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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un 29. 2023

어느 날 갑자기, 로또 맞은 마을

며칠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온라인에 올라온 기사를 읽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 제목이 "대뜸 고맙다며 100000000, 꿈인지 생시인지" 순천 운평리 '들썩'이라는 기사였다.


처음에는 저 동그라미 숫자에 집중했다. 도대체 동그라미가 몇 개여 하는 마음으로 동그라미 숫자를 세어보니 1억이라는 숫자였다. 저 1억이 어쨌다는 건데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해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 인즉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님께서 고향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고향 사람들에게 1억 원에서 2600만 원까지 차등 지급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고향에서 태어나서 고향에서 평생 산 사람은 1억 원, 나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년 수에 따라 차등 지급했다는 것. 또 모교 초중고 동창생 80여 명에게도 현금을 전달했단다. 동산초등학교와 순천중학교 동창생에 1억 원씩, 순천고등학교 동창생에게는 5000만 원씩 지급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죽동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고 또 이 회장의 초중고 동창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거야 말로 고향사랑기부가 아니고 뭘까 싶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우리 엄마도 지금 사는 동네에서 태어나서 여태 살고 있으니까 이 회장님 기준대로라면 1억은 받을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성공 근처에 가본 사람도 없으니 안타까울수밖에...



최근에 알게 된 엄마의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 다른 곳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이십 호도 안 되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나서 5분도 안 되는 우리 집으로 시집와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 고향마을에 살고 계신 아주머니들은 다 타지에서 시집와서 살고 계신 분들이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그러셨다.


"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이 동네를 한 번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기회가 되면 부여 읍내쯤에 있는 아파트 나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어"


"그랬어? 엄마

 나는 전혀 몰랐네. 사실 그거 별거 아닌데..."


하지만 엄마 부탁을 쉽게 들어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러버렸다. 만약 내가 부여로 내려가서 엄마를 모시고 살면 가능한 일인데 그조차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엄마는 고향집을 지키며 텃밭에 옥수수 심고 감자 심고 하면서 살고 계시다.  


그래서 최근에 생각해 낸 것이 아무래도 엄마가 오래 사실 것 같지는 않으니까 시간 날 때마다 엄마 모시고 틈틈이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것.


"엄마 제가 이번주에 내려갈게요

 이번에는 가까운 곳에 바람 쐬러 나가서 밥도 먹고 그래요"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좋아하는 얼굴이 환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 외산에 나가서 짜장이라도 사 먹자

 짜장은 엄마가 살게"


왜 진즉에 엄마 모시고 여행 다닐 생각을 못했을까? 평생 그 동네에 살고있는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하니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가 고향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된다면 지금보다 건강이 더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에 가게 되는 그 순간일 텐데...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어디든 모시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해 보는 것이다. 엄마한테는 성공한 고향 선배나 친구도 없으니 하늘에서 1억 원이 뚝 떨어질 일도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성공해서 저렇게 고향사람들한테 1억 원씩 나눠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디 그게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않던가. 아니 꿈속에서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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