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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ul 06. 2023

등단의 꿈을 접고 시작한 솔루니 교사

그토록 간절했던 시인 등단의 꿈은 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2005년 처음으로 시로여는세상에 투고했다가 보기 좋게 최종심에서 낙방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신춘문예에서도 지방지에서 최종심에 거론됐다가 낙방했다. 그러는 사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더 이상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기로 결심하고 돈을 벌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대교 솔루니 교사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며칠 동안 합숙 훈련을 받았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던 마지막 날이 마침 내 생일이었다. 이제 훈련이 끝난다는 후련함과 동시에 그래도 내 생일인데 집에서 전화 한 통 없다는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집에서 이토록 존재감이 없었던 사람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깜짝 생일파티가 열렸다. 그 생일파티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내 이름이 불려졌다.


200여 명이 넘는 훈련생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한 명, 나 한 사람을 위한 생일 파티였다. 훈련조교 선생님들이 직접 쓴 2~3장 분량의 편지를 읽어주는 내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마디로 평생 못 잊을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된 나는 정말 좋은 솔루니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그 당시 신문사 리포터 일과 대교 솔루니 교사를 하면서 집에서 초등 모둠 논술교실을 시작했다. 막상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린 시절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것만 같았다. 학교 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학생 수가 많지는 않았다. 수입은 적었지만 아이들과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논술반 수업을 들었던 현성이와 성회는 지금도 생각나는 제자들이다. 글쓰기도 꽤 잘한 것은 물론이고 인성이 참 좋은 학생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배 고프다고 하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떡볶이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그랬던 것 같다. 아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모두에게 나는 너무 헤픈 선생님이었다.  


"엄마!~ 그때 나도 엄마한테 배웠었잖아?"


"맞아 그랬었어. 너도 3학년 모둠 수업에서 같이 공부했었지. 그런데 니 모둠에 있던 친구가 그랬었어

 니 발음을 지적하면서 학교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다고... 엄마는 그때 그 학생 말에 마음이 아팠었어

 그도 그럴 것이 니가 3학년때까지도 발음이 뭉그러졌으니까

 지금 같았으면 언어치료를 시켰을 건데 그땐 그런 것도 없었으니 알턱이 없었지"


"맞어. 그때 언어치료 개념이 없었어"


딸아이는 언어발달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닌데 발음이 안 좋아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딸아이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 한 사람뿐이었다. 애 아빠도 성격이 워낙 급했던 터라 딸아이의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딸아이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늘 혼자 노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어줄 생각으로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엄마들끼리 친해지면 아이들끼리도 친해질 수 있을까 싶어 선택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틈틈이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하고 또 소풍날에도 혼자 밥을 먹게 될까 봐 열심히 따라다녔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자존감 향상을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초등 4학년때부터는 글쓰기 훈련을 시켜서 교내 대회에서 글쓰기 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렇게 상장을 받게 하고 또 교내 행사에서 시낭송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또 학교에 갈 때는 최대한 단정하게 머리 모양을 꾸며줬다.


그러던 중 나에게 멋진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지방 방송에서 테마기행 작가를 모집하는데 한 번 해보겠냐는 제안이었다. 방송작가라는 말에 앞뒤 안 가리고 해 보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기행문 한 편 써 가지고 오라는 말에 부랴부랴 기행문을 한편 써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우연히 테마기행 방송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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