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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7. 2022

죽어서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그토록 꿈꿔왔던 대학원 입시도 포기한 채 한 남자한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여자는 그래야 된다는 고리타분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루에 버스 한 대도 안 들어오는 시골 깡촌 출신의 정서적 토대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념이 고작이었다. 여자는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즈음이었다.


고향 친구가 산업체 고등학교 3학년에 공장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아기를 가졌단다. 친정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남자한테 시집을 갔다는데 딸만 내리 둘을 낳았단다. 속리산 어디쯤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못 배운 며느리라고 시집살이가 장난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을 낳았단다. 그래서 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어머니가 우리 집까지 내려오셔서는 우리 딸도 이번에 아들을 낳았다고 자랑하시며 같이 기뻐해 주셨다. 그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아들 낳았다고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애 셋을 두고 자살이라니.. 내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견디다 못해 친정엄마한테 도저히 못살겠다고 했다는데 친정어머니가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뒤 시어머니와 싸우고 농약을 먹고 병원으로 옮겨져 위세척을 했단다. 위세척을 했는데도 워낙 독한 약이라 겨우 3일을 버티다 숨을 거뒀단다. 숨  거두기 전에 친정엄마를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는 친구가 계속 맘에 걸렸다.


그 일 때문에 내 친정엄마가 완전 달라졌다. 엄마 하시는 말씀이


"나는 시집 귀신이 되라는 말은 안 하련다. 그러니 정 힘들면 그냥 엄마한테 돌아와. 나는 내 자식이 죽는 꼴은 못 본다. 위뜸 영이 엄마 넋이 나가서 맨날 울고 다니는데 내 가슴이 다 무너지더라"


그랬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먼발치에 친구 엄마 모습이 보이면 일부러 피해 다녔다. 혹시 나를 보고 친구 생각이 더 나서 가슴이 아프실까 봐 나름 배려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믿었던 남편의 배신은 못내 내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그랬음에도 마음속에서는 '그래 살면서 바람  한 번 피울 수도 있지 뭐'이런 생각이 들었다. 용서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되는 거야. 이렇게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그러는 사이 또 계획에 없는 둘째가 들어섰다.


첫 애 낳고 자연 피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들어선 둘째,  어쩜 지난 일은 다 잊고 다시 잘해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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