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생각해보면 엄마가 종갓집에 시집와서 아기를 못 낳았다가 7년 만에 간신히 첫아들을 낳았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큰소리를 칠만도 하다. 첫아들을 낳은 후로 둘째, 셋째, 넷째까지 자식을 넷씩이나 낳는 큰일을 해내신 아버지는 집안에서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집안일보다는 마을 일과 남 도와주는 일에 온 힘을 쏟으셨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엄마가 면소재지 병의원에 가면 사람들이 아버지 안부를 묻곤 한단다.
"저 새재 양반 아녀요?"
"네 맞아요"
"거시기 바깥양반은 잘 지내시지유?"
"그 양반 죽은 지가 벌써 10년이나 됐어요"
그러면 아버지 소식을 모르고 계셨던 분들이 그러신단다.
"아이구! 그 좋은 양반이 왜 그렇게 일찍 가셨대요"
엄마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평생 빚보증에 조상님한테 물려받은 쥐꼬리만 한 재산까지 전부 날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조금은 상쇄된단다. 죽고 나서 '못된 짓만 하더니 잘 죽었다'고 하는 말보다는 '그 좋은 양반, 참 좋은 양반'이런 말을 듣게 해 준 아버지가 내심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단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퇴근했냐?"
"네에"
"저녁은 먹고?"
"네에"
엄마가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디 많이 배운 니가 애기 좀 해 줘라"
"뭔데요 엄마?"
"나는 니 아버지랑 살면서 니 아버지가 곁에 와도 한 번도 좋은 걸 몰랐다고 했잖아
니 아버지 혼자 좋아서 일 보고 내려가고 그랬는디도 애는 잘 생겼어. 그랴서 그러는디
남자 혼자만 좋아도 애는 그렇게 잘 생기는 거라니?"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삼키면서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엄마한테 대답했다.
"맞아요. 엄마, 고것이 남자 혼자만 좋았어도 애는 생기는 거예요.
거시기 있잖아요. 남자 몸에서 정액이라는 것이 흘러나와서 엄마 몸속으로 들어가서
애기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럼 고것이 한 방울만 들어가도 애가 생기는 겨?"
"네에 엄마"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본 엄마는 야학하는 용순이 아버지네 집 창문 밑에서 귀동냥으로 배운 공부가 전부다. 일하다가 야학할 시간만 되면 외할아버지 몰래 용순네 집으로 달려가서 귀동냥으로 공부를 했음에도 한글은 물론 삼강오륜, 사자소학, 편지 강독 등등을 줄줄 외우시는 분이었다. 구구단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한테 적어달라고 해서 소여물 쑤면서 다 외웠다고 한다. 그렇게 배운 공부로 글도 읽도 계산도 척척해 내신 분이다.
중학교까지 다닌 아버지가 이장이며 새마을지도자를 할 때도 실제 모든 중요 업무처리는 엄마가 뒤에서 다 도맡아 하시고 아버지는 얼굴 마담 역할만 하셨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생물이나 성교육에 대해서는 이론으로 배운 바가 없기에 내심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다. 이런 엄마한테 아버지는 씨 넣어줬으니 평생 자기 할 일은 다 했노라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돌아가셨으니 엄마는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 나한테 질문을 하신 것 같다.
어쨌든 아버지가 엄마를 속인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씨만 넣어준다고 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엄마 역할이라는 것도 있는 것인데... 요즘 세상 같으면 택도 없는 큰소리를 아버지가 평생 치고 살다 가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