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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2. 2022

 현대판 맹모삼천지교?

성년의 날에 딸에게 준 선물...

고사에 나오는 맹모삼천지교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는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잠시 그 유래를 살펴보면 맹자가 어렸을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자 어머니 장(仉) 씨는 수절을 했다. 묘지 근처에서 살았는데, 맹자는 장사를 지내는 일이나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우는 것을 흉내 냈다. 어머니는 “이곳은 아이를 살게 할 곳이 못 되는구나.”라고 말하고 그곳을 떠나 시장 근처 도살장이 가까운 곳에 집을 정했다.


맹자는 장사하는 것과 도살하는 일을 흉내 냈다. 어머니는 또 “이곳 역시 아이를 살게 할 곳이 못 되는구나.”라고 말하고 이어 학교 옆으로 이사를 했다. 매월 초하루가 되면 관원들이 문묘에 들어와 예를 행하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를 행했다. 맹자는 그것을 보고 일일이 익히고 기억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은 정말 아이를 살게 할 만한 곳이구나.”라고 말하고 드디어 그곳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내가 내 딸에게 전하고 싶은 교육은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뜻에서 맹모삼천지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딸이 스무 살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보통의 부모들은 딸이 스무 살이 되면 성년의 날이다 뭐다 해서 장미꽃과 립스틱을 사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딸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술부터 가르쳐 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되었다.




“엄마!”


“왜?”


“왜 엄마는 나한테 술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다른 엄마들은 술 늦게 배웠으면 하던데? “


“응

술을 못 마시는 것과 마실 줄 아는데 안 마시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못 마시는 것은 정말로 못 마시기 때문에 한번 잘못 마셨을 때 네 의지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마실 줄 아는데 안 마시는 것은 내 의지대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이야 “


“엄마 말이 좀 어렵긴 한데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그러면 엄마가 술을 잘 못 마셔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경험이 있는 거야? “


사실 나는 워낙 시골 깡촌에서 자라다 보니 은연중에 '여자가 무슨 술을 마셔'라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나 또한 워낙 보수적인 성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여자가 무슨 술을 마셔'라는 분위기에 동조하는 환경에서 이십 대를 맞았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여자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응, 좀 그런 부분이 있었지”


“뭔데?”


우리 문학사에서 안개에 부여됐던 상징성만큼이나 내 인생에서도 안개는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시작은 친구 신혼 집들이에 갔다가 맞닥뜨린 안갯속에서 맞잡은 손이 꼬이기 시작한 운명의 단초였다.


집들이에 다녀온 다음 첫 주말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들어갈 때 만 해도 맑은 날씨였는데 그사이에 비가 내리다니 날씨가 참으로 변덕스러웠다.


내가 우산이 없어서 난감해하는 그 순간에 그가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내 펼쳐 들었다. 하나의 우산을 연인과 같이 쓰고 나란히 걷고 싶었던 것이 내가 스물다섯 살까지 꿈꿔왔던 로망이었다. 그 순간 내 눈에 콩깍지가 끼더니 이 사람은 역시 내 인생의 든든한 우산이 되어줄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그날 우리는 독서실 문 닫는 시간까지 거리를 헤맸다.  거기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오늘 오빠가 해외 출장을 가서 오빠 방이 비었어요.

어차피 독서실에 들어갈 수 없게 됐으니 오늘은 오빠 방에서 편하게 주무시고 가세요”     


그렇게 나는 내 방에서 그는 오빠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각각 꿈나라로 향했 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새벽 4시쯤 되었던 것 같다. 갑자기 오빠 방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나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오빠 방을 향해 소리쳤다.     


“저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설핏 잠이 들려는 순간에 다시 오빠 방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무슨 일이 나도 큰일이 난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 발로 오빠 방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에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그와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한 두어 시간 동안 저항하다 보니 둘 다 파김치가 됐다.


당시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될 동안 나이만 먹었지 성에 대한 상식은 거의 백지 수준이었다.  워낙 성에 문외한이었던 터라 힘이 다 빠져서 저항을 포기했는데 왜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이 사람 혹시 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초등학생보다 못한 발상을 한 것이다. 그 또한 몸싸움에 지쳐서 탈진된 상태였는데 성에 무지몽매했던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으니 참 우스운 노릇이다. 그리고 그날의 비명이 본래 그의 잠버릇이라는 것을 나중에 함께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날은 아무 일이  없었지만 그렇게 몸싸움을 격렬하게 했으니 이젠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또 한편으론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혹 이 사람 남자 구실 못하는 사람 아니여?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 궁금증을 해결한 방법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밤을 보내봐야 하는데 혼전에 남자와 같이 밤은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순식간에 지난 일들이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딸이 엄마의 사연이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크리스마스에 결혼한 엄마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아빠를 만났다고 했잖아. 그리고 아빠를 서너 번 더 만나고 나서 밸런타인데이가 돌아왔어. 엄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초콜릿 바구니 이런 것도 만들 줄 몰랐는데 백화점에 다니는 이모가 자기 남자 친구 것을 만들면서 하나 더 만들었다고 엄마한테 갔다 줬어”


“그래서, 그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아빠한테 갔던 거야?”


“응 그랬어. 엄마는 그 초콜릿 바구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잘 몰랐어.

나중에 아빠 자취방에 가서 풀어보니까 과실주 한 병도 같이 들어 있었어?


“그래서 그날 아빠랑 과실주를 먹었어?”


“응, 그날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실주라는 것을 먹어봤어.

쓰지도 않고 달달했어. 그래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저녁때가 되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집에 가겠다고 했지 “


“그런데?”


“그런데 네 아빠가 그러더라. 조금 있으면 동생이 곧 들어올 거니까

동생 오면 보고 가라고? “


“그게 삼촌이었어?”


“응”


“그런데 그날 술 먹고 무슨 일이 있었어?”


“응, 그날 니 삼촌을 기다리다가 니 아버지가 가지고 온 과실주 한 병을 더 마신 거야

그리고 그날 니 오빠 만들었어 “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이


“헉!~ 대박

아빠가 놓은 덫에 엄마가 넘어간 거네? “


“엄마는 그냥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네 오빠가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이고

또 엄마가 네 아빠와 결혼할 운명이었던 거지“


그랬다. 사실 나는 그때 그 서너 번 만난 남자와 결혼까지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갑자기 내 주변인들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다 떠난 버린 쓸쓸함에 누구라도 만나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당시 내 마음을 더 크게 지배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원에 진학해서 내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술부터 가르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네 오빠를 낳은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술 때문에 계획에 없었던 방향으로 엄마 인생이 흘러갔으니까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뜻이지 “


딸에게 술을 가르쳐 놨더니 좋은 점이 참 많다. 특별히 술친구를 밖에서 찾지 않아도 돼서 조금 쓸쓸하거나 우울할 땐 둘이서 맥주 한 캔씩 마시면서 우울한 기분을 툭툭 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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