말을 들으면 우리 둘 다 눈에 눈물을 머금고 서로의 눈 속을 말없이 한참 쳐다본다. 먼저 우는 쪽이 지는 것인 양 안간힘을 다해 눈물 떨어지는 것만은 막는다. 결국 나의 승리로 끝나 다시금 승리에 도취된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내는 내 실직에 마음 아파하고 빨리 좋은 직장이 구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정성을 쏟아붓는다. 내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모든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묵묵히 기다리며 나를 위해 신께 기도한다. 이런 아내를 맞이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기적이다. 결혼 전 신에게 알아서 해주시기를 기도드렸던 내가 분에 넘치는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지금의 힘든 상황 역시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지만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한 걸음씩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