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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5. 2022

눈물로 시작된 결혼생활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딸이 또 물었다.


“엄마 그럼 결혼식은 오빠 낳고 한 거야?”


“응 그랬어. 오빠를 11월에 낳고 그다음 해 1월에 결혼식을 했어”


그랬었다.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양가 어르신들이 상견례를 했다.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나눠 가진 자리인 만큼 엄청 어려운 자리가 상견례 자리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예비 시어머니께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애는 본래 공부밖에 모르는 앤 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될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 일을 저질렀으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엄마가


“뭐 공부로 치면 우리 애도 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애는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게 일을 저질렀다니요. 일은 여자 혼자 저지른답니까? 둘이 함께 저질렀지...”


예비 시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잘난 당신 딸이 사고뭉치 취급을 받나 싶으셨던지 꾹꾹 눌러 담아놨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우셨다.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같이 울다 보니 상견례 자리가 눈물바다가 됐다. 원인 제공을 한 예비 시어머니도 어쩔 줄 몰라하셨다.


“에고 할머니가 너무 하셨네. 알고 보면 아빠가 만든 상황인데 왜 엄마 탓을 하셨대?”


“할머니 입장에서는 니 아빠가 그동안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란 엄친아였으니까.

 자기 자식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하셨어“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날짜를 잡고 결혼 예물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역시나 모든 예물 결정권은 손위 형님과 시아주버니한테 위임됐다. 그렇게 손위 형님과 시아주버니 될 사람의 안내를 받아 금은방에 도착했다. 손위 형님이


“동서, 우리는 18K 루비 세트 해 줄 거야. 그러니까 동서는 도련님한테 다이아 반지는 해 줘야지?”


속으로 다이아 반지 해 주지도 않고 왜 나한테만 하라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다이아반지 해 주겠다고 골라보라고 했다. 사실 모든 결혼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내 주머니에서 나왔기 때문에 결정도 내가 했다. 하지만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난 남자한테 시집을 간다고 다이아반지까지 해 내라는 것인지 하는 마음이 스쳐갔다.


그런데 상견례에서 불거진 사돈 간 감정 대립은 결혼 준비과정에서 또 불거졌다. 뭐 워낙이 없는 돈에 치르는 결혼식이다 보니 드레스까지 무료로 대여해주는 농협예식장을 선택했다. 드레스는 농협에 있는 것 중에서 그냥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입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신부 한복을 해야 하는데 시어머니의 지령이 떨어졌다.


“얘 신부 한복은 위아래 분홍색으로 맞춰라. 니 시아버지 환갑 때 니 시누이랑 형님이 분홍색으로 했으니까 너도 분홍색으로 통일해라”


나는 별생각 없이 시어머니의 생각을 친정엄마한테 전달했다. 그랬더니 친정엄마 하시는 말씀이


“무슨 신부 한복을 위아래 분홍색으로 하는 집이 어딨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네. 본래 신부 한복은 녹색 저고리에 빨강 치마로 하는 겨. 결혼식장도 하나도 맘에 드는 것이 없는데 신부 한복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집이 어딨다냐? 나는 내 딸한테 신부 한복 입혀서 시집보낼 거니까 그리 말씀드려라”


결국 두 어머니 사이에서 나만 난처해진 상황이었다. 워낙이 혼전 임신이라 한 자락 접고 시작하는 결혼이지만 친정 엄마 마음을 이렇게 후벼 파면서까지 이 결혼을 해야 되나 싶었다. 나도 알고 보면 우리 집에서는 엄청 귀한 딸인데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눈에서 눈물이 주르룩 흘러내렸다.


한복 사건은 분홍색 치마저고리에 옷고름만 녹색으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다. 엄마는 내내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시댁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11월 2일에 아기를 낳고 퉁퉁 불어서 흘러내리는 젖을 기저귀로 동여맨 채 다음 해 1월 5일 폭설이 내리는 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결혼식날 신부 화장에 스프레이 범벅이 된 채로 시댁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찬물에 머리를 감고 아침밥을 지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시절이었다. 나중에 신부 측 하객을 태운 버스 안에서 친정아버지가 엄청 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은 이십여 년이 지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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