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아! 야옹해봐

이름을 벗다

by 조서정 시인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서 정이, 서정...”


말끝을 흐리신다. 용숙이로 50년을 불렀는데 갑자기 서정이라고 부르려니까 뭔가 많이 어색하신 모양이다.


“엄마! 그냥 편하게 부르셔요~

갑자기 바꾸려니까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나의 개명 소식을 듣고 가장 쓸쓸해 한 사람은 아들이었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또한 당신 이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엄마 이름은 누가 들어도 딱 남자 이름이다. 이름 가운데 한자가 하늘천(天)자 이다 보니 평생 이름에 눌려 살았다고 생각하셨다.


“니 외할아버지는 생각도 없지, 딸 이름에 하늘천이 뭐냐?

내가 그 이름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


“그건 또 무슨 얘기예요 엄마?”


“긍께 한 번은 어떤 사주쟁이가 그러더라

당신은 여자 이름에 하늘 천자가 딱 들어가 있어서

남편을 이기려고 하면 지아비 夫자가 하늘 천자보다 높기 때문에

남편 앞세우고 청상과부로 살 운명이라는겨“


엄마는 하늘을 다스린다는 뜻을 가진 이름에 갇혀 사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친정이 바로 머리맡에 있어서 그랬는지 평생 아버지한테 지고 살았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 불쌍한 사람들한테 주머니를 다 털어 주고 들어오거나 세끼 밥 먹듯이 빚보증을 서 주고 와도 성질 한 번 제대로 못 내고 살았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꼭 훈수 두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엄마 주변에도 몇몇 사람들이 엄마한테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


“아이구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디

용권 엄마가 맨날 오냐오냐 받아줘서 그러는 거 아니것슈?

한 번 작정하고 기를 꺾으면 될 것인디...“


엄마는 그동안 아버지한테 당하고만 산 세월이 하도 억울해서 한 번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버지와 맞짱을 떴다고 한다.


“니 아버지가 하도 소리 지르고 성질을 부리길래

나도 똑같이 소리 지르면서 대들었어

그랬더니 옆에 있던 전화기를 집어던지더라

그래서 나도 더 큰 물건을 같이 집어던졌어

그랬더니 내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장롱을 다 때려 부수는 겨

그러다 부서진 장롱에서 나온 유리 파편을 니 아버지가 밟았는디

발에서 피가 철철 나더라.

순간! 이러다가는 누구 하나 죽어나겠다 싶은거여

그래서 내가 얼른 잘못했다고 빌었어.

그러고 서랍에서 연고를 찾아서 발라주고 붕대로 감아줬어

니 아버지 남들한테는 천사였는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주 호랑이 저리 가라였어

그래서 내가 평생 니 아버지를 한 번도 못 이겨 봤잖어“


그 이후로 엄마는 아버지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순종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것이 다 외할아버지가 엄마 이름에 하늘 천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 주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당신 이름에 불만이 크셨던 만큼 내 개명 소식을 반기셨다.



나는 용숙이라는 이름으로 등단도 했고 시집도 두권 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서 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명을 결심한 것은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같은 반에 용숙이가 둘이나 돼서 큰 용숙이 작은 용숙이로 불렸다. 하긴 우리 세대에서는 딸 이름에 흔히 ‘숙’자를 붙여 이름을 지었으니 같은 이름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또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름 때문에 수업시간에 내 이름이 수시로 불려졌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시간에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이 떠들면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 조용숙, 조용히 하세요”


그 순간 내가 떠든 것도 아닌데 괜히 떠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뭐 이런 정도는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살아왔다. 그런데 내 나이 마흔쯤이었던 것 같다. 서른여덟에 그토록 소망했던 대학원에 진학해서 열심히 대전에서 경기도 화성까지 통학하던 시절이다. 그날도 한신대학교에서 야간 수업을 마치고 수원역에서 밤 11시20분 기차를 타고 서대전역에 밤 1시에 도착했다.


그때만 해도 화성 연쇄 살인사건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던 때라 밤늦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동안 혹 택시 기사님이 내가 모르는 길로 방향을 잡으면 온몸에 털이 다 솟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서는 애 아빠가 ‘한 번쯤은 마중을 나와 줄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학원 입학을 결사반대했던 애 아빠한테서 결코 기대할 수 없는 희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물어봤다. 그래서 이름을 알려줬더니 또 사주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은 제 직업이 성명학 하는 사람입니다.

택시는 그냥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일이구요“


“아 네~”


내 사주를 들은 기사님은 잠시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손님!~

손님 이름하고 사주하고 잘 맞지 않네요~

왜 하필 여자 이름에 맑을 숙자를 썼을까요.

이 이름은 일부종사 못할 이름이니 내일 자고 일어나서

저한테 찾아오세요 “


그러면서 명함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듣고 흘린 얘기였다. 그 이후로도 10여 년을 용숙이라는 이름으로 더 살고 나서 우연한 계기에 개명을 결심했다. 물론 1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나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힘들게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좀 내 삶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싶은 순간에 막내 올케한테 이름 짓는 사람을 소개받아 개명을 실행했다.


작명가한테 받은 새 이름은 내 사주에 없는 남편복과 재물복을 보강한 이름이란다. 여하튼 좋은 이름이라고 하니까 싫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의 흔적들을 어떻게 끓어 안고 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면 내가 아무리 서정이라고 우겨도


“저 ooo인데요. 조용숙 고객님이시죠? 고객 정보에 동의해 주셔서 전화드렸는데요. ”


그러면 나는 단호하게


“저 조용숙 아닌데요. 조서정인데요”


그리고는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전화들이 개명 전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너는 조서정이 아니고 조용숙이라고 우겨대지만 나는 꿋꿋하게 나는 조서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씩씩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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