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로맨티스트

엄마의 꽃밭

by 조서정 시인

엄마의 꽃밭



엄마 생일 턱밑에 두고

서둘러 먼 길 떠난 아버지 제삿날

엄마 생일 얘기가

향불처럼 제사상에 넙죽 올라온다

아버지 병상에 달라붙어 있던 엄마


여보 내 생일 선물 뭐 해줄 건데?

당신 생일날

꽃 사준다는 약속 못 지켜 미안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당신 생일밥이라도 같이 먹어주는 거여


엄마는 당신 홀로 맞은 첫 생일날

흰 국화 한 다발 아버지 자리에 얌전히 꽂아놓고

추석 차례상 대신

아버지 삼우제 제사상을 차리셨다


니 아버지와 함께 먹는

마지막 생일상이라 그런지 유난히 맛나구나

앞으로는 꼭 호강시켜주겠다고

평생 뻥친 니 아버지

생일밥 같이 먹어준다는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것 좀 봐라


해마다

보름달이 여물어가는 추석 무렵이면

누가 챙겨 보냈는지

엄마의 꽃밭엔 온갖 꽃들이

무장무장 피고 진다



시집 <모서리를 접다> 중에서



엄마는 아버지를 혼자 요양원에 보낼 수 없어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요양병원에 함께 계셨다. 엄마의 입원은 보호자가 머물 곳이 따로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대안이었다. 평생을 아버지와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잠자리의 즐거움을 몰랐다는 엄마지만 사랑보다 더 무서운 정 때문에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뜰히 보살피다가 당신 무릎에서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렸다.


“니 아버지 요양병원에 있을 때 다른 환자들 눈치가 얼마나 보였는지 몰라. 다들 외로운 환자들이다 보니 내가 니 아버지 옆에 붙어 있으니까 얼마나 질투를 하고 눈총을 보냈나 모른다. 그래서 내가 니 아버지 잠든 틈을 타서 옆 병상에 있는 환자들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서 골고루 나눠주면서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응 우리집 양반은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이라 살 날이 얼마 안 돼요. 그러니까 보시기에 불편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일일이 병상마다 돌아다니면서 양해를 구했어.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시샘을 안 하더라.”


아버지가 한 달 반 정도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엄마는 아버지랑 똑같은 식단을 고수하셨다. 아버지가 식사를 못하고 누워계신데 어떻게 당신만 살겠다고 밥을 먹을까 싶어 아버지랑 똑같이 안 먹고 그 기간을 견디셨다. 아버지는 수액이라도 맞고 계셨지만 엄마는 그야말로 강제 다이어트를 하신 셈이다.


당시 아버지가 겨우 드신 음식이라곤 두유와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이 전부였다. 엄마가 옆에서 두유에 빨대를 꽂아 드리면 그것도 겨우 몇 모금 넘기고 남기는 정도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드시다 남긴 두유 한 개로 하루를 버티신 셈이다. 또 간혹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 하나를 반으로 나눠서 둘이 나눠 드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나름 죽음의 문턱에서 당신이 아무것도 안 먹으면 엄마도 그대로 쫄쫄 굶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엄마한테 뭐라도 드시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짜 내서 두유와 아이스크림을 드셨던것 같다. 나름 죽음의 문턱에서 엄마를 생각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의 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날이 갈수록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되어 갔다. 엄마의 몸무게가 17킬로 정도 빠졌으니 두 분 다 뼈에 거죽만 붙어 있었다. 얼마나 엄마 모습이 안됐으면 아버지 상을 치르러 온 이모들이 너무 말라서 뼈만 남은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 정도였다.



이 와중에도 죽을 날을 받아놓고 하루하루 연명하던 아버지 옆에 붙어 있던 엄마에게도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로맨스에 대한 꿈이 있었던지 하루는 엄마가 아버지한테 물으셨다고 한다.


“여보! 며칠 있으면 내 생일이잖아~ 당신 내 생일에 나한테 뭐 해 줄 거야?”


그날 아버지는 엄마한테 이런 고백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누워 있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니 당신 생일에 꽃 한 다발 사주고 밥 한 끼 같이 먹어 줄게. 그리고 그동안 당신한테 고생만 시켜서 정말 미안해.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자리 봐 놓고 당신 기다릴께. 내가 저 세상에서는 당신 고생 안 시키고 호강만 시켜줄테니 꼭 나한테 와줘?”


엄마는 사그라들것 같은 호흡을 겨우 붙잡고 있는 아버지가 나중에 꼭 당신 곁으로 오라고 하는 말에 고개를 내 저을 수 없어서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 생일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 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다고 퇴원시켜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집에 가서 엄마 꽃다발도 사 주고 밥도 같이 먹어줘야 한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도 병원에서 퇴원 승인을 안 해주는 바람에 아버지는 엄마 생일을 사흘 앞두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아버지 삼우제 날이 추석날인 동시에 엄마 생일날이었다. 엄마는 삼우제를 지내며 아버지 젯사상에 빨대 꽂은 두유 한 팩을 올리셨다. 그리고 삼우제가 끝난 뒤에 젯사상에 올렸던 두유를 다 빨아 드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니 아버지! 내 생일에 밥 한 끼는 같이 먹어 준다고 하더니 약속 한번 참 지키는 사람이다. ”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부터 마당 한 귀퉁이를 꽃밭으로 만들어 온갖 꽃들을 심으셨다. 그리고 가을꽃이 한 아름 필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꽃밭에 나가 마치 아버지 얼굴을 쓰다듬듯 꽃들을 쓰다듬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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