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사유로서의 시 쓰기, ‘왜 나는 여기에 존재하는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원을 향한 존재 사유에 천착하게 된다. 나동환 시인도 이번 시집에서 시원에 대한 사유에서 촉발된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은 ‘왜 나는 여기에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님의 사랑의 결정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를 하이데거는 인간의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시원 찾기
산등의 나무들이 발을 구르네
땅속 어딘가 공간의 울림을 듣고 있는지 혀끝으로 컴컴한 입천장을 더듬으며 목젖까지 들어가는 신비
어느 날 캄브리아 말기의 정지된 시간이 석회암으로 굳어버린 미완의 공간이네 거뭇거뭇 우수리박쥐처럼 달라붙는 의미가 착시현상으로 태고의 신비한 암각화 같네
작은 계곡마다 폭포수 원시의 음을 내고 알몸의 세월 위를 철철 흐르네
어디서 생성된 것인가
새벽길처럼 트인 어둠 저쪽 좁다란 적막의 통로로 끌려가는 물줄기 어디로 가서 소멸되는 것인가
언제였을까 나는 뿌연 원시의 음 한 모금 마시고 공간의 신비에 싸여 퇴화한 외눈박이로 동굴 밖을 빠져나온 연한 핏덩이였을지도 모르네
산신당 앞 엄나무 가시에 찔린 흰 구름장 산산이 찢어지는 것도 볼 수 없는 나는 그저 공간의 신비에 촉촉이 젖은 동굴 밖의 한 덩이 원초적 생명체였을 것이네
-「공간의 신비」 전문
제목이 ‘공간의 신비’다. 공간은 존재의 빛보다 먼저 있었고, 현전하고 부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공간의 신비’에 제시된 자궁 또한 존재 인식의 근거인 동시에 우주의 신비를 구현하는 기본 틀로 제시된다.
“혀끝으로 컴컴한 입천장을 더듬으며 목젖까지 들어가는 신비” 입천장을 더듬어 목젖까지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목젖에서 탯줄의 순간을 지나 처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던 공간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어지는 “정지된 시간”, “석회암”, “미완의 공간”, “태고의 신비한 암각화”, “계곡”, “폭포수”, “원시의 음”, “알몸의 세월” 등은 수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시 “어디서 생성된 것인가”라는 진술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였을까 나는 뿌연 원시의 음 한 모금 마시고 공간의 신비에 싸여 퇴화한 외눈박이로 동굴 밖을 빠져나온 연한 핏덩이였을지도 모르네//산신당 앞 엄나무 가시에 찔린 흰 구름장 산산이 찢어지는 것도 볼 수 없는 나는 그저 공간의 신비에 촉촉이 젖은 동굴 밖의 한 덩이 원초적 생명체였을 것이네”
나는 그 어느 시원의 공간에서 수정되어 생명의 신비에 쌓여 있다가 퇴화된 외눈박이가 되어 자궁 밖으로 피투된 핏덩이였다는 자각이다. 핏덩이 상태로 자궁 밖으로 내던져진 순간 한쪽 눈을 잃어버린 외눈박이가 된 나는 어미의 자궁을 찢고 나오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채 세상에 던져졌다는 피투성을 자각하여 존재의 시원을 찾아간다.
사랑에서 촉발된 존재의 이해
나동환 시인의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 이해의 근원을 생명 잉태의 순간으로 설정한 부분이다. 이번 시집은 존재 이해가 존재의 빛에서 태동하는 것처럼 생명 잉태의 전제 조건으로 사랑이 등장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집의 흐름은 사랑에 대한 이해와 기다림, 그리움을 거쳐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구조로 엮여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 속에 드러난 사랑은 존재 실체에 대한 도정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랑 개념과 차별된다.
“너는 둥근 산 그림자 서너 개쯤 드리운 블랙홀 같은 검은 눈동자다 어디선가 몰려드는 물고기 떼처럼 봄빛이 봄의 등 비늘로 떠서 블랙홀 같은 너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든다” -「봄빛 강물」부분. 내가 블랙홀 같은 너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든다는 것으로 보아 사랑 즉 존재 이해의 빛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시편들 속에 드러난 “진실 아닌 사랑의 변형으로 그녀의 몸을 열고 닫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칼잎 막사국 그녀」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이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존재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지 왜곡된 시선으로는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내가 그 정체를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답니다”-「브루그만시아-천사의 나팔」 부분. 내가 존재의 실체를 알아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존재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유에 접근해 있다.
“저 노을빛 붉게 물든 수만 권의 첩첩 쌓인 서책/언제 다 꺼내어 읽을 거나//나를/궁리 깊은 저녁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구나 -「채석강 소묘」 부분. ”수만 권의 첩첩 쌓인 서책“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실체를 알기까지 언제 다 저 많은 책들을 다 꺼내어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진술이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존재의 실체를 알려고 하는 나에게 쉬이 제 속을 보여주지 않는 바다 속으로 빠져 된다. 이처럼 존재의 빛 속에 숨어 있는 실체 즉 사랑을 찾아 나선 사유의 흔적들이 시편들 속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너는 수시로 나의 마음속을 들락거리면서 꼬리만 내놓고 흔들며 나의 마음 뒤쪽에 숨어버리는 귀여운 고양이였다
그 보이지 않는 꼬리 끝 숨겨진 실체가 궁금해
나는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처럼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커다란 허구적 가정으로 네 쪽을 향해 심한 착시증 같은 신음소리를 보냈지
제발 너의 닫힌 실체의 문을 내 쪽을 향해 활짝 열어줘
나는 어떠한 의미부여도 너한테 불리하지 않게 숨겨진 실체의 비밀을 지켜줄 거야
진실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의 진실한 실체를 그대로 밝히는 일뿐
이제 더 이상 모호한 착시는 하기 싫어
고양이의 흔들리는 꼬리만 보고 실체 없는 너와 나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상상하는 것조차 지루한 일이지
나는 귀여운 고양이의 꼬리 끝 숨겨진 너의 진실한 사랑의 실체를 믿고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의 기억력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진원지가 바로 너였기 때문이지
「숨겨진 사랑의 실체」 전문
「숨겨진 사랑의 실체」에서 보듯이 시적 화자가 찾고자 하는 사랑은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존재의 빛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나의 마음 뒤쪽에 숨어버리는 귀여운 고양이”로 묘사되는가 하면 “나는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처럼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커다란 허구적 가정으로 네 쪽을 향해 심한 착시증 같은 신음소리를 보냈지”라는 진술을 통해 처음부터 존재의 실체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너를 찾아 나섰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제발 너의 닫힌 실체의 문을 내 쪽을 향해 활짝 열어줘/나는 어떠한 의미부여도 너한테 불리하지 않게 숨겨진 실체의 비밀을 지켜줄 거야”라는 대목에 와서는 존재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제발 나에게 존재의 실체를 보여 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그러면서 너의 실체에 대해서 함부로 규정하지 않을 것이고 너의 실체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제 더 이상 모호한 착시는 하기 싫어/고양이의 흔들리는 꼬리만 보고 실체 없는 너와 나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상상하는 것조차 지루한 일이지” 사랑의 실체 찾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존재 찾기의 기다림을 넘어 비움과 성찰로
나동환 시인의 존재 찾기에 대한 간절함은 여러 시편들 속에서 발견된다. 실체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은 “가슴 같은 바다가 진실한 강물 사랑을 품고 스미는 일만 남았다” 「강물 무도회」부분, “그것은 은밀한 욕정보다는 먼발치서 바라다보아야 하는 지고한 사랑의 전율 같은 것이기에” 「하얀 목련」부분, “바람은 가속으로 단풍을 몰고 산 빛을 그리움으로 활활 태우네요” -「가을 산빛」부분, “하늘 푸른 창문은 언제 열릴 것인지/밤 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언제 볼 수 있을는지 신의 청명한 응답 교신은 언제 보낼 것인지” -「장마」부분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존재의 실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간절함은 다시금 ‘나’를 비워야 만날 수 있다는 성찰의 단계로 확장된다.
“존재의 사유 산바람에 날리고/빈 손바닥 펴 무아를 떠받드니/짙은 솔 내음 풍경을 찌르고 영혼을 울린다” -「법당」부분
결국 실체를 찾는다는 그 생각마저 다 날려 버리고 무아(無我)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맨 존재 실체가 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빈 손바닥 펴 무아를 떠 받으니/짙은 솔 내음 풍경을 찌르고 영혼을 울린다”는 사유가 가능해진다.
꽃 속에 숨은 이가 있다
누군가 꽃술의 원점에서
거대한 9개의 불 바퀴*를 돌리듯
중략
저 꽃술의 원점에서
숨 가쁘게 타전되는
문자언어의 파편들
그 해독할 수 없는 천상의 타전을
엄숙히 접수하는 고요한 아침이여
짙은 안개 속을 뚫고
바람결에 스쳐오는 신의 침묵처럼
그의 입김이 향기롭다
*단테의『신곡』(천국편)에 나오는 하느님의 빛을 둘러싸고 도는 천사들의 불 바퀴
-「그의 입김」 부분
“단테의『신곡』(천국편)에 나오는 하느님의 빛은 다름 아닌 존재의 빛으로 해석된다. 「그의 입김」은 존재 실체 속에 숨겨져 있던 향기는 즉 존재의 빛이다. 그리고 “저 꽃술의 원점에서/숨 가쁘게 타전되는/문자 언어의 파편들”이란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형이상학의 산물인 문자 언어가 파편화된 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천상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념이 사라진 후에만 “그 해독할 수 없는 천상의 타전을/엄숙히 접수하는 고요한 아침” 즉 실체 즉 존재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존재의 실체가 펼쳐지는 자리
우리는 이미 존재의 빛 안에 있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존재의 빛은 끊임없이 우리를 존재의 진리에 이르는 길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존재의 빛에 순응하는 방식은 ‘나’라는 아상을 버리고 내 판단을 정지한 상태에서 우주론적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뿌연 겨울 달 하나 차가운 밤하늘에 비스듬히 걸어놓았습니다. 물고기들은 까만 해수면에 비늘 겉옷을 벗어 던져 놓은 채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들러 가고 잠의 깊이만큼이나 비늘 겉옷은 짙은 어둠 속으로 분해되어 수많은 별들처럼 밤하늘에 박히고 잠든 물고기들의 알몸에는 뿌연 겨울 달빛이 비늘 겉옷처럼 어립니다. 까만 해수면 경계의 끝점에서는 생성과 소멸의 거룩한 신의 섭리가 별빛처럼 고요히 아른거립니다. 나는 어느덧 어슴푸레한 겨울 바다 관찰자가 됩니다. 겨울 바다는 내 존재의 가냘픈 가슴속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성과 소멸의 파도를 몰고 옵니다.
-「나동환 시인의 시인의 말」 전문
“물고기들은 까만 해수면에 비늘 겉옷을 벗어 던져 놓은 채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들러 가고”에서 알 수 있듯이 물고기가 잠들러 갔다는 것은 공간 이동을 통해서 물고기의 본질적 속성이 전환됨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여기서 물고기의 속성이 변환된 사건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먼저 물고기의 비늘 겉옷이 어둠 속에서 분해되어 밤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이동해서 수많은 별들처럼 반짝인다. 그런데 비늘이 어둠 속에서 분해되어 밤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는“물고기의 잠의 깊이 만큼”이라는 전제 조건이 성립된다. 잠의 깊이는 죽음을 통한 정체성의 변화 혹은 관념으로부터의 탈피일 수도 있다. 시적 정황으로 봤을 때 물고기는 비늘에서 분리되는 순간에 본래 있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존재로 발현 된다. 이 엄청난 일이 일어난 곳이 바로 “까만 해수면 경계의 끝점”이다. 경계의 끝점은 모든 이성적 분별이 사라져서 우주적 합일을 통한 사랑(존재)의 발현 지점이다. 즉 모든 분별이 사라진 곳에서 “생성과 소멸의 거룩한 신의 섭리”가 발현된다.
이런 존재의 신비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어느덧 어슴푸레한 겨울 바다의 관찰자”다. ‘나’는 전혀 물고기의 변화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관찰자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주목할 것은 관찰자가 있는 공간이다. “내 존재의 가냘픈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성과 소멸의 파도를 몰고 오는 겨울 바다는 나의 심연이다. 앞에서 인용한 ‘공간의 신비’가 피투성의 세계를 보여줬다면 ‘겨울 바다 관찰자’는 물고기로 비유된 정자가 존재의 빛에 이끌려 바다(자궁)에서 착상되는 순간에 대한 관찰이다. 객관적 관찰자인 ‘나’는 착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이처럼 나동환 시인은 사랑을 존재 실체로 보고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유추하는 작업을 통해 ‘나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존재 사유에 천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