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쓰다

by 조서정 시인

반성문을 쓰다





아버지 먼저 보내고

쓸쓸해하는 엄마 앞에 못 마신다는 술상

굳이 차려 들고 들어가

소주병 따듯 세 사람 사이에 봉인된

비밀의 매듭을 푼다


주인 발소리를 듣고 벼가 영글어간다는

뜨거운 여름날

논밭에 있어야 할 엄니 아버지

6인실 병상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누웠것다


아따 주삿바늘 들고 수시로 들락거리는

딸 같은 간호사 눈도 있는디

낮 뜨거워쓰간디

오랜 병원 생활에

금방 분 바른 듯 뽀샤시해진 마누라가

곁에 있어도

맘대로 한번 안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고것이 커튼으로

가린다고 가려질 일도 아니고

아버지 속이 여름 논바닥 갈라지듯

바짝바짝 탔던 거라


얼른 환자복 입은 엄니 손 잡아끌고

병원 근처 모텔을 찾았던 거라

방 없다는 말에

선걸음에 딸네 집으로 방향을 틀 때만 해도

몇 해 묵혀둔 논 쟁기질하듯이

마누라 한번

힘껏 껴안아볼 참이었는디

하나뿐인 딸년이 통풍엔 술이 쥐약이라고

애써 잡은 바람을 쫙 뺏던 거라


점잖은 체면에

조용히 병실 침대로 돌아온

그날 이후로

엄마 곁에 한 번도 안 가고 저세상 가셨다니



금방이라도 젊은 아버지가

엄니 방문을 꽝 열어젖힐 것만 같은 한낮

속이 훤히 비치는 유리병에 야관문을 넣고

소주를 가득 붓는다


한 눈 파는 엄마 몰래

유리병을 살짝 흔들어 놓는다

소주와 잘 마른 야관문이 병 속에서

자연스럽게 엉켜든다


-시집<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 중에서



우리 부모 세대를 살아온 엄마들 중에 대다수는 불감증이라는 단어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거나 살다 가셨다. 아버지랑 한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잠자리의 즐거움을 몰랐다는 것은 비단 우리 엄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가능성마저 끊어져 버린 후에는 그리움 같은 잔상으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사건이 있었다. 십몇 년 전 엄마가 두어 달 가량 병원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그때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 수업에다 중기청에서 발주한 ‘전통시장활성화’ 방안 마련 사례집 원고를 맡아 취재와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 그 와중에 엄마 병상 옆에 딱 붙어있는 아버지를 위해 도시락까지 싸 나르느라 하루에 잠을 2시간 정도 자면서 바쁜 일상을 소화해야 했다. 그날은 마침 주문진에 취재가 있어서 주문진 경매 시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딸! 뭐하냐?”


“저 일하느라 좀 멀리 나와 있어요. 왜요 엄마?”


“니 아빠가 병원 생활 지겹다고 오늘 저녁에 늬 집에 가서 자고 오고 싶다고 병원에 외출증을 끊어 달라고 한다는디...”


“알겠어요. 얼른 일 마치고 집에 가 있을께요”


속으로는 왜 하필 또 우리 집에 오신다는 거야. 딸내미는 바빠서 잠잘 시간도 없는데 원... 다소 불만이 있기는 했으나 어쩌랴 싶었다. 내 부모님이 병원 밥이 지겨워서 하룻밤 딸네 집에 와서 주무시고 가시겠다는 걸 말릴 재량이 없었다. 부랴부랴 주문진에서 일을 서둘러 마치고 집으로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급한 대로 마트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오뎅이랑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사다가 급하게 저녁밥을 지었다.


그렇게 후다닥 저녁 밥상을 차려 부모님께 드렸는데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었다가 한 숟가락 뜨시고는 그냥 내려놓는 거다.


“아빠! 반찬이 입맛에 안 맞으세요?”


“아니다. 나는 밥맛 없으니께 어여 나가서 소주나 한 병 사와라”


“아빠는 참!~ 아빠 얼마 전에 통풍 걸려서 죽다 살아났잖아요. 그런데 거기다 또 술을 드시면 어떡해요. 오늘은 술 드시지 말고 그냥 식사나 하셔요...”


그날 아버지는 당신 마음도 몰라주는 딸년한테 더 이상 어떤 말씀도 안 하셨다. 그냥 조용히 엄마 손을 이끌고 병원으로 돌아가셨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은 딱 여기까지다. 그다음 이야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 엄마한테 들을 수 있었다.


“너 그날 생각 나냐?”


“언제요?”


“왜 있잖아. 엄마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니 집에서 자고 온다고 갔던 날?”


“네 생각나요. 그런데 그게 왜요?”


“그게 마지막이었어?”


“뭐가요?”


“니 집에 가기 전에 니 아버지가 그렇게 내 곁에 오고 싶어서 난리를 안 쳤냐.

병원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께

나보고 외출증 끊어서 병원 앞에 있는 모텔에 가자더라.

나는 그때 모텔이 뭔지도 몰랐어.

그래서 할 수 없이 니 아버지 손에 끌려 나와서 병원 앞 모델을 찾아다녔는데

이미 손님이 다 찼다고 하더라.

그렇게 서너 군데 찾아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중에는 니 집에 가자고 하더라.

니 집에 가면 전에 니가 데리고 갔던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나랑 같이 자고 싶었던 것이여.

그런디 니가 눈치 없이 집 밥 차려놓고 먹으라고 안혔냐.

거기다 술도 못 마시게 하고...

그러니까 니 아버지가 부아가 나서

내 손을 잡더니 다시 병원으로 가자고 하더라.

그 이후로는 생명이 거의 다 돼서 그랬는지

다시는 내 곁에 오지도 않더라

그라고 몇 년 뒤에 니 아버지 돌아가셨어?


“정말요? 왜 그때 귀뜸이라도 해 주시지 않고요. 저는 병원 밥이 지겨워서 우리 집에 오신다는 줄 알고 그 바쁜 와중에 밥상 차리느라 고생했는데 그냥 사 드렸으면 나도 편하고 아빠도 좋아하셨을 것인디....”


돌이켜보면 워낙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살던 시절이라 한가하게 부모님 마음까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나 편한 대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점잖은 아버지 체면에 과년한 딸한테 쉽게 당신 속내를 꺼내기도 힘드셨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부모님한테 정말 눈치코치 없는 딸년이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때까지 내 부모님의 성에 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두 분을 그냥 자식들을 위해서 무한히 희생하는 내 부모로만 생각했지 하나의 남자와 여자라는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진심 반성하는 심정으로 이 시를 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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