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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un 18. 2023

시골 농부 아내의 커피

행복으로가는 지름길

한동안 이곳에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동안 여유를 가지고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그렇게 오만 잡글을 쓰면서 살아왔다. 내가 지금껏 쓴 글들 중 아주 많은 부분은 내 글이 아니었다. 댓가를 받고 대신 써 주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글쓰기는 내가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된 문제였다. 앞으로도 이런 글쓰기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 틈틈이 여유를 만들어서 내 글을 써 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브런치를 개설하고 이런 저런 글들을 써왔지만 이 조차도 사무실에서 업무중에 잠깐 잠깐 허겁지겁 쓴 들이다. 그래서 때론 무작정 맞춤법 검사기에 돌리는 과정에서 오타를 만들기도 하고 비문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아침 일찍 눈이 떠 졌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던 것은 잠시 시골집에 다녀올까. 혼자 계신 엄마도 걱정이 되고 또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감자도 캐 와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요 며칠 내가 가장 많이 한 것은 유튜브 듣기였다. 그것도 법륜 스님 강의에 빠져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떠서 인생철학에 대한 유튜브 컨텐츠를 듣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들은 내용을 내 오랜 친구에게도 공유하기 버튼을 눌러줬다.



내가 들었던 너무 감동적인 법륜 스님 강의를 친구에게 공유한 어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숙아!~ 나도 요즘 법륜스님 강의 많이 들어. 벌써 3년이나 됐다. "


나와의 공통점을 발견한 친구는 기분이 좋아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우리 수아가 그래. 엄마는 교회에 다니면서 왜 법륜스님 강의를 듣냐고

 그런데 나도 여직 살아봤잖아. 교회에 다녀도 진리가 뭔지는 판단할 줄 알거든

 스님 말씀 중에 하나도 틀린 소리가 없더라. 사실 우리 목사님 설교보다 더 좋더라"


"응 종교를 떠나서 우리 인생 철학이 담겨 있으니까.

 그것도 사람들 눈높이에 딱 맞춰서 쉽게 말씀해 주시잖아"


"그렇지.

 근데 용숙아!~ 나 그저께 OO씨 어머니 돌아가셔서 문상 다녀왔어.

 거기서 OO씨 와이프 만났다. 그런데 니네 안부를 묻더라"


"OO씨 헤어졌다고 안했어?"


"응 나도 그런줄 알았는데 헤어지진 않고 다시 잘 살고 있나봐. 그런데 OO씨 와이프 현대자동차 생산직에서 17년이나 일했대. 그리고 숙이도 만났는데 야!~~ 사람들이 다 숙이보고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이것 좀 드셔 셔보시라고 난리도 아니더라. 여자 팔자는 진짜 뒤웅박 팔자 같어. 그리고 숙이 YSL들고 왔더라"


"YSL이 뭔데?"


"야! 너는 그것도 몰라. 그거 입생로랑 핸드백... 우리 가게에 오는 사람들이 하도 YSL이라고 불러서 나도 알고 있었지"


친구는 아직도 내 개명전 이름을 부른다. 자기는 개명전 내 이름이 좋다고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친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전부 다 친구 결혼식에서 맺어진 커플들이다. 숙이는 내 외사촌 동생이고, OO씨는 내 친구 남편의 친구인 동시에 내 전남편의 친구이다. 그러니까 친구 결혼식에 온 남편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이 부부로 엮이는 바람에 무려 3 커플이 맺어졌었다. 그 중 우리 부부만 갈라서고 나머지는 다들 잘 사고 있다. 내 외사촌 동생인 숙이 남편은 그 지역의 동장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다들 사모님! 사모님 했던것 같다.


"희야!~ 얼마전에 우리 둘째 올케가 니가 말하는 그 YSL들고 왔더라. 그걸 본 막내 올케가 형님 나도 한번 들어보면 안돼요 그러길래 내가 그게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니 그랬더니 우리 올케 왈, 형님 명품백 입생로랑도 몰라요? 그러더라. 그래서 나는 그런거 모르는디 그랬었어.


근데 친구야!~ 너한테 그 YSL이 중요해? 그 백이 가지고 싶어?"


"아니 나도 사실 관심은 없어, 사람들이 얘기하니까"


"희야!~ 사모님 소리 듣는 숙이가 뭘 부러워. 넌 너대로 니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면서 살고 있잖아. 그리고 YSL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게 그 사람 마음을 채워주는 중요한 명품백이겠지만 너나 나나 명품백에는 관심도 없잖아.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내 눈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니가 훨씬 더 멋있어 보여. 그러니까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용숙아!~ 속이 다 시원하다. 내가 진짜 듣고 싶었던 말이야"



그렇게 친구와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당당한 사람들이다. 어제 <동네 한 바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요즘에는 이만기씨가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청송 어느 오지 마을 끝에 있는 집에 갔을때 일이다.


마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외딴 농가 마당에서 사람을 찾았는데 그 집 주인들은 집 앞 텃밭에서 머위 줄기를 자르고 있었다. 이만기씨가 밭으로 가서 말을 건네도 주인 아주머니는 대답만 할 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방송국에서 나왔으니 하던 일손을 멈추고 얼른 대화를 이어갔을텐데 그 아주머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집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너무 멋진 말들이 많이 나왔다. 그 농부 아주머니 말씀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읍내에 나가 사람들한테 커피 한 잔 살 여유가 있고, 또 겨울철에 친구들하고 여행갈 돈이 있으면 행복이지 뭐가 행복이겠습니까. 또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은 커피입니다. 커피를 마시면 참말로 행복합니다.


잠시 후 그 아주머니가 커피 내릴 준비를 해 오셨는데, 원두를 분쇄할 핸드 그라이더와 주방에서 쓰는 쇠거름망 그리고 커피를 내릴 창호지처럼 생긴 종이와 큰 그릇이었다. 그 광경을 본 이만기씨가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어머니! 이걸로 커피를 내리십니까?"


"그럼요. 이걸로 내리면 되지 뭐 딴 것이 필요있겠습니까?"


잠시 후 곱게 간 원두를 거름망에 내린 커피를 이만기씨한테 한 잔 건네셨다. 그 커피를 맛 본 이만기씨가


"어머니!~ 이 커피 진짜 맛있네요. 유명 커피숍 커피보다 더 맛있습니다."


그 농부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기 삶에 너무도 당당한 멋진 모습을 보았다. 커피를 내릴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 기구들이 없어도 그 어머니 나름대로 자신만의 도구를 가지고 맛있는 커피를 내려 드시고 있었고, 또 커피를 내리는 부분에 있어서 그 어떤 형식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 농부 아주머니처럼 외부의 평가나 관습에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 나는 행복해진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말 그대로 무학이다. 그 시절에는 절구통에 보리 이삭을 찧어서 밥을 해 먹어야했고 또 들에 나가 꼴을 베어다가 소를 키워야했던 시대다. 특히 먹고 살만한 집이었음에도 자녀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외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하나의 일꾼으로만 여기셨던 터라 외가 식구 누구도 제대로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한글부터 구구단까지 독학으로 다 익히셨다. 또 거기다가 왠만한 삼강오륜부터 사자소학까지 스스로 익히신 분이다. 그리고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 산골을 벗어나 살아본 경험이 없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자리에 있든지 아무 스스럼 없이 사람들과 당당하게 소통하며 대중을 리더하는 분이시다.


"야!~ 내가 대통령은 못해봐도 다른 사람은 다 해볼만하다. 대통령은 하늘에서 냈다고 하니까 못해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똑 같은거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한테 책 잡힐 일 안하고 살면 어디가서든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


시골 농부 아내의 삶과 우리 엄마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명품백을 들고 귀금속으로 온몸을 휘감고 다니는 사람보다 우리엄마가 더 멋지고 이름없는 시골 농부의 아내가 더 멋지다. 어느 자리에 있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등감 없이 사람들. 나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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