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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an 17. 2024

아줌마 관찰보고서

-시인

 조서정



그녀는 오십여 년 동안

싱크대 앞에서 갈고닦는 내공으로

누가 아줌마 하고 부르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필살기를 구사한다

 

목구멍에 거미줄 칠까 봐 아침마다 

기다리는 출근버스는 

몸뻬에서 터져 나온 실밥처럼

그녀가 그토록 부정해온 아줌마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끼니는 굶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빈 좌석을 사수하려는 그녀의 심오한 비법은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서기 100미터 전부터

버스카드가 든 커다란 지갑을 

적진에 투항하는 몸짓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전술을 구사한다

 

그녀의 희미한 실루엣에 속은 기사들은

밤새 숲속을 헤매던 선비가

외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홀리듯

그녀 앞에 딱 멈춰 선다

그녀는 안면몰수하고 잽싸게 버스에 올라탄 후

하나 남은 빈자리를 향해 제 몸을 내던진다

 

생의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깊은 사색에 빠진 철학자처럼 하차역까지

단잠에 빠져든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오랜 기간 버스 숙박을 고집해 왔지만

아직껏 숙박료를 청구한 기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그녀도

가뭄에 콩 나듯 영감이 찾아올 때면

영감을 붙잡고 밤새 시름 하느라

한껏 고상을 떨어댄다



대전작가회의 2023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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