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서정 시인 May 11. 2023

쥐가 나까지 갉아 먹으면 어쩌냐?

어버이날에 시골집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올라왔다. 엄마가 마을에서 하는 효도잔치 행사에 다 참석하라고 하셔서 내려갔다가 한꺼번에 우르르 다 빠져나가면 엄마가 서운해하실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묵어왔다. 하긴 명절에도 오빠와 남동생들은 먼저 올라가고 결국 남는 사람은 나 하나다.


매일 혼자 지내는 엄마한테 치매보다 더 심각한 병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자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가 썰물 빠지듯이 우르르 떠나면 깊은 우울증 증세를 보이신다. 그래서 엄마한테 가장 만만한 내가 늘 긴 꼬랑지를 자랑하며 하루 더 묵어오는 것이 당연시 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엄마의 성격 변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평상시에 안 하던 욕도 늘고 또 조금이라도 당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뱉어내는 경향이 강해졌다. 아마도 치매로 인한 인지장애가 조금씩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거실에 있던 엄마가 갑자기 방에 있는 나를 부르셨다.


"왜요?"


"응 얼른 나와봐라"


그래서 나갔더니 싱크대 아래 판낼을 빼서 그 속을 쓸어내야  한다고 나보고 싱크대 판낼 한쪽을 잡아당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싱크대 판넬을 잡아당겼더니 끄떡도 안 한다. 몇 번 더 시도했다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도대체 왜 이 판넬을 잡아당겨야 하는 건데요?"


"이 속으로 쥐가 드나든다 말이여. 그래서 저 윗집은 하루에 몇 번씩 여기를 열어서 싱크대 밑을 쓸어낸대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엄마! 쥐가 있어요?"


"응 내가 저기다 끈끈이를 놨더니 쥐가 붙어서 죽어 있더라. 얼마나 징그러운지..."


엄마는 아주 못 볼걸 봤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려가며


"그리고 저 작은방 문짝 좀 봐라. 쥐가 저 방에 들어가려고 문짝까지 갉아먹었더라

그리고 며칠 전에는 내가 자고 있는 방에까지 들어와서 돌아다니더랑께"


엄마는 마치 지옥문에 들어섰다 온 사람처럼 공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 쥐가 나를 뜯어먹게 생겼다니까"


그래서 싱크대 이곳저곳을 살펴봤더니 옆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엄마! 여기가 이렇게 텅 비어 있어서 쥐가 이쪽으로 드나드는 것 같아요. 내가 막아 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는 나무판자 같은 것이 있냐고 엄마한테 물었더니 엄마가 어디선가 안 쓰는 두꺼운 도마를 하나 들고 나오셨다. 그래서 그 도마로 뚫린 부분을 막았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돼서 빈 박스를 접어서 테이프로 봉쇄한 뒤에 진열장에서 잠자고 있는 백과사전을 다가 뒀다.



엄마는 워낙 살생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분이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온 파리도 함부로 안 잡고 쫓아낸다. 그런 분이 오죽 징그럽고 무서웠으면 쥐 잡는 끈끈이를 놓았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아버지 살아계실 때 두 분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생쥐 새끼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때도 엄마는 생쥐를 죽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쫓아 버렸다고 한다. 그걸 본 아버지가 엄마한테 쥐도 못 잡는다고 뭐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쥐 잡아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당신이 직접 쥐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싶었다.


"자식들이 있으면 뭐 하냐? 집에 왔으면 집안도 좀 살펴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 주고 그래야지... 왔다가는 번개처럼 다 가버리니... 팔뚝 아픈 엄마가 이제는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엄마는 고향집에 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자식들 땜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노년이 마냥 외롭고 슬프다. 어쩜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을 알게 된 쥐새끼들이 밤마다 엄마의 꿈속으로 쳐들어가서 마음과 머릿속을 야금 야금 갉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생각 끝에 늦둥이로 고양이 한 마리 입양해 키우시라고 권유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아내 중 누구를 구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