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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an 15. 2024

엄마의 냉장고

이런저런 바쁜 일로 한 달여 만에 고향집을 찾았다. 이삼주 전에 급 우울 증세를 보인 엄마가 걱정돼서 바쁜 시간을 쪼개 잠시 짬을 냈다. 마을회관에 주차를 하고 회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회관에 모여 송편을 빚고 계셨다.


"엄마! 엄마!"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더니 금세 밖으로 나오셨다. 한 달여 만에 보는 엄마는 세월을 다 막아낸 사람처럼 지난번 보다 훨씬 더 헬쑥한 모습이었다.


"엄마! 왜 이렇게 말랐어. 전보다 더 늙었잖아"


"잘 먹는데 살이 더 쪘을 건데..."


엄마랑 집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사 가지고 간 것들을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에 정리하다 보니  엄마의 냉장고에서 온갖 식재료가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일일가 싶었다. 평소에 엄마는 거의 식사를 안 해 드신다. 엄마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 설치한 CCTV에 비친 엄마의 식탁엔 묵 한 접시가 고작이거나 또는 김 하나, 젓갈 하나가 전부일 때가 대부분인데 뭔 식재료를 이렇게 많이 사다가 쟁이셨나 싶어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무슨 식재료가 이렇게 많아요? 엄마가 해 드시려고 사놓으신 거예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하도 안 해 드시길래 반찬거리를 이것저것 사 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안 사 왔을 건데"


"물어보고 사 오지 그랬어. 엄마는 집에서 밥 안 먹어. 회관에서 먹어. 그러니까 사 가지고 온 것하고 엄마가 사다 놓은 것하고 네가 다 가져가서 해 먹어. 니들은 다 돈 주고 사야 하잖어"


"해 드시지도 않을 거면서 식재료는 왜 이렇게 많이 사다 놨어요?'


"장사꾼들이 나만 지나가면 사 달라고 붙잡는데 워쩌냐. 부자가 안 사면 누가 사냐고 그러면서 붙잡고 팔아달라고 사정을 하니께 안 살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내가 불쌍한 고양이도 걷어 먹였는데 그것 하나 못 사 주겠냐. 그리고 옛날에 니 아버지는 거지가 동냥하러 오면 밥상을 차려서 방에서 대접했어.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밖에 세워놓고 줄 수 있냐고 그러면서"


또 엄마의 옛 추억이 막 소환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얼른 다시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엄마가 무슨 돈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뭘 보고 엄마한테 돈 많은 사람이라고 자꾸 사라고 그런댜? 엄마가 뭔 돈이 있다고?"


"응! 자식들이 다 잘됐응께 나보고 부자라고 그러는데 워치게 모른척 한다냐. 사실 뭐 우리 자식들이 엄청 부자는 아녀도 밥은 먹고 살잖아. 장사꾼들이 내 자식들이 다 잘됐다고 막 그러면서 사라고 하니까 안 살 수가 있간디"


역시나 그랬다. 엄마가 말은 안했어도 장에 나가서 자식들 자랑을 엄청 하신게 분명했다. 결국 당신 꽤에 당신이 넘어간 셈이다. 그랬으니 장사꾼들이 엄마의 약점을 알고 파고 드는데 엄마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내 자식들 밥 벌어먹고 사느라 어려워요'. 이 한마디만 하면, 장날마다 필요하지도 않은 비싼 생선들을 사 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인데, 엄마는 내 자식들 근근이 산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하기 싫으셨던 거다. 비록 당신이 월 백만 원도 안 되는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형편이라고 해도 엄마는 항상 남에게 풍족하게 베풀며 살아오셨던 습관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당신 입에 떠 넣으려고 밥을 하지는 않지만, 이제나 저제나 자식들이 오려나 기다리면서 식재료들을 사 놓으셨던 거다. 그렇게 사 들인 식재료를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다시 냉장고에 꺼내 놨다가 하다가 식재료가 다 부패되는 줄도 모른 채 자식들을 기다리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 달 전에 갔을 때에 손자가 좋아한다면서 담아 놓은 파김치가 냉장고에서 푹푹 발효되고 있었다. 그때도 내가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밥도 안 해 드신다면서 뭐 하러 파김치를 그렇게 많이 담아놨어요. 그것도 장에서 사다가 담을 필요가 있어요?"


"우리 혁신이가 파김치 좋아한다고 해서 오면 줄려고 그랬지"


동생이나 조카가 온다고 한 적도 없는데 엄마는 혹시나 싶어 손자가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아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엄마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다  꺼내서 다듬고 손질해서 엄마 냉장고에 조금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챙겨 왔다. 그리고 더 시어터 지면 버리게 될 파김치도 챙겨 왔다.


혀끝 감각마저 사라져서 음식 맛이 짠지 싱거운지 잘 감별도 못하시는 엄마는 손자가 좋아한다고 파김치를 담아놓고, 또 옛날에 자식들이 좋아했던 생선들을 냉장고에 쟁여 놓은 채 하염없이 자식들만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림으로 늙어가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바쁜 일상을 조금 정리해서 여유있게 혼자 사는 엄마를 찾아뵈야겠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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