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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an 15. 2024

엄마의 인형

얼마 전 시골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엄마가 밤새 무슨 악몽을 꾸시는지 우리 딸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할머니랑 살자고 외치는 것이었다. 내가 얼른 일어나서 다 괜찮다고 편히 주무시라고 가슴을 토닥토닥해 드렸더니 제서 편안한 잠을 청하셨다. 아마도 내 걱정을 하다가 꿈을 꾼 것 같았다. 아침에 잠에서 깬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딸! 엄마 인형 하나만 사 줘라. 이왕이면 털이 복슬복슬하고 예뻤으면 좋겠어. 밤에 안고 자면 좋을 것 같아서. 다음번에 올 때 잊어먹지 말고 사 가지고 와"


나는 왜 엄마의 텅 빈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애착 인형을 사 드릴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서  바로 온라인 사이트를 열어서 엄마가 좋아하는 인형을 골라 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엄마를 위한 바디필로우를 주문하고 조금 있다가 이모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사용에 서툰 엄마가 스피커폰을 틀어놓고 통화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엄마:  응 동생! 잘 지냈지. 감기 걸려서 워쩐다냐. 나는 독감주사랑 코로나 주사 다 맞어서 괜찮여. 지금 딸내가 와서 같이 놀고 있었다. 어 그리고, 나 딸한테 인형  하나 사 달라고 했어. 밤에 안고 자려고"


이모:  아이구 언니!  언니가 나이가 몇인데 인형 가지고 놀아~ 그리고 안고 잔다는 얘기는 하지 말어~

그냥 다리나 얹고 잔다고 혀~ 남들이 들으면 넘사스럽다고 웃어"


이모한테 딸이 인형 사줬다고 자랑하려고 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된서리를 맞은 엄마가 순간 기가 팍 죽어서는 인형 산거 빨리 취소하라고 성화를 냈다. 이모가 무슨 인형을 안고 자냐고 한 얘기가 맘에 걸리셨나 보다. 평소 엄마 지론대로라면 어려서는 혼자 먹고살 수 없으니 부모 도움을 받는 아기로 살다가, 조금 커서는 새끼들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 어른으로 살다가, 늙으면 힘도 없고 외로우니까 다시 애기가 되는 거라고 자기만의 철학을 여기저기 전파하고 다니던 분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아끼는 동생의 말 한마디에 급선회를 하신 것이다.


하긴 이모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생 맏며느리로 살면서 주변을 살뜰히 챙기느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오신 분이다. 그 덕분에 엄마도 이모 덕을 많이 보고 살았다. 늘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형제를 먼저 챙기느라 당신 삶이 없었던 이모인지라 엄마가 인형을 안고 자겠다고 한 말이 이해가 안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는 시집가던 순간부터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그래서 신혼 때부터 이모부 품에 안겨 잠든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늘 시부모님을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었으니 뭔가를 안고 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나는 엄마 마음의 진의를 잘 알기 때문에 일단 엄마랑 같이 주문한 상품을 취소한 후에, 엄마 모르게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재주문했다. 그러고는 엄마한테


"엄마! 요즘은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인형처럼 생긴 다 바디필로우 다 써요. 그래서 그런 상품이 나와 있는 거구요. 그러니까 엄마가 바디필로우를 쓰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또 어른이라고 인형 가지고 놀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요? 괜찮아요. 사람 마음에는 누구나 아기 하나씩 들어있어요. 평생 어른인 척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이제는 자식들 다 키우고 할머니가 되었으니 엄마 지론대로 아기가 된 것이 맞아요. 이제는 자식들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야 되는 연세가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디필로우 다시 주문해 놨으니까 화요일에 도착할 거예요. 밤에 가슴 허전하니까 꼭 끓어 안고 주무세요"


한순간도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아버지를 먼저 보내놓고 얼마나 엄마 가슴이 허전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하긴 나도 언제가부터 베게를 끌어안고 자는 버릇이 생기지 않았던가.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법인데 그 외로움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한테 꼭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바디필로우에라도 마음을 의지해서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걸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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