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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Oct 27. 2023

존재와 무

혹은 삶과 죽음

무는 마치 벌레처럼 존재의 심장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사르트르 『존재와 무』



우주는 완벽하게 대칭인 무에서 출발했다. 무가 식어서 현재와 같은 얼어붙은 진공이 되었다. 이때 물질, 힘, 시간, 공간의 성질인 진공 자체는 궁극적인 무의 성질과 얽히고 설켜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고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진공은 무가 얼어붙은 구조다. 무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무의 대칭이 깨질 때 우주의 모든 것이 탄생한다. 무는 엄청난 활력으로 팽창하고 폭발하고 증식하고 요동하고 뻗어나가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고, 찢어지고, 잦아들고, 물체들을 뒤흔들면서 온갖 일에 참견하면서 수 체계를 창조하고, 물질과 우주를 만들었지만 절대 우주의 중심에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인 무는 존재로부터 존재성을 얻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존재를 없애면 무도 함께 사라진다.


진공으로서의 마당은 파동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마당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때때로 서로 간섭하여 입자(마당)에 대해 힘(또다른 마당)을 일으킨다. 여기서 물질 마당과 힘마당은 차이가 있다. 힘은 물체들을 밀거나 당긴다. 그것들은 밀고, 당기고 합치고 흩어진다. 힘은 작용하고, 물질은 작용을 받는다. 이처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이러한 마당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된다.


물질의 입자는 힉스마당을 만나 질량을 얻고 이 질량에 의해 덩어리의 성질이 결정된다. 즉  입자들은 진동하는 마당의 덩어리로 에너지가 응축된 상태다. 따라서 사람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에너지가 응축된 물리적 실재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의하면 E=mc2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이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와 물질은 같다. 물질은 에너지가 많이 집중된 것이고, 마당은 에너지가 조금 집중된 곳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물질과 마당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다를 뿐이다. 마당은 물질과 빈 공간, 유와 무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중간 상태로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공간과 물체의 운동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에서 공간은 장소이고, 장소는 물체의 운동과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무거운 것은 잘못된 장소에 있기 때문에 바른 장소로 가기 위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가벼운 것은 더 높은 장소로 가기 위해 위로 올라간다. 따라서 사람도 기력이 쇠하면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기력이 충만하면 땅에서 살게 되는 원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영원불변하는 무

에너지 보존법칙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결국 균형을 이루어 0(무)이 되는 거대한 저울이다. 그래서 우주 전체의 에너지는 형태만 변할 뿐 그 질량은 변하지 않고 불변한다. 에너지 보존법칙에 대해 파인만은 어떤 수가 있는데 이것은 세계의 전체 전하량으로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다. 전하는 한 곳에서 없어지면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힉스 마당을 녹이면 입자(몸)의 구조는 사라지지만 입자를 이루고 있던 원자(에너지)들은 우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그 형태는 바뀌더라도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주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국 힉스마당(무)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유)는 일정한 주기를 거쳐 다시 무로 돌아간다. 궁극적으로는 유와 무의 구별이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입자와 힘, 물질과 에너지, 재료와 빔 등 모든 경계가 모호하다. 유와 무의 구별이 사라지는 것은 또 하나의 인위적 경계가 사라지는 것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는 결국 무로 설명된다.


동양의 관점에서는

동양에서는 우주 내 창조의 근원인 무를 원기라고 명명했다. 이때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원기가 표면의 에너지 스펙트럼*(가벼운 것은 하늘로, 무거운 것을 땅으로 가는 것)과 결합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 우주 만물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죽음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는 삶의 주기를 마치는 순간 우리 몸은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혼은 영(무)과 결합하며 우주로 돌아가고 생의 과정에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부여받은 백(魄)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우주로 돌아간 영혼은 이 우주 안에서 무한 반복 생성(영원회귀)된다는 것이다.




*질량은 관성의 척도이고 관성은 물질이 밀거나 끄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저항이다.

*힉스 마당(에너지)이 더 많이 걸리적거릴수록 그 입자는 더 무거워진다. 따라서 힉스 마당은 결정적으로 입자(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다. 힉스마당은 입자에 질량을 주는 것뿐만 그 입자의 고유성을 대부분 결정한다. 그래서 힉스 마당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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