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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05. 2023

야자수 열매의 유혹

내가 나고 자란 내 고향 마을은 20호 될까 말까하는 산촌 마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근에 그 흔한 점방 하나 없었으니 당연히 교회가 있을리 없었다. 당시 꼬재기 할머니가 교회에 다녔고 청양할머니가 성당에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에서 두 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면소재지에 있는 무량사에 다니던가 아니면 무신론자였다.


내가 여덟살 무렵까지는 토속신앙을 믿는 집도 있어서 때마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 길목에서 거리제를 지내는 이웃도 있을 정도였다. 거리제를 지낸 뒤에 마을 어귀에 나가보면 지푸라기 위에 떡이랑 몇장의 지폐 그리고 동전이 놓여져 있었다. 우리는 밤새 아침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젤 먼저 뛰어나가 돈을 주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거기서 주운 돈은 집안에 들이면 안된다고 해서 그날 학교에 가서 남김없이 군것질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곤 했었다.


워낙 환경이 그러다보니 교회나 천당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먼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살던 아랫마을에 천막교회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친구한테 듣게 되었다. 친구도 그 천막 교회에 다닌다면서 나보고 주말에 천막 교회에 나오라고 꼬드겼다. 그 일이 있은 얼마 뒤부터 우리 동네에도 전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천막교회를 이끌던 젊은 집사님이었는데 사실 그분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


그 집사님은 황무지 같은 우리 마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농사철에 직접 농약통을 메고 농사를 도울 정도로 전도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은 커녕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바빠 하나님 나라는 바다 건너에 있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했다. 어른들 전도에 벽을 실감한 집사님은 그때부터 어린 학생들을 전도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에 친구랑 같이 나온 그 집사님한테 딱 걸렸다.그들은  길을 막고 주말에 천막 교회에 나오라고 나를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 알겠다고 하고는 집에 돌아가 그 집사님한테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점은 이랬던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도 믿기 어려운 세상에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인지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시면 바로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편지지 4장을 꽉 채워 보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자 내 편지를 받은 그 집사님이 바로 회신을 보내주셨다. 역시 긴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자매님!~ 길가에 있는 야자수 나무  열매를 따 먹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야자수 열매가 달다든디 시다든지 말 할수 있겠어요? 먼저 그 열매를 따 먹어 보고 달다 시다 말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것 같네요"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바로 천막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갔지만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번 교회에 나가다가 바로 포기하고 안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던 어느 날의 일이다.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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