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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3. 2022

콘돔은 필수 임신은 선택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내 머리는 못 깎아도 남의 머리는 잘 깎아주는 오지랖 해결사였다. 한 번은 직장 후배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언니! 저 사실은 임신한 것 같아요”     


대충 누구 아이라고 짐작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그 직원의 나이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진짜? 어쩌다가?


 누구 앤데? 내가 생각하는 그 남자 맞어?”     


“네 맞어요 언니”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지우려고요. 남자 친구가 이번에 군대에 가요.

남자 친구랑 결혼할 생각이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말인데요. 언니가 저랑 병원에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아버지를 닮았던 나는 어떻게라도 후배를 돕고 싶은 마음에 난생처음으로 후배 동료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리고 금방 수술대에서 내려온 후배를 그대로 집에 들여보낼 수가 없어서 내 집에 데려다 미역국을 끓여 먹이며 몸조리를 시켰다. 그리고 그 후배는 나중에 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고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은 시골 친구 모임에 간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을 잡았었다.     


과실주를 먹고 난 이후의 첫날밤에 자기 오빠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딸이 그 상황이 궁금했는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한테 콘돔 하라고 하지 그랬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

그리고 그땐 콘돔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그랬구나

나는 만약에 남자 친구가 콘돔 안 쓰면

그냥  발로 차 버릴 거야"


"당연하지 니 몸은 너 스스로 지키는 거야. 그리고 니 표현대로 몸의 대화는 서로 사랑해서 두 사람 간 합의하에 해야 되는 거야~ 그건 몸과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이니까. 그리고 너 스스로 너 자신을 소중하게 다룰 때 상대방도 너를 귀하게 대접하는 거야~  꼭 명심해?"


"응 알았어 엄마!

 아빠랑 자고 오빠가 생겼다고 했잖아.

그때 아빠는 뭐라고 했어?"


"설마 하는 마음에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 체크해 봤더니 엄마 예상이 맞았어.

그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거야~

그때까지 엄마의 의식을 지배하던 생각은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을 치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거든

그래서 혼전에는 절대 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있었는데 혼전 임신을 확인하고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우선 니 아빠한테 얘기했어"


"뭐라고 얘기했어?"


그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내 생각을 정리한 뒤였다. 아기를 지우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지 남자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아기를 지우라고 하면 확 이 남자를 죽여 버리고 나도 죽겠다는 다짐을 한 터였다. 물론 겉으로는 엄청 쿨한 척 이야기를 이어갔다.


“니 아빠한테 그랬어. 저 지금부터 제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니 아빠가 뭔데요?하고 묻더라”     


“그래서 엄마가 그랬지

저는 구질구질하게 남자 발목이나 잡는 그런 여자는 아니예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저 임신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어”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지 나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우면서


"그래서 아빠가 뭐라고 했는데 엄마?"


"니 아빠가 그러더라

'사실은 제가 얼마 전에 태몽을 꿨어요.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꿈이 태몽이 맞았네요. 진짜 신기해요. 내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이렇게 말하는데 그제야 안심이 되더라구"


그랬다. 나는 그렇게 겨우 만난 지 두어 달만에  첫 관계에서 생긴 아기를 낳기로 그와 합의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혼전 임신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대학원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방통대를 졸업한 후 막 대학원에 원서를 쓰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직장에 다니면서 옷 한 벌 안 사 입고, 화장품 하나 안 사 바르면서 열심히 적금을 들었던 것인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더구나 그는 취준생인 동생과 원룸에 사는 공시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가 어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태산이었다. 또 직장에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최대한 직장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대학원 등록금으로 모아 놓은 적금을 헐어서 전셋집을 마련하겠다는 의사를 그를 통해 예비 시부모님께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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