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효자손을 잡으셨다

by 조서정 시인

할머니 똥 수발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할머니한테 말대꾸 한 번 안 한 엄마는 요즘 말로 하면 MZ세대쯤은 되는 것 같다. 자식들한테 효도하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


"니들을 없는 집에 태어나게 해서 어렸을 때 니들 고생시킨 것이 나는 늘 마음이 아프다.

니 오빠는 워낙 애를 못 낳다가 나서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만

너하고 셋째한테는 특히 미안한 것이 많다."


"엄마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신대요

없는 살림에 딸내미를 고등학교까지 가르쳐 주셨으면 엄청 훌륭한 거지요.

그것도 동네에서 이장댁 딸하고 새마을지도자 댁 딸만 고등학교를 갔잖아요.

친구들이 산업체 고등학교 가서 돈 벌어서 집에 보낼 때

나 혼자만 고등학교 다니는 것이 엄청 죄송하고 그랬었어요"


"그건 그랬었어~

없는 집구석에서 딸년을 고등학교까지 보냈다고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얼마나 수군거리고 흉을 보던지

내가 한동안 동네에서 돈 꿔 달라는 말을 못 하고 살았다."


부모님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나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체육복과 교련복 사 달라는 말을 차마 부모님께 못했다. 그래서 체육시간과 교련시간만 되면 다른 반 친구들한테 체육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고등학교에 보내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오빠와 동생들 용돈을 감당했던 시절이다.


또 미안하다는 말 외에 엄마가 자주하시는 말씀은 효자론이다. 자식들이 다 효자들이라고 온 마을에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 그렇게 우리 사남매는 엄마가 그린 큰 그림대로 자연스레 효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자식들한테 효자라는 말씀을 안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부터 갑자기 효자론을 꺼내 든 것이다.


“나는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서 아들도 효자지

며느리도 하나같이 효부지

거기다 딸까지 지 엄마라면 사족을 못 쓰니

느지막이 무슨 복을 이렇게 많이 받았는지 모르것다.

오늘도 니 오빠랑 언니가 사골을 고아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쟁여 놨다.

그뿐인 줄 아냐?

엄마 잘 먹는 것들을 고루고루 사 왔더라.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니

니들 아버지가 자식을 넷이나 낳아줬다고 큰소리 칠만도 했더라”


실제로 장남인 오빠는 부여군이 다 알 정도로 자타공인 효자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번 문안 전화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수시로 엄마를 세심하게 보살핀다. 또 워낙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오빠는 항상 형제들 단톡방에서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면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

니들이 엄마한테 하는 걸 자식들이 고대로 배우는 거여!

자식 교육이 따로 없다. 부모한테 잘하는 것이 자식 교육여

그리고 나중에 돌아가신 뒤에 제사상 차려놓고 절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니까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


오빠는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자식들은 먹고사는데 바빠서 효도 점수를 매기면 겨우 평균값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우리 형제들을 다 싸잡아서 효자라고 자평하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효자론을 꺼내 들어 ‘내 자식들은 다 효자’라고 도술을 부리신다. 이런 엄마의 효자론이 유독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혹시라도 자식들이 무의식 중에라도 엄마를 서운하게 했을 때다.


한 번은 오빠가 시골집에 도착하자 마자 입안에 친 거미줄을 거둬내겠다는 듯이 온동네 이야기를 다 전달하겠다는 듯이 말씀 폭탄을 터트렸다고 한다. 듣다 듣다 지친 오빠가 엄마한테 한 마디 툭 던진 것이 "남의 말좀 그만 하세요 엄마" 였다. 그 일로 믿었던 큰아들한테 마음에 상처를 적잖이 받으신 엄마가 나에게 에둘러 서운함을 표현하셨다.


“우리 자식들은 하나 같이 다 효자들이라 그런 일이 읎는디 다른 집 자식들은 부모한테 막 멋탱이도 한다더라. 나는 내 자식들한테 아직 한 번도 지 에미 탓하는 소리를 안 들어봐서 잘 모르는디 만약에 자식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면 겁나 서러울 거 같아 야?”


엄마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면 분명 뭔가 있다는 신호다. 엄마가 발신한 이상 신호를 얼른 캐치한 나는 전후 상황을 알아본 후에 오빠한테 얼른 엄마 마음 치료 처방전을 발행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나를 3남 1녀 중 둘째로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바로 엄마와 아들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하라는 뜻일 게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나에게 부여한 엄마는 가끔 맛있는 당근을 챙겨주시는 것 또한 잊지 않으신다.


"너는 워쩜 그렇게 똑똑하다냐! 그 어려운 책을 쓰는 것은 천재나 하는 것이지. 나는 밭이나 매고 고추나 땄지, 책 같은 것은 죽어도 못쓴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녀, 암만"


여기까지가 엄마가 규칙적으로 나에게 불러 주시는 노래 가사의 1절이다. 1절이 끝나고 나면 바로 이어 2절을 시작하신다.


"근디 야래 병원 원장이 그러는디 애들은 다 엄니 머릴 닮는다더라.

하긴 니들 아버지가 이장하면서 일 저질러 놓으면 그거 다 내가 처리했다.

니들 아버진 맘만 좋아서 무조건 예예만 하고 다녔지

일은 내가 다 처리했다니까.

그라고 보면 나도 머리가 좋았던 겨.

글치 천재한테서 천재가 나온거라니까"


여기까지 듣고 나면 뭔가 엄마한테 판정패를 당한 느낌이 든다. 결국은 당신 자랑을 하고 싶어서 내 칭찬을 시작하셨나 싶기도 하고 암튼 가끔 엄마가 막 귀여워지는 순간이다. 하긴 엄마라고 왜 배움에 대한 결핍이 없었을까 싶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엄마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니들만큼만 배웠으면 뭐라도 한 자리는 해 먹었을 것인디..."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엄마는 말 그대로 무학이다. 그런데도 한글과 구구단 등등을 독학으로 깨치셨다. 엄마는 정규 교육은 못 받았지만 지혜로 치자면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니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100세기를 걸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중에 천재였던 것이 분명하다고 엄마 귀에 살짝이 속삭여 본다.




keyword
이전 19화또 한 분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