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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06. 2023

유발 제자 '법명을' 받다

더 이상 교회에 대한 미련을 거둔 이후로는 무신론자의 삶을 선택했다. 대신 종교에 대해서는 어느 종교든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는 부분에 동의하는 정도였다. 어쩜 당시 나는 종교보다는 학업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지라 내 계획과 다르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 속에 내 던져졌다. 그리고 꼭 겪지 않아도 되었을 온갖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30대를 보낸 것 같다.


그 힘든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은 못 다 이룬 문학에 대한 꿈이었다. 산소호흡기처럼 시에 매달려 살던 시절이었다. 당시 문학 공부를 위해서라면 나머지 것들은  내 삶에서 모두 2순위로 밀려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문학이 뭐라고 그토록 간절했었나 싶지만 그때는 문학이 나를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준 유일한 환풍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스스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또 나름 꼼꼼한 인생 계획하에 하나하나 이뤄가다가 계획에 없던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걸려든 것이다. 비록 계획에 없었던 결혼이었지만 나름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내 노력을 보란 듯이 배신하는 인생의 굴곡 앞에서 더 이상 가정에서는 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결혼과 동시에 놓아 버린 문학 공부에 뒤늦게 발동이 걸려 가정을 뒤로 한채 이리저런 문학행사에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틈틈이 인문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시 최고 핫했던 법정 스님의 책을 한 권 두 권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불교 관련 서적들에 매료되어 차츰 더 어려운 책들을 찾아 읽었다가 점차 라캉부터 노장 사상까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씩 접했던 것 같다.


내가 문학을 선택한 것은 역시나


"왜 사는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자아 찾기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문학마저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 주지는 않았다. 다만 내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한 발 더 다가서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문학이라는 산을 넘는 동안에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던 중 한 7~8년 전쯤에 선배와 함께 한 암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암자의 주지 스님이 한때 내가  잘 따르던 선배의 고향 친구였다. 그날 나를 처음 본 스님은 함께 산에 오르면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스님의 질문에 제법 말대답을 따박 따박 하는 것을 보시더니 나에게 법명을 지어 주셨다.


"오호라! 하나를 물으면 열은 알아 듣는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는 오늘부터 내 유발 제자해라"


정안스님은 그날 내 법명을 거울처럼 지혜를 닦으라는 뜻에서 혜경이라고 지어주셨다.


"그럼 제가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그럼"


"그런데 스승님!

 유발 제자가 뭐예요?"


"응, 유발제자는 머리칼이 있는 제자라는 뜻이지"


그날부터 나는 정안스님의 유발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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