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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pr 22. 2024

3. 모태솔로, 우리 딸의 입덧???

엄마를 배려해서 지 아빠집에 살러 간 우리 딸,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엄마!~ 나 오늘 엄마집에 놀러 가 돼?"


"응"


일하다가 카톡을 받아서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어제 편의점 면접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도 이력서를 출력하러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프린터기도 잉크가 떨어져서 출력이 안된다는 사실이 나를 살짝 불편하게 했다. 


오면 근처 문방구에 가서 출력하라고 해야지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딸이 집에 도착했다. 가만 보아하니 면접 간다는 처녀의 옷차림이 빨간색 후드티에 안 그래도 큰 허벅지가 확 드러나는 청바지 차림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진 상태에서 대충 묶은 모습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잔소리 폭탄이 터져 나왔다.


"야!~ 너는 면접 보러 간다는 애가 꼴이 그게 뭐니?"


"왜? 내 꼴이 어때서? 그냥 편의점 면접인데 어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점장이라면 너처럼 준비성 없는 사람은 채용 안 하겠다"


이렇게 시작된 말싸움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해서 어느 덧 대형 산불로 번지는 형국이었다. 


"그냥 엄마집에서 좀 쉬려고 왔는데 또 지적질이야? 그리고 내가 지금 빈속이라 제정신이 아니라 쉬러 왔다는 말을 못 했을 뿐이고...."


빈속이라는 말에 서둘러 냉동실에 있는 밥 하나를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야채를 넣어 계란프라이를 해서 먹으라고 식탁에 차려줬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밥은 안 먹고 계란프라이만 먹는가 싶더니 밥을 한 숟가락 삼키려다 갑자기 입덧하는 아이처럼 헛구역질을 한다. 속으로 재 또 시작이군. 먹는다고 할 때는 언제고 또 밥상 앞에서 헛구역질을.... 이쯤 생각했을 때  앗!~ 우리 딸은 잡곡밥을 안 먹었지. 순간 딸이 가장 싫어하는 검은 현미에 이런저런 잡곡을 넣은 밥을 줬구나 싶었다. 잡곡밥 못 먹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억지로 밥을 삼키려다 헛구역질을 했던 것이다.


"너는 먹기 싫으면 먹지 말던가" 


그러면서 오기로 딸이 먹던 밥을 내 입속으로 꾸역꾸역 다 밀어 넣었다.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이


"엄마는 나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내가 안 먹는다고 하면 달래거나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새로 해 주지 않고 그럼 굻어하고 굶겼잖아. 왜 엄마는 우리들하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던 거야?"


순간, 유아숲지도사 과정에서 배운 유아발달론 내용이 퍼뜩 머릿속에 스쳐갔다. 유아기 때 때를 쓰거나 편식을 하는 것도 하나의 소통 방법이기 때문에 수용해 주고 달래 주어야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완전 빵점 엄마였다. 


나는 애들이 때를 쓰거나 반찬 투정하는 꼴을 못 봐주는 아주 냉정한 엄마였다. 뭘 사달라고 때를 쓰면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냉정하게 혼자 나오는 스타일이었고, 밥상 앞에서 투정을 하면 그냥 밥상을 거둬 치우는 스타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딸의 낮은 자존감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면, 나처럼 편식이 심하고 까탈스러운 아이가 없었다. 4남 1녀 중 둘째로 자라면서 온갖 편식에 제멋대로 성질을 부려서 오죽했으면 온 동네가 다 알아주는 싸낙배기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싶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그 바쁜 와중에 내 밥상을 따로 차려주셨다. 또 수제비를 안 먹겠다고 해서 담장 너머로 아랫집 친구밥하고 바꿔 주실 정도였다. 


나는 왜 내 어린 시절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내 자식들에게 유독 냉정한 엄마였을까?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현재까지도 내 성격은 그대로 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이 왜 엄마는 자식을 수용해 줄줄 모르냐고 따질 만큼 자랐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그래 미안해. 엄마가 최근에 공부를 해 보니 그때 수용해 줬어야 했더라. 그땐 몰랐어."


"그럼 지금은 알았으니까 달라질 거야?"


"아니, 지금은 아는데 안 달라질 것 같아. 너도 이젠 성인이니까"


역시 나는 구제불능 엄마가 맞다. 지금이라도 수용해 주고 믿어주고 응원해 줘야 하는 것인데.... 미안해서 저녁에 딸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 사 주기로 했다. 



그땐 몰랐었고, 지금은 아는데도 나는 왜 안 바뀌는 걸까?

자식이 변하길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수용해 주고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옳은데 아무튼 성질머리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니 조금씩 바꿔가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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