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작가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롱빈의 시간』을 <나무와 숲>에서 출간했다.
이번에 출간한 장편소설 『롱빈의 시간』은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폭력의 가해자이자 그 전쟁에 휩쓸렸던 피해자이기도 한 남자가 50년 동안 내면에 묻어둔 고통스런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이 주요 핵심 내용이다.
소설의 시작은 '이나'라는 학생이 편의점이나 카페, 도서관 알바와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큰 금액을 준다는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구자성이라는 노인을 찾아가 다소 황당한 구술 기록 계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구술 작업은 종종 말문을 닫아 버리는 노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추가 계약을 통해 집사와 노인과 이나가 함께 떠난 베트남 여행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베트남 여행에서 이나는 구자성이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롱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참혹한 진실과 함께 구자성의 의식과 무의식의 밑바닥에서 그를 평생 동안 괴롭힌 죄의식과 고통의 뿌리가 하나하나 드러난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과 공공양심이 전쟁의 광기로 인해 어떻게 무너지고, 전쟁이 끝난 뒤에 한 사람의 몸과 영혼을 어떻게 갉아 먹었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정의연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 수집을 비롯하여 한국군 참전군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 “또 그들이 전쟁을 수행한 마을에 찾아가 아직도 부서진 지체와 깨지고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며 생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저술 배경을 설명한다.
작가가 만난 전쟁 피해자들은 “오래전 일이라고 제쳐놓고 있다가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던 그날의 사건들이 뜬금없는 상황에서 불쑥불쑥 재생된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그들의 몸과 기억속에서 베트남 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는 “이 소설은 2020년 고인이 된 빈딘성 떠이빈(옛 빈안)의 응우옌 떤 런 아저씨와 꽝남성 퐁 니 마을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를 비롯한 베트남 중부지방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증언, 김영만 선생을 비롯한 한국군 참전군인들의 이야기와 수기 그리고 수많은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자들이 토해 놓은 이야기와 삶이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누군가는 잊고 또 누군가는 지워버린 베트남 전쟁, 그 전쟁의 참상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또한 현재를 사는 진정한 작가 정신이다. 그 일을 정의연 작가가 해 낸 것이다.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그의 삶을 관조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며 “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폭력의 가해자이자 그에 휩쓸렸던 피해자이기도 한 남자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인간 실존의 처참한 양면을 함께 살고 견뎌내는 과정이 된다. 롱빈, 그 낯선 지명은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함께 겪고 견뎌야 할 우리 시대의 아픔이 남긴 상처”라고 추천 글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현재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1심은 승소했으나 한국 정부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이 소설이 한층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전쟁의 성처가 국민들에게 남기는 고통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전쟁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더불어 지금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 전쟁의 맹목성과 광기가 인간을 집어삼킬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다. 더 이상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정의연 작가는 2004년 소설동인무크 《뒷북》 창간호에 <다락방과 나비>, <풀벌레의 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 다. 2007년 <그 여자를 보았네>, 2009년 <그와 함께 산다는 것> 등을 발표했다. 2015년 작품집 《스캔》을 출간했으며, 2020년 <그 여자>가 제12회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에 선정되었다. 2022년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고통스런 기억과 상처를 그린 단편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