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서정
그녀는 오십여 년 동안
싱크대 앞에서 갈고닦는 내공으로
누가 아줌마 하고 부르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필살기를 구사한다
목구멍에 거미줄 칠까 봐 아침마다
기다리는 출근버스는
몸뻬에서 터져 나온 실밥처럼
그녀가 그토록 부정해온 아줌마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끼니는 굶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빈 좌석을 사수하려는 그녀의 심오한 비법은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서기 100미터 전부터
버스카드가 든 커다란 지갑을
적진에 투항하는 몸짓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전술을 구사한다
그녀의 희미한 실루엣에 속은 기사들은
밤새 숲속을 헤매던 선비가
외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홀리듯
그녀 앞에 딱 멈춰 선다
그녀는 안면몰수하고 잽싸게 버스에 올라탄 후
하나 남은 빈자리를 향해 제 몸을 내던진다
생의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깊은 사색에 빠진 철학자처럼 하차역까지
단잠에 빠져든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오랜 기간 버스 숙박을 고집해 왔지만
아직껏 숙박료를 청구한 기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그녀도
가뭄에 콩 나듯 영감이 찾아올 때면
영감을 붙잡고 밤새 시름 하느라
한껏 고상을 떨어댄다
대전작가회의 2023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