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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22. 2022

대양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우리의 생은 늘 불안이라는 돛단배를 타고 인생이라는 대양을 표류 중이다. 이는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내던져지는 그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다. 그리하여  우리 앞에 닥친 위기를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죽음을 향해 노를 젓고 있는 것이 유한한 삶의 항로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생의 허무주의가 큰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니체는 힘의 의지를 통해 생은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현재에 머물러 고통스러운 현재를 영원히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끝없는 자기 극복을 통해 낙타에서 사자를 거쳐 어린아이로 발전해 갈 것인가 하는 화두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니체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생의 등짐을 지고 꾸역꾸역 사막을 가고 있는 낙타에 빗대서 우리의 생을 이야기했다. 가느다란 다리 관절에 의지한 채로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온갖 짐들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생을 감당하는 것이 낙타의 삶이다. 사자는 사회가 부여한 짐을 거부하고 스스로 밀림의 왕이 되어 사는 존재를 비유한 말이다. 사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항상 자기보다 더 힘센 놈들을 이겨야 하는 숙명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말 그대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인생을 놀이처럼 즐기는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니체가 말한 낙타의 삶을 아주 행복한 삶인 것처럼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에서 주어지는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피로에 찌든 삶을 살고 있다. 나조차도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지향하는 삶은 어린아이의 삶이기 때문에 늘 어린아이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 한때 부부로 살았던 우리는 지금은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간은 과거라는 형용사 속에 잘 묻어뒀다. 막상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과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 경험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파스 한 장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자세히 기술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발목이 잡혔다.


현재 내 상태는 미움도 아픔도 다 사그라져서 거름이 된 상황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딸의 조언을 받기로 했다.


"엄마가 브런치에 글 쓰고 있는 거 알지?"


"응 알고 있지. 내가 매일 보고 있잖아"


"그래서 엄마가 어디까지 다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나는 엄마!~ 엄마가 살아온 과정을 어느 정도 알아. 그래서 말인데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안 썼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 아빠잖아

 그리고 지금은 우리한테 잘하려고 노력하니까"


"짜식!~ 어느새 많이 컸네 우리 딸

 애기처럼 말도 잘 못하던 녀석이..."




눈물로 시작된 우리 가정에 불어닦친 바람이 곱게 가꾼 화단을 망쳐놓고 사라질 때마다 나는 부러진 꽃대를 다시 세우고 흙을 돋워가며 꽃밭을 재건하느라 삼십 대와 사십 대 초반의 젊음을 탕진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재건한 꽃밭에 다시금 폭설이 내렸다녹았다를 반복하는 사이 나는 사람이 아닌 올가미에 걸려 신음하는 한 마리 날짐승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어떤 이유로도 지속할 수 없었던 꽃밭지기를 포기하던 날, 파릇파릇한 새싹을 밀어 올리던 아이들을 가슴 한편에 옮겨 심고 세상을 향해 힘껏 노를 저었다. 그렇게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일인삼역을 감당하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느새 성장하여 성년이 된 내 아이들의 가슴팍에 박힌 옹이를 발견할 때마다 내 가슴에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픈 만큼 힘들게 버텨왔을 내 아이들의 나이테들이 옹이가 되어 있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저 아이들의 가슴에 맺힌 매듭을 어떻게 풀어줘야 하나 하고 고민이 생긴다. 이제는 평범한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못난 부모의 뒤늦은 후회가 흰머리칼이 되어 겨울바람에 나부끼고 있으니...


아빠 집에 다니러 간 딸한테 연락이 왔다.


"엄마! 아빠 코로나 걸렸대"


"그래? 아빠 기저질환이 있어서 백신도 못 맞았잖아?"


"응 그래서 걱정이지 뭐"


"아줌마는? 아줌마도 암수술받은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그러니까..."


"너는 어디야?"


"나는 밖이야! 밖에 나왔다가 아줌마한테 연락을 받았어"


"그럼 너는 빨리 엄마 집으로 돌아오고 오빠도 빨리 엄마집으로 오라고 해

 그리고 아줌마는 어디 다른 집에 가 있으라고 하면 좋으려 만..."


그렇게 애들은 우리 집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애들 아빠한테 카톡을 보냈다.


"코로나 걸렸다면서요? 애들은 우리 집에 와 있으라고 했어요.

 상태는 좀 어때요?"


"응 코로나 별거 아니네"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아줌마도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당신 괜찮으면 아줌마한테 동생 집에라도 가 있으라고 하던지

 면역이 낮은 상태라 걱정이 되네... 하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니 알아서 하세요"


여기서 아줌마는 애들 아빠랑 재혼한 사람이다.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두 사람이 우리 아이들과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지만 다 지난 일이 아니던가. 어느새 나는 두 사람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으니 세월만큼 더 좋은 약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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