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여자를 훔쳤다
-조서정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첫사랑 여자를 잃어버린 남자는
사랑채에서 혼자 늙어가다가
외로움에 지쳐 먼 우주로 떠나갔더란다
먼저 떠난 남자는 그래도
이승에 두고 간 첫사랑이 그리워
간간이 여자 꿈에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아직도 자식들 손에 꼭 붙잡혀 있는 여자는
번번이 남자를 외면했더란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여자는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찾아왔던 그 뒷모습이
자꾸만 가슴에 아른거려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내렸더란다
절도를 공모한 사남매
아직 소멸시효가 조금 더 남았으니
여자를 돌려줄 수 없다며
남자의 묘소 앞에서 뻔뻔하게 재배를 올린다
2024 봄호, 불교문예
2024 <불교문예>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