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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Oct 12. 2023

문단속

문단속

   

오래 살아야 두 달 산다는 아버지를

노인병원에 모시던 날

보호자는 있을 곳 없으니

이제 그만 다들 돌아가라는 수간호사 말에

한순간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일 없던

아버지 눈동자가 힘없이 흔들린다

하는 수 없이 엄마까지

입원수속을 밟고 돌아서는데

어머니 내 귀에 대고 살짝 속삭인다

글쎄 동네 홀아비 김씨가

한밤에 건넛마을 팔순 과부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동사무소에 파다하단다

니 아버지 먼저 가면 나 무서워서 어떻게 산다냐

대문 없는 집에서도 평생 맘 편히 잘 살았는디

니 아버지 가면 얼마 안 있다 바로 따라가든지

아니면 제일 먼저 대문부터 해 달아야 쓰겄다

제삿날 받아놓은 아버지 곁에

새색시처럼 바싹 달라붙어 있는 칠순 엄마가

처음으로 여자로 보였다



-<모서리를 접다> 중에서



1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무렵에 쓴 시다. 첫 시집에 들어가 있는 시인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많은 독자들이 나를 시인으로 기억해 주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엄마가 집에 대문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을 기억했다가 쓴 시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에는 대문은 커녕 현관문에 잠금장치 하나 설치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가 걱정했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아버지 제삿날 전에 일어난 도난사건이 그 시발점이다. 첫 도난 사건 이후 가을철에 수확해 놓은 농산물이 사라지는 작은 도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첫 도난 사건으로 엄마가 얼마의 현금과 금반지 등을 도난당했다고 했을 때는  엄마가 받을 충격을 우려해서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하시라고 엄마를 위로했다.


첫 도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마을 이장님께 사실을 알렸더니 이장님께서는 엄마가 다른 곳에 두고 못 찾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 엄마의 치매 초기 증세를 의심했다.  하지만 내가 사회복지 전공자인 동시에 치매센터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했던 사람으로 치매에 대해서는 나름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인지 장애가 살짝 진행된 정도이지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는 아니다. 때문에  도난 사건을 단순히 치매 초기 증세로 치부하기에는 엄마의 판단력이 나보다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사는 엄마가 마을 사람들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 형제들은 이 사실을 조용히 덮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는 사이, 가을걷이로 수확해 놓은 팥이 사라지는가 하면 집안에 있는 숟가락젓가락까지 분실했다는 엄마의 하소연이 연이어 내 귀를 아프게 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도난 사건 소식에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좀도둑 짓이 분명하다면 우리 엄마와 우리 가족을 분명 우습게 본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다면 분명 무슨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엄마는 반복해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겪으면서 혹 당신까지 헤치려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래 사람은 헤치지 않았으니 됐다시며  힘없고 병약한 노인이 스스로 열악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읽혀졌다. 어찌 됐든 자식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 사건을 묵과할 수 없어서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형제들에게 통보했다.


이런 나의 결정에 반기를 든 사람은 바로 내 위 오빠다. 오빠는 집안의 장손인 동시에 부모님의 사랑과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자란 우리 집안 대표 효자다. 그런데 오빠 생각은 나와 달랐다. 엄마가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신 상황에서 경찰서에 신고하면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된 마을 이미지가 나빠지는 동시에 마을 사람들한테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내 결정을 반대했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나는 허울뿐인 '범죄 없는 마을' 간판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실제로 마을에서 이런 저런 도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 참에 바로 잡지 않으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내가 오빠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몇 분 사이에 갑자기 엄마가 태도를 바꿨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번에는 도둑맞은 것이 아니고 내가 착각한 것 같다면서, 지난 장에 내다 판 것 같다고 말을 바꾸셨다.


하지만 내가 최근에 시골집에 자주 다녀왔고 엄마가 도둑맞았다는 그 팥이 이틀전까지 실제로 방에 있었던 것을 내가 보고왔다. 그리고 딱 이틀 만에 도둑맞았다는 말씀을 한 것이다. 상황 정황으로 유추해 볼 때 엄마가 그 사이에 장에 내달 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엄마가 말을 바꾼 것은 내가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한 말 때문인것 같다. 엄마는 아무리 손해를 봐도 송사에 휘말리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다. 그래서 조용히 덮고 가겠다는 의지가 발동한 것이 분명했다.


그 옛날부터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집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술 한잔 내어 주는 인심을 베풀며 조상 대대로 살아왔으니 갑자기 경계 태세를 갖춘다는 것도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과 결정대로 시골집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보안시스템을 갖추는 측면도 있고 시골에 홀로 계신 엄마를 보호하는 뜻도 있다. 혹 혼자 집안에 계시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마음에 안전벨트를 설치해 드리고 싶은 것이다. cctv를 통해 자식들이 엄마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엄마가 덜 외로울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식들이 다 떠난 빈 둥지에서  당신 혼자 살고 있다는 마음도 조금은 상쇄될것  같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이미 홀로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 집안에 홈캠을 설치해서 부모님을 보살피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부모가 열 자식은 키워도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옛 속담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후회를 덜 남길 수 있도록 조금 더 마음을 내서 잘해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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