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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09. 2024

2. 쌈짓돈을 풀다

모르면 약이고 알면 독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나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새롭게 시작한 유아숲지도사 공부, 공부를 하면서 유아발달론부터 다양한 영유아 교육 관련 지식들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걸린 수업이 특수아동지도라는 과목이었다. 특수아동이라고 하면 흔히 장애가 있는 유아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의 유형에는 심리적 유형과 신체적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심리적 유형에는 자폐아가 대표적이다. 


자폐라고 하면 TV에서 본 아이들 또는 가끔 엄마 손 잡고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 중에 계속 같은 곳을 응시하거나 같은 단어를 내뱉는 아이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별로 흔치 않은 증상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었다. 모든 질병에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경계성 자폐스펙트럼 증상이란 것도 있다는 것.


잠시 영유아 자폐스펙트럼 증상에 대해 찾아보니 가장 크게는 호명 반응과 눈 맞춤이라고 한다. 그 외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가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언어 발달이 많이 느린 것도 자폐스펙트럼의 한 증상이라고 한다. 요즘 엄마들은 다 똑똑해서 영유아 발달 검사라는 것을 생후 12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만 해도 그런 개념들이 없었다.


작은 아이는 98년생이다. 그러니까 그 시기에는 언어가 조금 느리면 걱정은 했어도 이것이 어떤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98년생이었던 우리 딸은 유난히 언어 발달이 늦었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집 근처 소아과에 가서 언어발달이 느린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때가 되면 말문이 트일 거라는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는 더 안심했던 것 같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언어발달이 열살때까지 늦어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우리 아이에게 정말 소중했던 시간들을 헛되이 보냈다. 그리고 왜 아이가 낯선 사람들과 눈을 잘 못 맞추지 생각하기 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언어발달이 느려지면서 어떤 문제들이 뒤따를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기였다.


로크의 백지설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로크는 인간의 본성은 환경에 따라서 바뀔 있다는 백지설을 주장했다. 유아의 마음은 어떠한 관념도 없는 아무런 특성이 없는 백지와 같은 것이며 경험에 의해서 지식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로크는 개인마다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대체로 환경이 정신을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유아기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부모탓이었다고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되돌릴 수도 없다. 그리하여 지금도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딸을 위해 쌈짓돈을 풀었다. 산문집을 내려고 아끼고 아낀 삼백만 원을 딸의 계정으로 전송했다.


"딸! 용기 잃지 말고, 취업이 급한 것은 아니니까... 이걸로 대학원 등록금으로 쓰던 아니면 하고 싶은걸 하든 니 선택이야. 엄마는 너를 믿어"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이라고 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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