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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12. 2023

영원히 현재의 삶을 반복한다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요즘은 백세 인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100세는 거뜬히 살 수 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보험 계약기간도 예전에는 80세 만기였는데 요즘에는 100세 만기로 수정됐다. 그럼 예전에 80세 만기로 든 나 같은 사람은 80세가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단 말인가? 수명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 일단 접어 두기로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

지금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100%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 될까?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일반화된 행복(라캉식으로 말하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의 기준을 따라가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일반화된 행복의 기준은 사회적 성공, 좋은 대학 가기,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 등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이런 행복의 기준을 갖췄다고 해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제고해 볼 부분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끊임없이 욕망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선이 불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공 여부를 떠나서 자기 정체성을 토대로 한 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쯤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대입해 보면 한 마디로

지금 현재의 삶을 영원히 회귀한다면?

괜찮겠냐는 뜻이다.


현재가 행복한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영원히 회귀해도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통스러운 현재를 꾸역꾸역 견디는 삶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현재 살고 있는 이 대지위에서 최고로 행복해야 된다는 것.

그래서 니체는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

밀림을 호령하는 사자의 삶을 거쳐

아무런 부담없이 천진난만하게

현재의 삶을 즐기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초인으로 해석되어 왔던 위버멘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어떻게 위버멘쉬의 삶을 살 수 있는데라고 묻는다?면 내세의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삶(희망고문)에서 벗어나 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주인의 도덕과 힘에의 의지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신에게만 의지하는 노예의 도덕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주인의 도덕을 가지고 위버멘쉬가 되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힘에의 의지)는 뜻이다. 즉 스스로 깨우쳐서 자기만의 삶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승에 보낸 삶의 끝에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도 없는 어떤 에너지의 형태로 변화되어 이 우주 공간을 영원히 회귀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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