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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22. 2022

신딸로 살다가 고향에 돌아온 후배

오래전에 MBC에서 방영한 ‘왕꽃 선녀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 그 드라마의 시청률이 엄청 높았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그 드라마의 영향으로 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이 드라마가 무속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희석시키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설명하면 세습무는 집안에서 세습되어 내려오는 무속인을 뜻한다. 반면 강신무는 어느 날 갑자기 몸속에 신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신 내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즉, 그때 우리가 살던 주인집 아줌마도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신을 내치지 못해서 결국 신 내림을 받았던 사례다. 그런데 내 오랜 추억속에도 신 내림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이 주제를 꺼내든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무속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아 내 경험 범위 내에서 적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 고향은 말 그대로 산골 중에서도 심한 산골이다. 어릴 때도 20 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지금도 20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텅 비어가던 산촌 마을이 다시금 균형을 잡아가는 중이다.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주로 산 밑에 있는 땅을 사서 집을 새로 짓거나 하는 형태다 보니 마을에는 빈집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루는 시골에 살고 계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정아 기억나냐?”


“네 엄마, 우리 어렸을 때 딴 데로 이사 간 애 잖아요?”


“그래 맞어. 근데 갸가 며칠 전에 동네에 왔어.

 고향에 돌아와 살고 싶다고

 그런데 정아네가 살던 집을 민이네가 사서 살았잖냐“


“네에 그랬었지요”


“그런데 요즘 민이네 집이 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비어 있다는 것을 알고

 정아가 찾아온 겨.

그래서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다시 사서 살고 싶다고“




그랬다.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정아는 그 집안의 막내딸이라 워낙 그 엄마가 귀히 여기던 딸이었다. 우리는 할머니가 오봉에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 발라서 쪄 준 맛없는 밀가루 빵을 먹을 때, 그 아이는 그 귀하디 귀한 설탕을 넣어 만든 찐빵을 먹고 자랐다. 또 우리가 여기저기서 언니나 오빠가 입던 옷을 얻어다 입을 때 그 아이는 항상 깨끗하고 예쁜 새 옷을 입고 자랐다. 그랬기 때문에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정아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그렇게 그 집안에서 막내딸로 귀하게 자라던 정아가 어느 날인가부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걸음으로 두어 시간을 걸어서 가야 하는 학교도 안 가고 집에서 노는 날이 많아졌다. 당시에 나는 학교에 안 가는 정아가 속으로 많이 부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아프지도 않고 너무 튼튼해서 학교에 빠질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아네 가족이 새벽에 빚쟁이들한테 쫓겨 야반도주 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확 퍼졌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들려온 소식은 정아가 지리산인가 어딘가에서 신 내림을 받았는데 애기보살의 신발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돈을 엄청 벌어서 빚도 다 갚고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고등학생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아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랬던 아이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전해 들은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을 알아보던 중 집 주인인 민이와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을 한 동네에서 보낸 동갑내기다. 마침 민이가 노총각으로 시골에 살고 있다가 고향에 돌아온 정아를 만났고 두번 만남에 사랑이 싹튼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소식이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친구였으니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으면 싶었다. 그런데 이 조그만 촌동네에서 늦깎이 청춘에 대한 노인네들의 호기심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내가 시골에 간 날이었다. 정자나무 아래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쳤는데 그 무리 속에 있던 정아가 나를 알아보고는 엄청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운전 중이라 같이 손을 흔들어주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얘기로는 정아가 모시던 신을 자기 오빠한테 물려주고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신도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는 거구나! 그럼 정아가 모시던 신을 자기 오빠한테 세습해 주고 신딸에서 벗어난 것인가 싶었다. 먼 발치에서 본 정아의 모습은 쉰을 앞둔 나이에도 이십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 젊고 고운 모습이었다. 저런 아이가 시골 촌구석으로 시집을 오다니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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