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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22. 2022

누가 엄마를 강하다고 했나?

얼마 전 직장 회식 자리에서 시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까지 번졌다. 어느 자리에 가든 가장 조심스러운 것이 정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우연하게 회식 자리에 정치인 이야기가 양념처럼 올라왔다.


“저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아내가 너무 불쌍해요

 세상의 시선이 사건 당사자들한테 몰려 있는 동안

 그 뒤에서 혼자 숨죽인 채 아이들을 끓어 안고 있어야 했던

 아내는 뭔 죄가 있어요 “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얼마 전에 안 지사님 아내 분이 시부상까지 치르고 이혼했다고 하더라고요.

 조강지처니까 그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키다가 시부상까지 치르고서

 이혼한 게 아닐까요? “




나도 못지않은 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잘못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사건의 당사자로 떠 오른 김 모씨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여자이기 전에 엄마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도 엄마에 더 주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삼가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건 당사자들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한 가정의 엄마라는 존재다.


모든 상황이 분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애들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숨 죽였을 시간들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 사건에 내 경험이 오버랩되는 것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엄마라는 동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밖에 나가서 1년 다시 집에 들어와서 1년 반 도합 2년 반의 별거 끝에 이혼을 결정했다. 가장 큰 고민은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 된 딸과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양육권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갈수록 머리가 커서 엄마 말을 안 듣는 아들을 생각하니까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무엇보다 나는 경제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애들 아빠가 양육비를 제대로 줄 것인가도 의문이었다.


철없는 부모 탓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들과 이 문제를 의논한 결과 양육권을 애들 아빠한테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이혼 도장을 찍고 숙려기간 3개월이 주어졌다. 애들 아빠가 직원들 보기 민망해서 자기는 이혼서류신고 안 할 테니 나보고 하라고 떠 민 상태였다. 그래서 숙려기간 내에 집을 나와 따로 거처를 마련한 후 이혼서류를 구청에 신고하는 일만 남겨 두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 시기만 잘 견뎌보자 싶어 이혼서류를 구청에 신고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숙려기간 딱 하루를 남겨둔 날, 사건이 벌어졌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불안한 목소리로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아빠가 아줌마를 집에 데리고 왔어

 지금 아줌마 짐 풀고 있어 “


순간 당황한 나는 일하다 말고 구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내가 구청으로 달려가는 사이 애들 아빠가 구청에 이혼서류를 신고하고는 방금 전에 돌아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씩씩거리며 구청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택시를 타고 아이들이 있는 그 집으로 달려갔다. 역시 애들 말처럼 아줌마가 짐을 풀고 있었다.


“저 애들 엄마입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시겠어요? “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애들 아빠 사랑하셨나 봅니다”


“네에 저는 OO씨 사랑해요”


“네에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애들 부모 잘못 만나 정말 불쌍한 애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애들 좀 잘 챙겨 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지만 꾹 참고 최대한 고지식한 모습으로 진심을 다해 애들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내가 살고 있는 거처로 애들을 데리고 나왔다.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안심시킨 뒤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그런 다음 두 아이를 앉혀놓고 물었다.


“지금은 선택의 시간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뭔데 엄마?”


“이제부터 엄마랑 살 것인지, 아니면 아줌마랑 아빠랑 같이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돼

 만약에 엄마랑 살게 되면 사랑은 충분히 줄 거지만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 거야

 하지만 아빠랑 살면 경제적으로는 조금 더 풍요롭겠지만 마음은 조금 더 힘들 거고

 그러니까 누구랑 살 것인지는 너희들이 선택해 줬으면 좋겠어 “


“엄마는 아빠 용서 안 할 거야?”


“응 엄마는 아빠 용서 못하겠어. 아들이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도

 네 의견을 무시하고 아줌마를 바로 집에 데려왔다는 것에서 화가 나 “


그랬다. 아줌마를 집에 데려오기 하루 전날에 애들한테 아줌마를 소개했다고 한다. 눈치 빠른 아들 녀석이 자기 아빠를 따로 불러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 며칠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들 아빠는 그 며칠도 못 기다린 채 아줌마 짐을 집으로 옮겨 왔던 것이다. 하긴 두 사람도 내가 떡 버티고 있는 동안 오래 기다렸을 테니 얼마나 마음이 급했을까 싶긴 하다.


나는 그 당시에 어린 우리 애들 생각은 안 하고 아줌마만 챙기는 애들 아빠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그래서 그동안 나에게 저질렀던 모든 악행들을 다 폭로해 버리고 불명예 퇴직 시켜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내가 키우겠다고 애들 아빠를 협박했다. 독이 오를 대로 올라서 덤비는 내가 무서웠던지 애들 아빠가 큰 아이를 불러 네 엄마 좀 설득해보라고 시킨 것 같다.


며칠 뒤 큰 아이가 찾아와서는


“엄마! 아빠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아빠가 앞으로는 우리 말도 잘 들어주고 우리한테 잘해주겠다고 각서를 써 줬어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


“정말? 너는 아빠 말을 믿고 싶은 거야?”


“응 우리 아빠니까 믿고 싶어 엄마”


“알았어. 엄마는 우리 아들 뜻대로 할 거야. 아빠가 너희들한테만 잘하면

 엄마는 아무래도 괜찮아. 그리고 아빠랑 살더라도 엄마가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너희들 다 돌 볼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아들? “


“응 엄마”


그렇게 그날의 악몽이 마무리 됐다. 그때는 아들이 제 아빠를 지킨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딸이 제 아빠를 지키기 위해 내 펜을 잡았다.


어느새 둘 다 부쩍 성장해서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채무감에 시달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는 할 만큼 했고, 또 그때 아빠랑 헤어진 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그러는 사이 나도 어느새 애들 아빠와 아줌마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새 가정을 응원하는 입장으로 바껴 있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심으로 두 사람이 건강하게 잘 살아서 우리 아이들이 편안하기를 바랄뿐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장 나약한 존재다. 제 뱃속에 열 달 품어 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는 한없이 납작 엎드리기도 하고 나약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 뒤에 있는 사건 당사자의 아내들은 자식을 위해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침묵 시위를 이어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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