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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6. 2022

바람이 불어오던 날

천기를 누설하다     


지천명 지나 마주한 내 운명은

어둠을 밝히는 한 자루 촛불이라

일찍이 불장난만 조심했으면

만사형통할 팔자였던 거라     

초년에 얇은 심지에서 시작된 불이

알콜에 옮겨 붙어

청춘을 탕진하고 중년에 들어보니

소신공양에 초간삼간 들어 먹었는디     

불꽃 심지로 쓴 자서전과

촛농은 다 어디에 가서 굳었을까?     

돌아오는 길 또한 어둡고 험난하여

잔 불꽃들이

남긴 화상 자국에도

발효꽃이 다글다글 피었으니     

남은 것은 내 생의 경력 한 줄과

무럭무럭 착하게 자라준

본품보다 더 훌륭한 마일리지뿐이더라     

2030 삼포세대에

재취업 시장에 이력서를 넣어 봐도

임금체불에 파산 기업들뿐이라     

말년에는 스스로 발복하여

뚜벅뚜벅 개척해 온 어두운 인생길에

태풍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LED 등불 하나 켜 놓으리니          



2021년 다층 여름호         



특별히 사주나 운명 같은 것을 추종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해가 바뀔 때마다 재미 삼아 사주 앱에서 신년운세를 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신년 운세 보는 것을 알았는지 딸이 앱 하나를 알려줬다.


“엄마! 엄마!”


“왜?”


“내가 인강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점신이 아주 잘 맞는데... 우리 그거 깔아보자”


그렇게 딸이 가르쳐준 앱을 휴대폰에 깔아놓고 가끔씩 오늘의 운세나 신년운세를 보곤 했다. 그러다가 오십 넘은 어느 날, 사주가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사주는 그냥 통계라고 알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사주 관련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내 포스팅에 헌 선생님의 『명리』라는 책을 추천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날 바로 『명리』라는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유튜브에서 강헌 선생님의 강의를 찾아들었다. 그렇게 사주 원국에 나와 있는 정묘 일주 여자에 대한 다른 명리학 강의들을 찾아 들으면서 내 운명을 분석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그중에서 내 마음에 꽂히는 이야기는 딱 한 가지였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엄마들 중에 혹 정묘 일주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딸이 있으면 결혼 전에 남자 단속을 잘 시켜야 합니다.

이 사주는 혼전 임신을 하면 그때부터 힘들어지는 사주야... “


딱 내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팬티 한 번 잘못 벗었다가는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이는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운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풍부한 연애 경험을 통해 개운을 하던가 아니면 결혼 전에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진즉에 알았더라면 결혼 전에 연애를 많이 해서 내 사주를 개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가지고 태어난 사주원국을 인생의 절반을 더 살고 나서 알았으니 이 또한 운명이었으리라.


지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면 눈물의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뒤에 공무원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애 아빠가 준비했던 7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9급이라도 넉넉하게 붙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는 아기 기저귀 살 돈이 없어서 똥 묻은 천 기저귀를 들통에 삶아 널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분유 살 돈이 없어서 채식만 먹는 영양가 없는 모유를 아기한테 그만 먹여도 된다고 생각하니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뻤다.


또 그즈음에 애 아빠가 공무원 시험 전에 연구소에 다니면서 넣었던 적금 만기가 도래되어 시댁에서 천만 원을 더 보내주셔서 전세를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것만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애 아빠가 9급 공무원에 만족을 못해서 법무사 시험을 보겠다고 다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법무사 시험공부를 한다기에 뭐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응원해 줬다. 그렇게 퇴근 이후에 주말에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는 사람한테 도시락도 챙겨주고 이것저것 공부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다. 그런데 공부하러 간다고 나가서 딴짓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빠가 법무사 공부 안 하고 딴 볼일을 봤던 거야?"


"응, 엄마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아. 어느 날 꽃다발을 집에 들고 들어올 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는 그냥 직원한테 받았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


나도 참 무던한 사람이었다. 뭔가 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도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타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애 아빠가 작은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황급히 뒤로 숨겼는데 그 행동이 하도 이상해서 뒤로 감춘 것을 뺏어서 읽어보니 한마디로 연애편지였다. A4 열 장 가까이 쓴 편지에는 내가 끝까지 몰랐어야 할 내용들이 수두룩히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떤 여자 아이를 좋아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공개적으로 연애를 했다는 내용부터 대학입시로 인해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여자 아이에 대한 사랑이 마음속에서 눈덩이처럼 커져서 또 다른 여자에게 옮겨갔다는 사연 등... 애 아빠의 지난 모든 연애사를 새로운 여자한테 고백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편지를 부들부들 떨면서 다 읽어낸 후에 애 아빠가 보는 앞에서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밖으로 달려 나와 시댁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받은 시어머니는 기필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기에 다시 시댁 형님한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했다. 그 사이 애 아빠는 슬그머니 회사로 줄행랑을 치고 없었다.


"아빠 미친 거 아니야 엄마?"


"그러게 니 아빠는 뭔가 좀 특이한 사람이었어.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계속 이상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니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어. 이상 세계를 꿈꿨던 사람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사람이라고...."


하긴 처음부터 뭔가 일반인들과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통에 이 사람한테 호기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내 발등을 찍었으니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시댁 형님이 나한테 "동서 취향도 참 특이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애 아빠가 워낙 이상 속에 살던 사람이라 시댁 식구들조차 결혼은 못할 거라고 낙인찍었을 정도였으니 특이한 사상의 소유자임에는 분명했다.


애 아빠가 집에서 도망치듯 나간 뒤  혼자서 사건의 앞뒤를 맞춰본 나는 갓 돌 지난 아기를 재워놓고 집 앞 미용실에 가서 허리까지 닿는 머리를 커트로 잘라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아기를 단장해서 품에 안고 한 손에는 음료 박스를 사 들고 바로 애 아빠가 근무하는 동사무소로 찾아갔다. 민원실에서 내 신분을 밝히고 동장실을 물었다. 저쪽에서 내 모습을 확인한 애 아빠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동장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OOO씨 사모님이시라구요?"


"네에 동장님!~ 인근에 후배가 있어서 잠시 보러 왔다가 인사나 드리고 갈려고 들렀습니다."


"네에 잘 오셨습니다. 공무원 아내가 참 힘든데...."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고 동장실을 나오는 내 뒤를 따라 나온 애 아빠가 동장님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은 어디선가 날아든 돌멩이가 우리 부부의 신뢰를 와장창 깨고 달아난 후였다. 질문에 대꾸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택시 백미러에 비친 애 아빠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그 길로 대충 아기 짐을 싸 가지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 부모님은 시집간 딸이 어린 갓난아기를 데리고 갑자기 친정에 왔을 때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직감하신 것 같았다. 하도 꼬치꼬치 연유를 묻는 친정부모님한테 하는 수 없이 속사정을 털어놨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정엄마가


"너 그거 평생 간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헤어져라 괜스레 속 썩으면서 살 생각하지 말고

 니가 지놈한테 어떻게 했는데 얻다 대고 바람을 피고 지랄여..."


그때 친정부모님이 나를 말리셨으면 오히려 내가 안 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친정부모님이 그만 살라고 하니까 왠지 애 아빠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애 아빠가 휴가를 받아서 친정으로 달려와서는 부모님 앞에 무릎 끓고 빌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각서를 썼다. 나는 그 각서를 액자에 넣어 안방 한가운데에 걸어 놓는 조건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고 상대방 여자도 스물여덟 미스였다. 상대방 여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그 당시 막 출시된 누비라 승용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한마디로 세련된 여자였다. 그 세련된 여자한테 반해서 몇 번인가 데이트를 한 것 같았는데 그 여자 또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사람인 걸 보면 애 아빠 혼자 그 여자한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애 아빠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계속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첫사랑에 대한 환상이 다른 여자한테로 옮겨져서 재점화되었으니 한번 난 산불이 온전히 진화되지 않아서 계속 다른 곳으로 옮겨 붙는 양상이었다.


나하고 결혼한 이유를 묻는 내 질문에는 "이 여자랑 살면 평생 편할 것 같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말이 그날 이후로 내 가슴속에 가시로 박혔었다는 것을 그는 잘 몰랐을 것이다. 하긴 그 꼴을 당하고도 나는 끊임없이 애 아빠를 믿으려고 노력했으니 내가 애 아빠의 병을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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