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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11. 2023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하여

시간의 철학적 성찰

소광희 (지은이) 문예출판사


"태양계 안의 모든 생물의 삶은 해와 달과 지구가 자전·공전하는 순환과 그 리듬을 같이한다. 이렇게 모든 변화는 시간과의 관련성을 떠나서는 성립하지 못하는 데 우리는 과연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는지는 확실치는 않다. 아마도 박사 과정 입문 당시 신동엽 시인에 대한 소논문을 쓰기 위해서 참고 서적을 찾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것 같다. 비록 하고자 했던 공부는 중도에 포기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에는 많은 철학자들의 시간에 대한 세계관에 대해서 아주 명쾌하게 풀이해 준다.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구체적인 구절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중요한 맥락은 동양의 시간관이라고 하는 순환론적 세계관서양의 시간관이라고 하는 직선론적 세계관에 대한 내용이다. 순환론적 세계관과 직선론적 세계관은 종교의 시간관인 동시에 문명의 시간관이기도 한다.


동양의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순환론적 시간관은 위에서 말한 "태양계 안의 모든 생물의 삶은 해와 달과 지구가 자전·공전하는 순환과 그 리듬을 같이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인식하던 인식하지 못하던 이 우주는 자전과 공전을 이어가면서 순환한다는 시간관이다.


서양론적 시간관으로 대표되는 직선론적인 시간관은 삶과 죽음 즉 시작과 끝으로 대표되는 시간관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관은 기독교적 시간관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즉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내세관에 입각한 시간관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내세가 있다고 하지만 일반론적 시각에서 보자면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시간관이다.


하지만 순환론적 시간관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내세로 간다는 뜻이 아니고 이 우주 안에서 영원히 순환하는 영원회귀의 세계관이다. 이런 측면에서 두 시간관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동양의 주역이나 불교의 시간관은 당연히 순환론적 시간관이다. 그리고 근대 철학자 중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 또한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순환론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다만 니체가 주장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지금 여기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대지에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하튼 큰 맥락에서 보면 영원회귀 사상은 순환론적 시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니체는 현생 즉 대지에서 힘에의 의지를 통해 주인의 도덕으로서 위버멘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이런 시간관이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존재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서 시간관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도 <존재와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고민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시간에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즉 시간에는 반드시 손바닥과 손등의 개념처럼 공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과 지금 여기라는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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