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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3. 2022

곽경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 『사랑에 대한 반성

200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곽경효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사랑에 대한 반성』을 시인동네에서 출간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는 총 6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사랑에 대한 반성’이다. 하지만 눈 밝은 독자라면 반성이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쉼표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이 우주 안의 모든 현상들은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면서 생의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곽경효 시인 또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마음을 반성을 통해 비워내는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곽경효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억들./이제 내려놓는다./한때, 지치고 피곤한 내 삶을 뜨겁게 밝혀 주었으니./마당 한쪽의 목련나무 가지 끝에 말간 햇살이 내려앉는다”고 적고 있다.


사랑은 우리 삶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생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시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고 말한다. 또 그와 동시에 “이제 내려 놓는다”는 말로 그동안의 열정들을 잠시 식히고 있다.


이번 시집의 가장 첫 페이지에 실린 「미몽」이라는 시에서는


“꿈을 깨고 나서 알았다//지구의 모든 시간이 하루라는 것/사랑은 먼지보다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당신을 꿈꾼 적이 있다/성긴 그물의 어느 코에도 걸리지 않는/바람 같은 당신을//밤하늘을 올려다본다/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초승달 혼자 조용히 건너간다//여전히 내 잠 속에는/당신이 총총하다” -「미몽」 전문


결국 시인이 인식하는 사랑은 일장춘몽이다. 우리는 꿈을 꾸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수많은 꿈 중에서도 춘몽은 생을 더 아름답고 활기차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난 이상 죽을 때 까지 춘몽 즉 사랑을 포기하고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즉 이번 시집에 녹아있는 사랑에 대한 사유는 반성하고 비워낸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그 진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이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

그리운 이름 하나쯤 지워져도 좋겠다

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파했던 날들을

하마터면 사랑이라 부를 뻔했다

사랑의 무게가 이리 가벼운 것을

눈물 흘리며 견딘 시간이

잠시 지나가는 한 줄기 소나기였음을

겨울처럼 차갑지만 가끔은 따뜻한 사랑이여

다시는 내게 오지 말기를

아름답고 찬란한 그 폐허,

이제는 견딜 수 없으니

― 「사랑에 대한 반성」 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사랑에 대한 반성」은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그리운 이름 하나쯤 지워져도 좋겠다/상처를 들여다보며 아파했던 날들을/하마터면 사랑이라 부를 뻔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는 사랑했던 시간들에 대한 강한 부정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어지는 연에서 “겨울처럼 차갑지만 가끔은 따뜻한 사랑이여/다시는 내게 오지 말기를//아름답고 찬란한 그 폐허,/ 이제는 견딜 수 없으니” 다시는 사랑이여 나에게 오지 말라고 스스로 사랑에 대한 옷고름을 동여맨다.


“불면의 밤을 견디는 동안/어느 사이 당신의 이름은 맹목(盲目)이 되었다//생각해보니/너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너라는 이름은」 부분


사랑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래서 맹목적이다. 시인은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나르시즘으로 확장한다. 그동안 타자인 ‘너’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타자가 된 나’를 사랑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유는 「문 밖에서」 라는 시에서 한층 더 구체화된다.


현관문을 열다 말고 멈칫거린다

반쯤 열린 문 안쪽 세상이 낯설다

가만히 집 안을 들여다본다

닫혀 있던 공간이 만들어내는 내밀한 무늬들이

수런거리며 일어선다

익숙한 일상의 뒷모습이 또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으니

보이는 것을 향해 손을 내밀었는데

허공이 먼저 다가온다

익숙하다는 것은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것

덫에 걸린 짐승처럼

마음이 자꾸만 바스락거린다


내 속의 오래된 나를 돌아본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가

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아직 그쪽의 풍경은 괜찮은가

문을 열다 말고

문 밖에서 잠시 또 다른 세상과 겨루고 있는 사이

또 누군가 나를 열어놓고 사라진다

― 「문 밖에서」 전문


“현관문을 열다 말고 멈칫거린다/반쯤 열린 문 안쪽 세상이 낯설다/가만히 집 안을 들여다본다”에서 볼 수 있듯이 밖으로만 분주했던 마음을 안으로 다시 거둬들이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타자는 결국 타자화된 ‘나’에 대한 사랑이다.


“내 속의 오래된 나를 돌아본다/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가/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아직 그쪽의 풍경은 괜찮은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안의 ‘나’가 열망에 들떠 밖으로 분주했던 타자화된 ‘나’ 향해 “아직 괜찮냐”고 물어오면서 아슬아슬한 안팎의 균형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연에서 “문을 열다 말고/문 밖에서 잠시 또 다른 세상과 겨루고 있는 사이/또 누군가 나를 열어놓고 사라진다” 는 진술을 통해 안으로 향하는 ‘나’와 또다시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타자화된 ‘나’의 끊임없는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문 밖에서」 라는 시속에 이번 시집 『사랑에 대한 반성』에 녹아있는 삶의 갈등 구조가 함축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결국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나’가 있는 것처럼 타자화된 나에 대한 사랑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잉여 쾌락이라는 개념으로 후기산업사회를 분석한 지젝의 이론을 분석한 권택영 박사는 『잉여 쾌락의 시대:지젝이 본 후기산업사회』라는 책에서 ‘잉여’를 끊임없는 반복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곽경효 시인은 『사랑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잉여’로서의 사랑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초상을 이번 시집 속에 녹여내고 있다.


‘끝내 채워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결핍과 ‘가득 찬다’는 충만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사랑’은 ‘나’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인 동시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또다른 생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곽경효 시인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을 『사랑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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