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팝니다

by 조서정 시인

엄마를 팝니다



역시즌 초특가입니다

정품으로 제작되어 산골에서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본 한살림 유기농입니다


팔십 평생 삼시 세끼 갈고닦은

음식 솜씨는

입맛이 까칠한 손자와 다이어트 중인 며느리까지

밥 한 그릇 마파람에 게눈 감추게 만드는

손맛입니다


홀시어머니 10년 똥오줌 수발해 받은

효부상 하나

며느리들 부담 줄까 싶어

장롱 깊숙이 숨겨둔 숙맥이라

뒷주머니 챙길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죽는 날 받아놓은 원수 남편

혼자 두고 돌아설 수 없어

옆 침상에 누워 이승 떠나는 날까지

보살핀 의리파입니다


엄마 입에서 산소호흡기 떼라는 말로

새끼들 불효자식 만들 수 없다며

동네 할머니 몇 꼬드겨 연명치료 의향서 서명하는

LTE급 판단력은 기본 사양입니다


요즘 뭔 바람이 들었는지

내 비록 늙은 몸이다 마는 나 하나 부잣집에 팔아

너희 사 남매 걱정 없이 살 수만 있다면

당신 먼저 가 있으면

뒷따라가겠다고 한 몇 년 전 약속은

자식들 핑계로 오리발 내민 지 오래입니다


비록 외형은 말라비틀어진 곶감 같지만

무릎 끊고 꽃다발 바치며 청혼 반지 끼워줄

황혼의 로맨스트 앞에서는

스무 살 볼 빨간 소녀입니다


사용 설명서를 준비하지 못해 따로 덧붙이자면

소화력이 떨어져 음식값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고

크게 누려본 적 없어

오일장이나 축제에 나오는 각설이 품바 공연이면

꽉 다물렸던 입이 한껏 벌어지니

유지 비용도 아주 경제적입니다


농사일에 약초까지 캐서 사 남매 잘 건사하느라

무릎관절 목디스크 척추협착증까지

유효기간은 장담할 수 없지만

남은 시간 AS 가능하고


세상에 들도 없는 효자 큰아들

엄마 일이면 무조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육군 상사 막내아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둘째 아들

그리고 좀 모자라지만

엄마 마음 잘 헤아리는 무명 시인 딸 하나

모두 덤입니다


서두르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한정판입니다


-시집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 중에서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어느덧 10년

3년 있다가 따라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엄마는 3년을 갱신할 때마다 소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챙겨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다.


"여보 내가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애들 잘 되는 것도 봐야 하고 손주들 크는 것도 좀 봐야 할 것 같아서 나 3년만 더 살다 갈게

한 눈 팔지 말고 잘 기다리고 있어"


이렇게 3년마다 약속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10년을 채운 엄마는 나름 아버지한테 미안했는지 올해부터는 멘트를 바꾸셨다.


"여보! 나 애들 속 안 썩이고 당신한테 갈 수 있게

자고 있을 때 가만히 안아서 데려가 줘요"


우리 집안에는 80을 넘겨 사신 분이 없다. 현재로서는 엄마가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스로 80을 장수 기록 경신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요즘 들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라면 모두 공통적인 고민이겠지만 치매 걸리지 않고 오래 앓아누워서 자식들 걱정시키지 않고 깔끔하게 살다 갔으면 하는 소망을 말씀하신다.


워낙 깔끔하신 성격 탓에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안되도록 마지막 요양병원 병원비를 당신이 모두 계산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당신이 오래 앓아눕게 되어 자식들 속 썩일까 봐 서둘러서 연명치료 포기각서에 서명도 했다. 그것도 당신 혼자 작성한 것이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을 설득해서 단체로 연명치료 포기각서를 만든 분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서둘러해 놓은 엄마는 입버릇처럼


"왜 니 아버지는 나 안데려 간다냐?"


자식들이 왜 그런 말씀을 하냐고 아버지도 안 계신데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우리 고아된다고 그런 소리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서 내가 화제 전환용 농담을 시작했다.


"엄마! 그러지 말고 아빠도 저짝에서

새 장가 가신 것 같으니께 엄마도 멋진 할아버지 한 분

만나서 아버지한테 못 받은 프러포즈도 받고 그라심 어때유?"


자식들이 워낙이 틈날 때마다 장난을 쳐대다 보니 요즘엔 엄마도 농담에 쿵 작을 잘 맞춰 주신다.


"그랴? 그럼 어디 참한 노인네 하나 알아봐라

나는 눈이 높아서 웬만해선 눈에 안 차니께 TV에 나오는 잘생긴

노인네로 알아봐라"


"그람 엄마 이상형을 말씀해 주셔야 쥬?"


"나이는 동갑이고

내가 시집을 갈 수는 없고 나한테 장가들 사람으로

골라봐라.

우리 집에 와서 내가 해 주는 밥 맛있게 먹어주고

나랑 도란도란 이야기해 줄 사람이면 돼"


시더운 농담에서 엄마의 외로움이 한 껏 느껴졌다. 하긴 자식들 다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10년 전에 아버지마저 먼저 보내신 뒤에는 줄곳 엄마 혼자 시골집을 지키고 계신 상황이다. 혼자 살다보니 어떤 날은 말 한마디 안 하고 보내는 날도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유일한 낙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정도다. 그래서 내가 한 번 더 웃으시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조건이 너무 좋은디

이 정도 조건이면 할아버지들이 동구 밖까지 줄을 서겠어요~ 그리고 이 조건이면 연하도 가능한디

연하는 어때요 엄마?"


"아녀~ 딱 동갑이 좋아"


전화 말미에 엄마가 그러신다.


"딸이 있응께 농담도 하고 재밌다"


왜 엄마라고 연애에 대한 환상이 없었을까.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엄마한테 마음씨 착한 남자 친구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그게 어려우면 다음 생에서는 꼭 TV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프러포즈를 받아보고 싶다는 꿈을 꼭 이루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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