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안부를 묻다

by 조서정 시인

안부


애야!

내가 며칠 쉬었다고 니 아버지

봉분에 잡풀이 우거졌더라

종일 매달려 풀을 뽑았더니

입안이 다 헐었시야


땅이 얼었다 풀렸다 해서 봉분이

자꾸 무너지려고 하잖여

그래서 발로 찼다가 끌어안고

다독다독하다가

다시 손으로 쓰다듬었다가

하면서 풀을 뽑았더니

몸살이 안 났겄냐


그란디 니 아빠

양심도 없는지 고맙다는 말도 안 하더라

이제 나도 힘들어서 안 되겠어야

내년부터는 풀 약 쳐야쓰것다


엄마! 그것이 다

아빠가 엄마 보고 싶다고

풀 키워서 안부를 전하는 것인디

약을 치면 쓰것어유


한 번씩 찾아가서 끌어안아주고

발로 차주고 그래야

에고 우리 마누라 아직 힘이 있구나

할 것 아니것슈?



시집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중에서



아버지는 꽤나 진보적인 분이셨다. 물론 그 촌동네에서 나름 고학력 스펙을 자랑하기도 했거니와 마이크만 잡으면 청산유수 아나운서 뺨치는 말솜씨를 자랑하셨다. 또 정치 성향에서도 진보적인 사고를 하셨던 만큼 당신 사후에 묘지를 쓰지 말고 화장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가장 먼저 결정해야 될 사안은 장례식장과 장례 방식이었다. 우리 4남매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해 드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달려온 엄마가 굳은 각오로 말씀 하셨다.


“나는 니 아버지 절대 화장 못 시킨다.

아버지가 아무리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 안 돼.

니 아버지를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을 수는 없어”


위로 오빠가 있지만 그래도 오빠는 내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라 내가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엄마!~ 우리는 방금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지금 우리 앞에 살아계신 엄마 의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엄마 마음 편하신 쪽으로 할게요 “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봉분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봉분도 엄마가 원하는대로 둥근 봉분으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묘지 쓰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소주 한 병, 사탕 두어 개를 챙겨가지고 아버지 묘소에 가서 따라 드리고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놀다 돌아오시곤 한다.


그리고 틈날때마다 정원 가꾸듯 묘지를 가꾸신다. 꽃나무도 사다가 심고 풀도 뽑아 주면서 알뜰살뜰 보살핀다. 길가에 있는데 관리가 안 되면 자식들 욕먹을까 그런다고는 하시지만 내 보기엔 살아있는 아버지 대하듯 그렇게 묘지 가꾸는 일에 열심을 부리신다. 한 번은 묘지에 난 풀을 뽑고 온 날이었다.


“내가 니 할아버지하고 할머니 묘는 시부모님이라 조심스러워서

정성을 담아 토닥토닥 두드리고

니 아버지 묘는 살아있을 때 나한테 잘못한 것이 생각나서

발로 꽝꽝 몇번 찼어~

발로 차다 생각하니까 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살포시 한 번 안아주긴 했지 “


“그런데요 엄마?”


“그런데 참말로 이상혀~

떼 잘 살아나라고 토닥토닥 한 니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떼는 죽고

밉살 맞아서 꽝꽝 발로 찬 니 아버지 묘에 떼는 잘 살아난겨“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후 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응 엄마”


“며칠 전에 니 아버지 묏등에 난 풀을 뽑는디

너무 힘들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잠시 묏등에 기대 잠을 자다가 와서 그랬는지

어젯밤 꿈에 죽은 니 아버지가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내 방으로 쑥 들어오더라

그러더니 내 옆에 눕는겨

근디 이상도 하지

죽을 때 삐쩍 말라서 볼품없던 니 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아주 젊고 멋지게 생긴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겨

그래서 내가 아침에 얼른 일어나서 얘기라도 해 보려고

아침에 눈을 떴는디 말짱 꿈이더랑께“


“거 봐요 엄마!

엄마가 전에 아버지가 못생겨서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안 쳐다봤다고 해서

아버지가 저 짝에서 듣고 멋진 모습으로 엄마 찾아 온 거잖아요~

우리 아빠 참 멋지네

죽어서까지 엄마 소원을 풀어 주고 싶어서 멋지게 차려입고 오시고 “


내 말 끝에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은 뒤에 정말 저 세상이 있을까?"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안 할까에 대한 의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음직한 질문이다. 나 또한 이 질문에 대해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할머니한테 먼저 돌아가시면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내 꿈에 와서 알려달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내 꿈에 나타나 사후 세계의 존재 유무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찾은 결론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읽으면서 알게 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거한 내 나름의 정리였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에너지가 다른 물체로 이동하거나 형태가 바뀌어도 에너지의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저 세상이나 귀신같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는 이 우주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다만 시간에 의해서 형태만 바뀔 뿐이라는 결론이다. 니체는 이 부분을 영원회귀 사상에 녹여내서 설명한 부분이 있지만 엄마한테 이런 복잡한 철학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보다는 쉬운 말로 설명해 드렸다.


"제 생각에는 어떤 형태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 우주 안에 다 함께 공존하고 있어요. 엄마"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밝은 표정이 읽혀졌다. 가만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밀고 당기면서 예전에 못해본 연애를 하고 계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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