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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Mar 05. 2024

<시>아버지의 여자를 훔쳤다

아버지의 여자를 훔쳤다



-조서정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첫사랑 여자를 잃어버린 남자는

사랑채에서 혼자 늙어가다가

외로움에 지쳐 먼 우주로 떠나갔더란다

먼저 떠난 남자는 그래도

이승에 두고 간 첫사랑이 그리워

간간이 여자 꿈에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아직도 자식들 손에 꼭 붙잡혀 있는 여자는

번번이 남자를 외면했더란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여자는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찾아왔던 그 뒷모습이

자꾸만 가슴에 아른거려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내렸더란다


절도를 공모한 사남매

아직 소멸시효가 조금 더 남았으니

여자를 돌려줄 수 없다며

남자의 묘소 앞에서 뻔뻔하게 재배를 올린다



2024 봄호, 불교문예 



2024 <불교문예>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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