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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12. 2023

니체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했을까?

내가 만난 니체

나는 철학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인생의 어느 골목에서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니체를 엄청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절벽을 느끼게 되면서 유튜브에서 니체 강의를 찾아 듣기 시작한 것이 내가 니체를 알아간 방식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니체 전공자인 이진우 교수부터 백승영 교수, 김필영 교수의 오분 뚝딱 철학 등등의 강의부터 서울대학교 철학 전공자들 강의까지... 그냥 손에 짚히는 대로 찾아 듣다가 어느 날 '자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비유들을 검색하다가 니체 해설서를 발견하고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니체에게 빠져 들기 시작했다.


니체를 읽는 와중에 니체가 '라투스라를 이렇게 말했다'를 쓸 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는 니체의 연인 루 살로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석학들의 연인으로 군림했던 루 살로메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역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또 하나는 한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 자유의지가 그토록 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시 니체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니체는 왜 자기 철학의 핵심 사상을 집대성한 '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하면서 기원전 6~7세기에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니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니체는 일찍이 고전학 분야의 일인자로 인정받았을 만큼 고전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래서 1869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논문과 시험 없이 출간된 저서들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리고  24살에 바로  리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직을 맡게 된다. 그리고 1872년에 <비극의 탄생>을 집필한다. 이는 당대에서도 아주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받고 있는 부분이다.


니체의 인생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맥락을 짚어보면 기독교 목사 집안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니체는 1844년에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전직 교사이자 루터교회 목사였던 니체의 아버지(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는 1849년에 뇌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니체의 남동생도 1850년에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죽음으로 그의 집안의 유일한 남자는 니체뿐이었다.


또 니체 친가뿐 아니라 외가도 대대로 목사 집안이었고 니체 또한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대학 입학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신학대 입학이 좌절되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했지만 니체는 누구보다도 기독교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다 고전문헌학에도 엄청 해박했기 때문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런 모든 지식의 배경 위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 철학이 나오기 이전에 성행했던 서양철학의 관념론과 기독교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를 두 개로 구분한 점이다. 기독교는 이승 이외에도 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쳤고, 플라톤 또한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이분했다. 니체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에 반대하면서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들을 퇴락한 인간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니체는 왜 자신의 핵심 철학을 설파해 줄 대리인으로 차라투스트라를 선택했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니체는 당시 서양을 지배하고 있던 이분법적인 사유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는 없다. 한 마디로 이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말한 절대 진리인 이데아를 반대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 고문인천당 그런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망치로 내려 쳤다.


차라투스트라는 본래 조르아스터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의 다른 이름이다. 왜 갑자기 조로아스터교냐고 물으신다면 조르아스터교가 기독교에 영향을 줬고 조르아스터교에서 맨 처음으로 천당과 지옥을 그리고 유일신을 주장했다.


니체가 보기에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상을 깨 부수기 위해서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차라투스트라(조르아스터)의 입으로 이것은 잘못됐다. 그러니 지금부터 정신 바싹 차리고 현재의 삶을 힘에의 의지를 통해서 더 낳은

삶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라~ 뭐 이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냥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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