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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27. 2022

신딸로 살다가 고향에 돌아온 후배 ㆍ

신 내림받은 고향 후배 이야기를 하다가 마무리를 안 지은 것 같아 나머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방향성을 잘 못 잡았다. 하지만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내 생각이 정리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던 정아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어린 시절에 자신을 그토록 귀히 여겨주셨던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그 많던 형제들도 다 뿔뿔이 흩어진 뒤에 혼자 쓸쓸히 돌아온 고향이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아는 어린 시절에 자기가 살던 집을 사서 살았던 고향 친구 민이를 만나 고향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정아가 고향에 돌아와 민이와 재혼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면서 온 마을의 입과 귀가 다 정아네 집으로 쏠렸다. 살림을 깨끗하게 잘한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갔다. 명절에는 호기심 많는 또래 친구들과 후배들이 몽땅 정아네 집으로 몰려갔다. 정아네 집에 다녀온 내 동생 말에 의하면


“정아 누나! 무서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흐트러짐 없이 전을 부치는데

 친구들이 가도 술도 안 줘

 자기네 집은 술은 취급 안한댜“


암튼 정아와 민이의 결혼으로 조용하던 마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하나 생겼다는 듯이 틈만 나면 정아네 집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 엄마한테 다시 들은 소식은 예상 밖의 소식이었다.


“야! 그 정아 개 못 쓰겠더라

 무슨 부부 싸움을 했는데 가전제품을 다 때려 부쉈다더라 

 원래 무당을 하던 애라서 애가 보통이 아닌가 보더라... “


“엄마!~ 누가 그랬어요?”


“저 윗동네 민이네 작은엄마가 그러던디...”


“정아도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요. 뭐 괜시리 살림을 때려 부쉈겠어요

 항상 양쪽 말을 다 들어보고 이야기를 해야지 한쪽 말만 듣고

 사람을 그렇게 매도하면 안 돼요~

 고향에 돌아와서 잘 살아보겠다는 애한테 어른들이 도움은 못 줄망정

 왜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래요.

 그러니까 엄마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말 옮기고 그러지 마셔요“


내가 하도 지랄을 털어댄 덕분인지 엄마는 한동안 정아네 소식을 나한테 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마가 다시  정아네 소식을 전했다.


“그게 민이가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민이가 출근한 사이에 강아지가

 집밖으로 나가서 차에 치였다더라.

 그래서 민이가 정아한테 강아지 잘 못봤다고 난리를 피우면서

 너는 없어도 살지만 강아지 잘못되면 못 산다고

 정아를 때렸는데 갈비뼈가 나갔다더라“


“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딨대요~

 미쳤구만...“


나는 내 일이 아닌데도 괜히 정아에게 동일시가 돼서는 내 일처럼 화가 났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둘 사이가 어찌 어찌 봉합이 됐는지 또 한동안 조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두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서 분탕질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마디로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젊은 애들이 행복하게 사는 꼴을 못 보고 분탕질을 해 대는 것인지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 정아 말인데요.

 갸하고 나하고 몇 살 차이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내 딸이다 생각하고 지나가다가 보면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 줘요

 어린 시절에 고향 떠났다가 다 늙어 고향이라고 왔는디 안 됐잖아요 “


사람들은 정아가 무당이었다는 과거의 사실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정아가 모셨던 신이 자꾸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놔서 저렇게 평탄하게 못 산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어! 그래. 잘 지내지. 엄마한테 얘기는 대충 들었어”


“저도 언니 얘긴 들었어요. 언니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시집도 두 권씩이나 내고...“


한참 동안 정아랑 통화를 했다.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분탕질을 쳤고, 또 자기가 동네 사람들한테 오해받은 이야기 등등을 나에게 쏟아냈다.


“언니! 저 오늘 작은오빠 장례치르고 왔어요.

 민이한테 얘기했는데 아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 오빠 보내드리고 왔는데 제 마음이 얼마나 서럽고

 아팠겠어요. 그래서 캔 맥주 서너 개 마셨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한테 또 막 뭐라고 그러시네요.

 저 정말 서럽고 속상해요 언니"


얘길 듣다 보니 참 불쌍해도 이 아이처럼 불쌍할까 싶었다. 그 사이 가족들도 다 죽거나 흩어지고 마지막 남은 오빠마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살고 있던 민이가 언젠가부터 생활비를 뚝 끊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정아야!~ 언니 말 지금부터 잘 들어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너 스스를 귀히 여기는 것이 중요해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그리고 지금부터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누구한테도 의지하지 말고 너 스스로 당당히 일어서면 되는 거야

 알았지?“


“네에 언니!

 저 살면서 여태까지 언니처럼 따뜻하게 이야기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저 지금부터 열심히 살 거예요. 언니!

 나중에 저 자리 잡으면 꼭 연락할 테니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


그 이후에 정아는 민이와 합의이혼을 하고 고향을 떠나 소도시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아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니!~ 저는 민이 사랑해요.

 지금은 떠나지만 나중에 제가 홀로서기에 성공해서 당당해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민이랑 다시 살 거예요 “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객지보다 못한 고향이 아니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고향이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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