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서정 시인 Aug 02. 2023

마지막 순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공평하다. 다만 그 시기가 좀 빠른 것이냐, 아니면 좀 느린 것이냐. 그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이 공평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천만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면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어리석은 삶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새삼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좋을 것 같다.


가끔씩 지인이나 가족의 부음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터부시 했던 '죽음'과 생의 마무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특히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마지막 마무리에 대한 무게감이 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이혼하고 집을 나오면서 온전히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얼마간의 사망보험금이 보장되는 보험에 가입하는 일이었다. 이런 결정은 내 사후에 가족이나 자식들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만약 노후에 치매라는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땐 어떡하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그때 떠 오른 인물이 우리 고향에서 살다 돌아가신 건이 할머니였다. 건이 할머니는 생전에 엄청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리 외할머니 하고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렇게 깔끔했던 건이 할머니가 어느 날 치매라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이다.


건이 할머니는 큰 아들이 한 동네에 살고 있어도 건강하셨을 때는 아들한테 의지하던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치매라는 무서운 병 앞에서는 하는 수 없이 아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아들 집으로 옮겨간 건이 할머니는 맑은 정신이 돌아온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목욕한 뒤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 놓고 농약을 마셨다고 한다.


이 사건은 마을 사람들한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지손으로 생 목숨을 끊는단 말이여? 하지만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들 입장에서는 어쩜 건이 할머니의 선택이 내심 부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리고 또 자식한테 의탁해서 살던 노모 입장에서는 은연 중에 나도 저런 선택을 해야 되나 싶은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외할머니가 열네 살에 시집온 사연을 이번에 고향집에 갔다가 엄마한테 새롭게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옷 두 벌 때문이었다고 한다. 새 옷 두 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스물여덟 홀아비한테 시집온 외할머니는 새 옷을 받아 들고는 이 옷을 입어봤다 저 옷을 입어봤다 하면서 마냥 좋아했다고 한다.


하긴 열네 살 어린 소녀가 뭘 알았을까 싶다. 전처소생으로 여덟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이 있는 것이 뭔 의미인지 또 스물여덟 홀아비의 아내가 되는 것이 뭔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온갖 고생 끝에 외할아버지와의 사이에서 6남매를 더 나은 외할머니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없는 인생을 살다 가셨다.


열여섯에 낳은 첫 딸이 몇 발짝 안 되는  한동네에 살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쉽지는 않았을 테고 큰 자식한테 의탁해 살면서 자식들 간 갈등을 지켜봐야 했던 마음도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외할머니의 삶을 지켜본 엄마 또한 이런 저런 사연으로 가슴에 맺힌 한이 결코 만만치 않기에 지금도 형제들 간에는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 살라고 당부하신다.  


여하튼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부탁한 마지막 소원은 치매만 걸리지 말라는 당부였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 엄마가 모시고 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늘 마음이 초초했었다고... 그런데 걱정은 늘 현실로 찾아온다는 듯이 외할머니는 70 후반에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큰 외삼촌도 모를 리 없었던 터라 큰외삼촌은 내심 건이 할머니의 선택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니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에 내가 장롱을 열어봤어. 그랬더니 뭔 약통들이 우수수 굴러 떨어지더라. 돌아가실 무렵에는 노인네가 억지로 죽으려고 밥도 한 숟가락씩만 먹더니만 결국은..."


어쩌면 이 또한 엄마의 추측일지 모른다. 확인된 바가 없는 심증뿐인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보다 외할머니를 잘 알고 있던 엄마의 추측인지라 아니라고 부인할 수 도 없는 대목이다. 어찌 됐든 외할머니는 자식들한테 부담을 안 주려는 듯 앓아 누우신지 딱 3일 만에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이 엄마였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 속이 다 타 들어가는 엄청난 갈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속이 다 타들어가는 갈증은 어쩜 외할머니의 생을 한 마디로 축약한 표현이다. 전처 소생과 자기 소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묏자리 싸움부터 밑도 끝도 없는 온갖 자식 걱정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살다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우리 전 세대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고도 마지막까지 자식들 걱정으로 한평생을 살다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다 겪어내면서 온갖 지혜를 온몸으로 터득한 엄마는 당신 스스로 서둘러 연명치료포기 의향서를 병원에 제출하셨다.  누구보다 지혜롭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마지막에는 이 생에 대한 미련보다는 그동안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잘 놀다 간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을 준비해야지 싶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