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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ul 05. 2024

 ‘일상에서우주로 가는 詩의 여정’을 담은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문학세계사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장인수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를 문학세계사에서 출간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1부, 까세권에 산다. 2부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3부 아내를 바꿔 입었다. 4부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제목하에 총 68편의 시편들이 수록됐다.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는 장인수 시인 특유의 유쾌함에 기반한 진정성에서 길어 올린 몸 철학적인 사유가 우주적 상상력으로 승화되는 여정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번 시집은 니체의 인간 정신 발달 3단계를 떠 올리게 한다. 니체가 말한 ‘인간 정신 발달 3단계’가 있다.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그리고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해 가는 3단계를 말한다.    

  

첫째 낙타의 정신은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아무런 불만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내와 순종의 상징이다. 낙타의 정신은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한다. 두 번째 사자의 정신은 용맹하고 당당하게 싸워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정신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힘 쎈 것들과 싸워서 이겨야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세 번째 아이의 정신은 인생을 아이처럼 즐기며 사는 삶이다.      


그러면 시인의 정신은 어디쯤일까? 적어도 낙타의 정신은 아닐듯 싶다. 그럼 자유를 갈망하는 사자의 정신일까? 기존의 관념과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욕망을 포기할 수 없으니 사자의 정신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진정 싸움을 내려놓은 아이처럼 평자나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 아이처럼 자유롭게 시를 쓴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의문에 대해 고개를 가로젖는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타자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어려운 말로 비비 꼬거나 말장난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체계를 구사하는 등. 나름을 시작법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아이처럼 노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함이 남는다.      


가을 산에 든다

골짜기는 끝없이 깊구나     

나는 깊이가 부족한 사람

내 글도, 그림도, 인생도, 섹스도

깊이가 부족한 사람     

평범하게 좋을 뿐이지

깊이가 약해     

얼마나 더 깊어져야 하는가?

가을 산에 든다

꽃골 낙엽골 가도 가도 가도 깊구나

떨어지는 낙엽들이 서로 키스하고, 춤추고, 뒹굴고, 타닥타닥 딴따 탱고, 밀룽가, 말발굽 소리, 산울림이 되어 쌓이는 소리

노래가 울려 퍼지는 저 깊은 골짜기

얼마나 깊어야만 하는가

깊지 않으면 예술이 아닌가?     

-「깊이에의 강요」 전문          


그런 의미에서 장인수 시인은 「깊이에의 강요」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니들이 말하는 ‘깊이’ 그것이 뭔데? 그 깊이가 “꽃골 낙엽골”, “노래가 울려 퍼지는 저 깊은 골짜기”쯤인가 가라고 되묻는다. 혹자들이 말하는 깊이라는 것이 자연이 만들어낸 꽃골의 깊이도, 낙엽골의 깊이도 못되면서 깊이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 깊이는 ‘평범’의 깊이가 아닐까 싶다. 깊은 골짜기를 너무 깊어서 그 깊이를 잴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지만 평범의 깊이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는 진짜 깊이가 아닐까 싶다.      

     

이매역 지하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느닷없이 시상이 번뜩

‘싸다’와 ‘쓰다’를 함께 끄응끙     

「이게 웬 변고인고!」 중에서          

그래서 장인수 시인의 시의 촉수는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속에서 길어 올려진다. 공중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싸다’와 ‘쓰다’를 함께 끄응끙” 하는 중에 나오는 것이고.      

“그렇게 좋으세요?”

젊은 스님이 노스님에게 묻는다

“절간에서는 부처님 때문에 똥자루 육신을 대접하지

못하잖아. 여기는 똥자루가 극락 마사지를 받네, 애인보다 좋아.”

노스님의 희롱에 젊은 스님이 깜짝 놀란다

“파계하신 거 아니예요?”
 “한 꺼플 허물을 벗는 게 해탈 아닌가?”     


「극락 마사지」 중에서     


한 꺼플 허물을 벗는 것에서 해탈의 의미를 설파하는 스님들이 목욕하는 장면에서 진리의 본질에 가 닿는다.           

장 구경하고 있다

마치 탑돌이 하듯이

화훼 구역에 들어섰을 때

꽃구경에 홀린

젊은 여스님을 보았다

화려한 색에서 무슨 선근善根을 발견한 것일까

다시 탑돌이 하듯이

시장은 서너 바퀴 돌면서 장 구경을 하는데

호떡 장사 긴 줄에 서 있는 여스님을 또 만났다

출출하셨구나

두근거리던 나는

여스님과 눈길이 딱 마주쳤는데

허, 참 내!

보조개도 있네!

맑고 귀여운 그녀의 눈 길에

나는 어질어질 빗설 수밖에 없었다

번잡한 저잣거리에서 

눈싸움에 진 나는

술병좌座를 찾아

포장마차로 줄행랑을 쳤다     


「헛된 눈싸움」 전문     


그런가 하면 꽃구경에 홀린 젊은 여스님에게서 속세의 꽃을 보려 했던 시인 자신과 마주치는 장면에서도 살짝 웃음을 자아낸다. 이토록 일상의 모습에서 생의 진리, 또는 삶의 본질과 마주하는 시인의 시선은 우주적 자아의 세계로 확장된다.

      

“이승은 목숨을 잠시 빌린 것” 「인생의 계약금」 중에서, 이라는 사유에서 보듯이 이승의 삶은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찰라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승에서의 삶이 천년 만년 영원할 줄 알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이다.        

   

10월 말 

할머니 셋이 꽃단장을 하고

남한산성 오르는 길

울긋불긋 계곡 평상에서 화투를 친다     

“화자야!”

“화자야!”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단풍 속으로 오줌 싸러 갔나?”

“약사사에 기도하러 갔나?”

천수관음의 손 인양

단풍잎 후두둑 지는 평상     


「단풍 속으로 사라졌다」 중에서     


「단풍 속으로 사라졌다」에서는 결국 우리네 삶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살그머리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우주적 상상력은 “먼지에 붙들려 사는 인생이여/『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책 제목이 떠 오르고/인생은 먼지로구나”「인생의 떨켜」 중에서처럼 우주적 차원에서 물리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인생은 별이 남긴 먼지에 불과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가 닿는다.           


힘겹게 인생 목넘이를 넘어온

중년의 아저씨 두 분이

해낙낙하게

머릿고기 편육을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술잔에 슬픔을 따르며

“인생이 뭐 별거다냐” 살만한 게 인생여.“

귀맛좋게 인생을 예찬한다     

희롱해롱 혀가 점점 꼬이고

시퍼런 청대독이 오르더니

”인생 좆같네, 씨발.“

찜부럭을 부린다     

보다 못한 욕쟁이 할머니가 오더니 호령!

”씨팔놈들아, 좆을 칭찬해야지 왜 좆을 욕하고 지랄이야, 그러다가 씹 못할 놈들이 되면 어쩌려고? 좆을 칭찬해야 씹할놈이 되지, 안 그려?“

그 말에 꽐라 중년의 아저씨는

급! 급격히 공손해진다   

 

「찜부럭」 중에서     


”인생이 뭐 별거다냐” 살만한 게 인생여.“/귀맛좋게 인생을 예찬한다” 인생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듣기 좋게 인생을 예찬하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본심이 분출한다. 한마디로 ”인생 좆같네 씨발“이라는 말에 대한 욕쟁이 할머니의 응수가 아주 대단하다. ”씨팔놈들아, 좆을 칭찬해야지 왜 좆을 욕하고 지랄이야, 그러다가 씹 못할 놈들이 되면 어쩌려고? 좆을 칭찬해야 씹할놈이 되지, 안 그려?“ 욕쟁이 할머니의 처방전이 참으로 대단하다. 니들이 말하는 그 잘난 관념이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본질이 뭐냐하면 생명이 창조되는 우주의 섭리라는 것이다. 이 엄청한 철학을 욕쟁이 할머니는 욕으로 시원하게 풀어낸다.           


행동 지하 1층 ‘777’ 사교댄스 무용학원에서

세 시간이나 땀 뻘뻘 흘리며

절반은 나비, 새가 되어

정신 쏙 빼놓고

땀범벅이 된 60대 여성 세 명이

현관을 나오자

”화, 함박눈이다.!“

광인처럼 미친 듯 폴짝폴짝 뛴다

세상이 온통 춤바람이다

.

.

중략

.

.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과 춤으로 가득하다.“

양자 천제 물리학 이론을

건강 사교댄스에 써먹는 60대 아줌마들!

이미 절반은 새의 종족이 되어!     


「춤은 우주의 떨림」 중에서          


장인수 시인의 우주적인 상상력은 양자역학에서 발견한 입자의 파동으로 연결된다. 한 마디로 세상은 온통 파동 즉 떨림이고 춤이다. 이 세상은 춤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내 옷은 아내에게 엄청 혼난다

막걸리 얼룩이 묻었다고 된통 혼났고

분필과 사인펜 자국이 베었다고 혼났다

빨래를 개면서

패대기치듯 빨래를 혼내곤 했다

도대체 어디서 슬픔과 외로움을 잔뜩 묻혀 왔냐고

술집 알바 투잡을 뛰고 왔냐며 웃에게 핀잔을 퍼부었다

아내에게 짜장 혼나는 내 옷이 불쌍하다

웃장에 걸린 반팔 티셔츠가

허름한 내 육신을 빌려 입고 집을 나선다

어울림과 맵시를 걸친 듯 만 듯

내 몸은 점점 늙어가는데

옷이여, 나의 까칠한 성격을

폼나게 입고 다니느라 고생했겠지

내 육신이 점점 볼품 없어지고

이제는 허리 협착증으로 끙끙거리는 나를 껴입고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걸어다녔겠지

넘치는 역마살과 외로운 중년을 탕진하고 있는 육신

떨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린 남방의 단추

오늘도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데

”칠칠 맞게 한두 살 먹는 어린애야?“

”질질 흘렸잖아! 파키슨병 걸린 노인네야?“

어린애였다가 갑자기 노인이 되는

신기한 내 옷아, 너는 왜 늘 혼나고 사니?

아내의 잔소리가 백색 소음이라도 되는 거니?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본문    


아내에게 혼이 나는 주체는 화자의 옷이다. 그러니까 옷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몸뚱어리인 동시에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관념이며 허물이다. 그 허물을 입고 세상 여기저기를 아이처럼 쏘 다니느라 때론 막걸리 얼룩, 분필 자국, 싸인펜 자국, 슬픔과 외로움 더 나아가서는 늙어가는 힘없고 병든 모습까지 다 담겨 있다. 이것이 세상이 나의 몸뚱어리에 부여한 시간이다. 세상에서의 시간에서 자유롭게 살다 들어온 내 형상은 늘 아내에게 혼구녕이 나는 자아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아내의 잔소리가 하나도 싫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장인수 시인의 시는 낙타를 벗고, 사자를 벗고, 어린아이의 경지에 올라서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그럴듯하게 멋있게 쓰려는 어설픈 말장난을 다 벗어던진 채 알몸의 시를 보여준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섹스가 되고 알몸이 되고 똥이 된다. 그래서 사자처럼 타자의 시선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내가 느낀 대로 어린아이처럼 자유로운 놀이를 즐길 뿐이다.        

   

불을 굽는 인생은

불쏘시게처럼 살다 가는 것

중년을 건너는 것은 장작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

마른 등걸도

제 육신을 점등하는 모닥불이 된다

정신도 일렁이는 화농이 되는 것

섹스도 모닥불처럼 일렁이는 것이지만

소멸의 따스함에 닿는 것

잉걸불을 뜨는 것

곁을 주고, 등을 쬐다가

불빛과 함께 글썽이는 것

잘 익은 술처럼

장작은 스스로 출렁이며 따는 것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지만

솔로 캠핑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해

씨앙씨앙 사르며 스러지는 것     


「화부가 되어」 전문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열정이다. 그 열정은 열역학제2법칙 엔트로피 원리에 의해 종국에는 ”소멸의 따스함에 닿는“ 과정 즉 영원히 우주로 돌아가는 여정일 뿐이다. 까불까불 놀고 있는 아이처럼 편하게 읽히는 시속에 깨달음의 본질과 우주의 속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집이다. 시인을 시를 쓸 뿐이고 독자는 자기의 깊이에 따라 시를 읽을 뿐이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시의 깊이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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