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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ug 02. 2023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주말에 시골 엄마 집에 다녀왔다. 마침 엄마가 읍내 한의원에 침 맞으러 나온다는 말을 듣고 모시고 들어갈 겸 한의원으로 차를 몰았다. 침 치료를 마친 엄마를 모시고 다시 고향집으로...


예전의 엄마 같았으면 자식들이 오면 냉장고를 뒤져 지지고 볶아 밥상을 차려 주셨을 건데, 요즘 우리 엄마는 그냥 돼지고기 삼겹살을 식탁에 내놓으며 구워 먹으라는 것이 전부다. 물론 밥솥은 당연히 비어 있다. 한 마디로 부엌살림에서 손을 놓아 버린 것 같았다.


뜨거운 불판 앞에 앉아 고기를 굽느니 차라리 냉면이나 끓여 먹는 것이 낫겠다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동실부터 냉장실까지 온갖 음식 재료들이 빼곡한 것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꼭 옛날에 받은 상처에 대한 기억들로 빼곡한 엄마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밥도 안 해 드시는 양반이 무슨 음식 재료를 이렇게 많이 쟁여 놓았나 싶어 잔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엄마가 죽거들랑 너라도 집에 와서 쉬었다 가고 혀라. 니 오빠는 70 넘어야 시골에 온대. 집 비워두면 곰팡이 슬고 못쓰게 되니까"


"알았어요. 엄마! 그런데 뭘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하고 그러신대요. 알겠으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오래 사셔요"


엄마는 요즘 들어 부쩍 당신이 죽고 난 뒤에 일들을 걱정하신다. 그러면서 주변 정리를 하시려는 듯 당신 옷을 갔다 입으라는 말도 자주 하신다. 나중에 엄마가 죽고 난 뒤에는 다 태워 없앨 테니 미리 가져가면 좋겠다는 의사 표현을 그렇게 하시는 거다. 그러는가 하면 요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엄마한테 이제 가자고 손을 잡아 끈다는 이야기까지...


얼른 엄마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내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엄마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얼른 엄마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내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엄마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엄마! 내가 엄마 이야기로 책을 한 권 만들어 볼까 하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책을 만들 때까지는 엄마가 꼭 살아 계셔야 해요. 내가 책 만들어서 엄마 갔다 드릴 거니까 알았죠"


"엄마 얘기로 무슨 책을 만들어. 니가 엄마 얘기를 다 알기나 하간디?"


"뭐 다는 몰라도 대략은 알지요"


그러면서 그동안 브런치에 써 놓은 엄마 이야기 몇 편을 읽어 드렸더니 엄마가 오랜만에 깔깔대고 웃으신다. 그러다가 가끔씩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 고생한 이야기며 참고 산 이야기를 읽으면 웬만한 힘든 것은 참을 수 있겄지?"


엄마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뭔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쓰지 못한 다른 이야기들도 슬금슬금 흘리신다. 그러면서 요즘엔 나를 무척 신뢰한다는 듯한 표현을 마구 날리신다.


"딸! 엄마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요즘에 회관에서 밥을 많이 얻어먹고 다니잖니. 그래서 하는 소린데 니가 회관에 내놓으라고 줬다고 하고 십만 원만 외숙모한테 줄까? "


"엄마 뭐하러 그래요. 안 그러셔도 돼요. 엄마만 회관에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거 다 마을에 나온 비용으로 하는 건데요. 뭘. 그리고 외숙모가 엄마 더 챙겨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으니까 그냥 맘 편히 드세요."


"그려 알았어. 엄마는 이제 뭣이든 딸내미 말만 들을겨"


엄마는 내심 당신 이야기로 책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한 것이 좋으셨나 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부쩍 딸만 믿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엄마  꼭 엄마  닮은 책 만들어 드릴께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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